*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일요일 오전 조조 영화를 보고 왔다. 새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좋은 점 중 하나는 극장이 가깝다는 것이다. 9시 50분에 영화가 시작하는데 20분 전에 집을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여유 있게 표를 사고 자리를 잡았다.

 <그린 존>의 국내 홍보 문구는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의 제작진과 맷 데이먼이 다시 만났다는 것이었다. 광고 문구만 본다면 사실적이면서도 현란한 액션의 스릴러물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린 존>은 <본> 시리즈와는 그 방향이 전혀 다르다. <본> 시리즈가 가상의 시나리오에 기초한 (픽션) 액션물이라면 <그린 존>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사실에 기초한 페이크 다큐에 가깝다. 영화 제목 자체가 이라크 내에 실재하고 있는 미군의 '안전 지대'를 지칭하는 것이니 이에 따라 이 영화의 성격을 짐작해 볼 수 있으리라.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미 알려진 내용들이다.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WMD)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은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결국 그 정보는 거짓이었고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를 기만했다는 팩트! 그렇다면 <그린 존>이 이러한 팩트를 반복해 이야기 하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주인공 로이 밀러(맷 데이먼)가 거듭되는 WMD 수색 작전의 실패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은 - 미국이 주장한 이라크 침공의 원인이 WMD였다고 생각해 볼 때 - 영화 전개에 있어서도 중요한 지점이지만 현실 속의 관객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주인공의 의심은 곧 이 (추악한) 전쟁 자체에 대한 의문에 다름 아니다. 과연 WMD는 존재했던 것인가? WMD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라크의 민주주의와 이라크인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은 허울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밝혀진 진실은 WMD가 존재한다는 정보 자체가 완전한 허위였고 조작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조작 과정에는 미국 - 그리고 이를 위시한 연합국들 - 의 이해 관계뿐만 아니라 이라크 내 권력 세력의 이해 관계도 얽혀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정보를 허위로 조작한 것이 과연 누구였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중간급 관리였던 파운드스톤 혼자만의 농간은 아닐 것이다. 아마 실제로는 미국 최고 권력자까지의 암묵적인 합의와 승인이 존재했겠지.

 하지만 진실이 밝혀졌다고 해서 이야기가 해피 엔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밝혀낸 진실이 '힘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문제를 확대하면 오히려 사실을 모를 때보다 더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현실 속에서) 이미 WMD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정 사실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미국과 연합군이 이라크를 떠났는가? 전쟁 전의 상황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런 노력만이라도 있었는가? 전 세계가 미국의 거짓을 규탄하고 있다고 하여 변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대답은 모두 "아니오"이다.

 미국은 여전히 이라크를 자신들의 뜻대로 개조하기 위해 설쳐대고 있으며 이를 실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세력은 - 적어도 현재 상태에서 보자면 - 현실 상에서는 아무도 없다. 어찌 보면 '진실의 힘'이라는 것은 약자들을 달래기 위해 - 혹은 기만하기 위해 - 힘 있는 자들이 만들어 낸 수사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밝혀낸 진실은 잠시간 언론의 이슈가 되었을 뿐, 전쟁의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한 장의 사진이 베트남 전쟁을 끝낸 반전 운동의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그것이 사람들이 몰랐던 진실과 그에 근거한 언론의 힘이 작동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진실과 언론의 힘, 그리고 그 작동 기제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지구 군주국으로 군림하려 하는 미국도 그렇지만, 최근 몇 년 간은 - MB 당선 이후 - 우리 나라가 그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언론은 정부의 앵무새 역할만 하고 있고, 사실은 은폐 되거나 축소 되며 묻혀 버리고 있다. 모든 사실들은 정부에게 유리한 형태로만 보여진다.

 <그린 존>은 오직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진실만을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그린 존>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내막은 수많은 <그린 존>들에 의해 은폐된 진실 중 하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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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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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0 15:47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downeve.tistory.com BlogIcon 바위풀 2010.05.23 20:4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너무 늦었겠죠? 이미 다른 분한테 받으셨으리라 봅니다.

      혹시 아직도 못 받으셨다면 다시 말씀해 주세요.

  2. 2010.05.15 15:32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downeve.tistory.com BlogIcon 바위풀 2010.05.23 20:4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너무 늦었겠죠? 이미 다른 분한테 받으셨으리라 봅니다.

      혹시 아직도 못 받으셨다면 다시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