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TeamLog Blue2Sky에 쓴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사진가의 여행법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진동선 (북스코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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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부터 우리 나라에는 카메라-사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길거리를 돌아 다니다 보면 오히려 손에 카메라를 안 든 사람들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이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부터 시작해서 전문가용 중급기 DSLR, 하다 못해 흔히 똑딱이라 불리는 P&S 카메라까지 이런 것 한 번 만져보지 못했거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이젠 아마 드물 것이다.
 
"짧은 시간, 스쳐 지나가듯 만나는 도시 풍경은 오로지 마음으로 대하고 만나야 한다. 카메라를 앞세워 다가서기보다는 마음으로 먼저 다가서야 하고, 좋은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을 앞세우기보다는 우선 풍경을 마음에 잘 담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마음을 비우고 그런 마음으로 풍경을 바라보면, 풍경이 내게로 온다. 사진은 온 마음으로 바랄 때 원하는 풍경이 다가오고, 내가 꿈꾸는 위치, 그 장소에 바라던 것들이 마법처럼 자리해준다. 사진은 눈과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카메라가 먼저여서는 안 된다. 욕심은 언제나 욕심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140p)

 그리고 이러한 카메라-사진의 인기와 함께 시작된 것이 바로 무수히 쏟아져 나온 사진, 여행 에세이들이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초창기에 비교적 적은 수로 정제된 책들이 출간되던 것에 비해, 갈수록 많아지는 책의 양에 반비례해서 떨어진 것은 바로 사진, 여행 에세이집의 질이었다. 마음이 담겨 있지도 않고, 그저 그런 생각 없는 시선으로 셔터를 누른 사진들에 적당히 감성적인 글귀 좀 붙여 놓은 에세이집들은 그런 책들에 대한 내 관심을 저절로 식게 만들었다.

 이때 내 눈에 띈 것이 바로 진동선씨가 쓴 <사진가의 여행법>이었다. 나도 그랬지만 사진의 기술적 이론이나 장비 측면을 벗어나 좀 더 깊게 사진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하다 보면 가장 쉽게 만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진동선씨의 이름이다. 이해하기 쉽게 사진의 역사를 집약한 <영화보다 재미있는 사진 이야기>와 <현대 사진가론>, 그 밖에 눈빛 출판사에서 나온 여러 권의 책 등 사진 평론가이자 사진가로 활동하는 진동선씨는 국내 사진계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이름 중에 한 명이다.

"모든 추억은 어떤 시간 속에 사건이 '상처'로 자리했을 때 만들어진다. 모든 경험이 추억으로 남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 어떤 기억이 각인될 정도로 깊게 파일 때 훗날 추억이 된다. 같은 의미에서 어떤 도시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은 주인공과 도시 사이에서 발생한 각인된 사건의 상처이다. 사건은 저마다 다를 수 있으나 한 가지 공통된 것은 지워지지 않을 강력한 정신적 상처, 즉 트라우마라고 말할 수 있는 정신적 외상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 상처를 푼크툼이라고 표현했는데, 정신적 상처는 예술가나 창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사유와 성찰의 요소이다." (171p)

 그리고 <사진가의 여행법>은 그런 진동선씨에 대한 나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다. 새로이 사진가의 길에 들어 서는 딸과 함께 한 열흘 간의 유럽 기행은 사진의 역사를 더듬는 시간과 함께 사진에 대한 그의 자세와 철학을 배울 수 있는 길이었다.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부터 시작해서 베니스 비엔날레, 아를의 사진 축제로까지 이어지는 길은 그 자체로 사진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보았고 또 가 보고 싶은 행사들이다. 거기에 니엡스가 최초 사진을 찍은 생루드바렌 등 사진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들을 들르는 기행은 참으로 부러움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난 사실 이번 책에서 니엡스가 최초의 사진을 찍었던 곳이 보존 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진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제일 첫 장에 나오는 것이 바로 니엡스의 8시간 장노출 사진인데 그곳이 남아 있다니...나중에 나도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로 사진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진동선씨을 글 중에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 부분이다. "카메라를 앞세워 다가서기보다는 마음으로 먼저 다가서야 하고, 좋은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을 앞세우기 보다는 우선 풍경을 마음에 잘 담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내가 여행을 다닐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렌즈에서 눈을 떼고 나의 눈으로, 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진으로 남기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내 가슴에 남겨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만큼 나의 여행을 기억하고 추억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꿈에서 시작된다.
꿈 없이 가능한 일은 없다.
먼저 꿈을 가져라.
오랫동안 꿈을 그린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359p. 작가의 딸, 영은씨의 기행문 中)

 이 책은 흔한 사진, 여행 에세이들처럼 조금은 가볍고 감각적인 내용들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분명히 실망할 책이다. 적당히 아름다운 풍경 사진, 적당히 애틋한 아이들의 사진 등 즉물적인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 내는 사진이나 그에 덧붙여 놓은 글들은 이 책에서는 만날 수 없다. 그보다는 평생 사진의 길을 걸어 오며 저자가 느꼈던 고민 거리들과 단상들, 그리고 그에 대한 사진적 사유를 만나볼 생각이라면 이 책을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덧. 책을 읽기 전에 최소한의 사진사적 지식이나 유명한 작가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분들이라면 책에 대한 이해와 흡수가 더 빠를 것 같다. 작가 자신이 사진을 전공한 사진 평론가이자 사진가이다 보니 약간은 전문적인 지식들에 바탕한 이야기들이 조금 나오는 편이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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