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감성 미디어 Blue2Sky에 쓴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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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겨울. 내가 정말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접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한동안 나를 먹먹한 기분에 빠져 있게 만들었다. 무언가가 머리를 쿵 친듯 하면서도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던 뜨거움이 있던 그 기분을 정확히 표현하기는 힘들다. 단지 코엘료의 연금술이 내 가슴 속에 뜨거움을 불어 넣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요즘 내 삶은 서로 다른 세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과 같다. 각 악장에 제목을 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 <몇몇 사람과> <아무도 없이>." (17p)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오늘. 지금의 나는 어떤가? 그때 느꼈던, 치밀어 오르던 뜨거움은 어디로 갔는가? 진심으로 원하던 나의 모습과는 많이 멀어져 있는 것 같다. 꿈을 잃은 것과 열정을 잃은 것, 어떤 것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일까? 코엘료의 책도 <연금술사> 이후로는 거의 읽지를 않았다.

 2008년 겨울, 난 다시 코엘료를 만났다. 오랜만에 다시 코엘료의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든 이유는 명료했다.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금술사>를 처음 만났을 때, 내 가슴이 느꼈던 것들을 다시 찾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내려 놓은 지금, 책을 읽기로 한 내 결정에 후회는 들지 않는다. 

"우리 각자에게 실현해야 할 신화가 있다는 것, 바로 그겋이었다. 타인이 우리를 믿어주든 말든, 비판하거나 무시하거나 봐주거나 상관없이, 우리는 그것을 수행한다. 그것이 이 땅에 태어난 우리의 소명이고, 모든 기쁨의 원천이므로." (89p)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코엘료가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똑같았다. 그래,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의 사명, 자아의 신화를 찾아 가는 길,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는 것. <연금술사>의 초판이 86년도에 나온 걸 생각하면, <흐르는 강물처럼>의 원판이 발간된 2006년까지 기실 20년의 세월이 흐르는동안 코엘료는 한결 같았던 것이다. 그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한 자리에 있지 못하고, 한 길을 가지 못한 것은 그의 책을 읽은 나였다. 그러고 말리라고 결심했으면서도 결국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은 나였다.

 코엘료가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얘기하는 것은 사람은 어느 길로 가야한다는 정답이 아니다. 그는 길을 알려 주기보다 길을 갈 수 있다고 우리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주는 일을 한다. 끊임 없이 이야기하는 자아의 신화, 사람의 사명과 나아가야 할 길. 그 길이 어떤 모습이고, 어떤 곳이든 간에 코엘료는 우리 스스로만 원한다면 그 길을 나아갈 수 있다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는 작가 스스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 스스로가 산티아고의 순례길에서 겪었던 경험은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므로, 나는 매순간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오늘 할 일이나 경험할 수 있는 것 - 기쁨, 직업적 의무, 내가 상처입힌 누군가에게 사과하는 것 등 - 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111p)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떠한가? 자아의 신화에 대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자아를 찾는 일이라고 해서 지금 내 삶과는 확연히 다른,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런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일상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자아의 신화를 이룩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정말로 내 길이라는 믿음이, 나의 신화를 이룩하는 일이라는 뜨거움이 자신에게 있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또 깨달은 것은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가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 멀리 내 목표와 방향이 있다면,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수십, 수백가지가 있을 수 있다. 조금 돌아가는 길처럼 보여도 혹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닌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무엇보다도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자아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사는 동안 쓸데없는 일들을 걱정하고, 일을 미루고, 중요한 순간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다.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늘 푸념하면서도 막상 행동하기는 두려워한다. 모든 것이 달라지길 바라면서도 스스로는 변화하려들지 않는다." (163p)

 사실 전 지구 상의 인구 중 10%, 아니 단 5%라도 그렇게 자신에게 뜨거울까? 난 자신할 수 없다. 주위 환경과 상황이 쉽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놓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전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어린이가 자아의 신화라는 것이 뭔지 알 기회가 있을까?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자아를 찾으려고 앞으로 전진하는 일이 과연 쉬울까? 하지만 지금 여기의 우리는 다르다. 자신을 내던져 - 희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혼신의 힘을 다 하라는 것이다. -  앞으로 나아가고 스스로의 길을 이룩할 기회가 있다. 얘기하기 조심스럽지만 9.11 사태를 보면서 코엘료가 느꼈던 생각 - 다시금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 - 은 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여행은 혼자서 가되, 결혼한 사람이라면 배우자와 간다." (200p)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 나에게는 몇가지 큰 일들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했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평생의 동반자가 될 사람도 만났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한 가지 부족했던 것, 내가 가야 할 길도 이제 알겠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자신을 찾은 것 같다. 어쩌면 난 그 동안 자아를 성취하는 것은 조금은 뜬 구름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진실은,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나 스스로가 변함으로써 이룩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고맙습니다. 파울로 코엘료. 다시 한 번 나를 깨우쳐줘서.

덧. 작가의 경험과 일화, 우화 등 이 책에 실려 있는 101가지의 이야기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그 이야기들은 다양하게 받아 들여질테니까. 단지 지금 내 상황에는 이렇게 와 닿았을 뿐이다. 다른 누군가는 이 책에서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이란 그런 것이니까.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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