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식민 통치를 벗어난 지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친일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롭지를 못하다. 선배 학자의 친일 행적을 거론한 후배 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친일 행적을 벌인 한 대학 총장의 이름을 딴 상은 버젓이 주어지고 있다. 몇 십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친일의 잔재는 사회 곳곳에 남아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니, 사실 친일을 했던 그들은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사회의 실세였고, 지배층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어떻게 민족의 반역자이자 매국노였던 그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자 행세를 하고 권력을 쥔 채 좌지우지 할 수 있었던 것일까?

 

= 해방 직후 친일파의 변천

 

 우리 역사에서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이유는 해방 직후의 미 군정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 들어온 미군에게는 당장 한국을 통치하는데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세력이 필요했다. 그런 그들에게 일제 시대의 행정과 관료 경험을 갖춘 친일파들은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 존재였다. 미국에게는 이들의 친일 경력 같은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친일파들을 대거 중용해 군정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단지 미 군정의 필요성 때문만이 아니라, 당시 미 군정에 대항해 우리 민족의 목소리를 대변할만한 우리의 정치 권력이 없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해방 과정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던 상해 임시 정부는 전쟁이 끝난 후 미 군정의 공식 승인을 받지 못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할 정도로 그 힘이 극히 미약했고, 많은 민족 세력들이 좌우의 이념 대립에 갈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친일파들은 미 군정에 아부하면서 친미파로 변신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다지게 되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드골의 자유 프랑스 정부가 비시 정권의 나치 협력자들을 숙청할 수 있었던 힘과 비교해 보면 더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후 미 군정에서 이승만 정권으로 정치 세력이 이동하면서 우리는 반민특위를 통해 다시 한번 친일파 청산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세력 기반이 취약했던 이승만에게는 식민 시대부터 미 군정 시대까지 사회의 권력층으로서 역할을 담당해 왔던 친일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미 군정 시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세력 기반을 다지고 권력을 갖추었던 친일파들(이미 친미파로의 변신을 마친)과 이들의 힘이 필요했던 이승만에게 반민특위는 거추장스런 존재에 불과했다. 결국 민족의 염원을 해결하고 민족의 역사를 바로 잡아줄 반민특위는 이승만과 친일파들의 방해로 아무런 소득 없이 와해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십여 년이 넘는 이승만의 독재 기간 동안 친일파들은 착실하게 자신들의 입지를 닦으면서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해방 이후 우리가 확실하게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결국 두고두고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망령으로 남아 우리를 괴롭히게 되었다.

 

= 종전 이후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숙청 작업

 

 이러한 우리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드골 치하의 프랑스 정부가 벌인 나치 협력자들에 대한 숙청 작업과 비교해 보면 큰 차이를 알 수 있다.

 

 사실 종전 이후의 프랑스에 대한 미군의 계획은 우리 나라와 같은 군정이었다. 하지만 드골이 이끌던 자유 프랑스 정부는 영미 연합군과 함께 대독일 전투에 참가함으로써 연합국으로서의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벌어진 파리 수복 작전에서도 최전선에 서서 나감으로써 파리에 제일 먼저 입성함과 동시에 곧바로 해방된 프랑스의 정권과 실권을 장악했다. 처음에 미국은 드골의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으나 그들이 프랑스 내에서 실권을 장악하고 나자 결국엔 드골의 새 프랑스 정부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프랑스는 적극적인 투쟁을 통해 해방 후 나라의 통치에 대한 실권을 획득하고, 전후 처리 문제에 있어서도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으며 동시에 자신들의 뜻대로 나치 협력자에 대한 숙청 작업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

 

 이후 벌어진 나치 협력자에 대한 숙청 과정에서 드골은 자신의 우파 정부뿐만 아니라 프랑스 내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였던 좌파 공산, 사회주의 세력까지 모두 연합하여 좌우 합작의 민족 반역자 숙청 작업을 벌였다. 프랑스 사람들은 적어도 민족적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일에 있어서 만큼은 이념보다 민족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았다. 해방 이후, (미소의 책동에 의한 면도 크다 하겠지만) 좌우가 극명하게 갈려 대립하고 민족 지도자까지 이념 대립에 의해 암살당해야 했던 우리의 현실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또 단 4년 동안 나치 괴뢰 정부인 비시 정권의 치하에 있던 프랑스에서 이 숙청 작업으로 처벌 받은 사람이 수십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이들의 숙청 작업이 얼마나 철저했던 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프랑스는 나치 협력자들을 그 뿌리까지 완벽히 뽑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어떠한 예외도 적용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찾아내 처벌을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프랑스는 나치 협력자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예외를 두지 않고 철저한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이렇게 철저하게 역사적, 민족적 전통을 회복하고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이후 프랑스는 성공적인 발전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이후의 친일파 세력

 

 부패한 이승만 정권이 민중들의 4.19 혁명으로 무너지고 민주화 세력이 등장하면서 정권에 빌붙어 있던 친일 세력들에게도 다시 위기가 찾아오는 듯 했다. 하지만 곧 일본군 무관 출신인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로 인해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그 결실을 맺지 못했고, 친일파들은 유신 정권을 자신들의 세력을 더욱 굳건히 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 사상적인 뿌리를 일본에 두고, 일본군 장군을 스승으로 따르던 박정희는 굴욕적인 대일 외교를 전개하면서 친일 행각을 벌였고, 친일 세력들은 신이 나서 그 뒤를 따르고 받쳐 주었다. 우리 사회는 독재자 박정희와 그를 따르는 세력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에게 반하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해방 이후부터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이용되어 왔던) 친북-용공의 딱지를 반대 세력들에게 붙였다. 반공과 북진 통일을 국시로 삼던 이승만 정권의 대북 강경 기조는 박정희 정권에도 그대로 이어졌고 이것만큼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데 효과적인 것도 없었다. 자유와 민주를 원하는 것은 곧 친북, 정부 정책에 반하는 것은 곧 친북, 친일 권력층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친북. 이 시대는 독재 정권이 국가 보안법이라는 칼을 휘두르는 안기부를 이용해 민중들을 마음껏 탄압하던 시기였고, 그 위에 자리한 것은 일제 시대에는 일본에 빌붙었다가, 해방 이후 미 군정과 이승만 시대에는 잽싸게 친미파로 모습을 변모시키고, 다시 유신 정권을 찬양하며 독재 정권에 유착한 일제 시대의 친일파 세력들이었다. (이 당시 반공의 광풍 속에서 박정희가 한 때 남조선 노동당에 몸을 담았던 사실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은 이들에게 친북, 용공이란 구호가 과연 어떠한 필요에 의했던 것인지를 보여준다.)

 

일제 시대, 미 군정기,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친일파들은 계속적인 권력과 부를 쌓았고, 쌓아 놓은 권력과 부를 잃지 않기 위해 정권과 유착하며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기반을 완전히 다져갔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 다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도 친일 1세대만 아니었을 뿐 그 정신적 뿌리는 박정희 때부터 이어진 그것에 두고 있었기에 이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활개 치고 다닐 수 있었다. 이어지는 노태우 정권도 전두환 정권의 뿌리를 이어 받은 것이었기에 이들과의 유착은 여전했고, 문민 정부가 들어설 즈음에는 이미 이들의 세력을 뿌리 뽑기에는 그 뿌리가 너무 깊이 자리 잡은 뒤였다.

 

그리고 이렇게 고착되어 온 결과는 해방 후 60년이 넘은 오늘날에도 그들이 여전히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아무런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영화를 누리고 살도록 만들었다. 오늘날 일명 교수나 기업가, 고위 공무원 등으로 활개 치고 다니며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행세를 하는 일부 극우 보수 세력의 뿌리가 바로 일제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이 친일파 세력에 있다.

 

= 우리의 친일 극우 세력이 일본의 극우 세력과 다른 점

 

 현재 우리 사회 극우, 보수 세력 중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친일파 잔재들은 일본의 극우 세력과 그 끈을 이으면서 여전히 그 세력을 지키려 하고 있다. 일본의 극우 월간지에 식민지 축복화론, 일제 위안부 무죄론 등 그들의 구미에 맞는 글을 써대며 귀여움을 받고, 또 그들 자신은 이를 진실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극우 민족주의 세력과 우리의 친일파 극우 세력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보통의 민족주의 우파나 보수 세력이라면 (비록 그 이론이 자기 중심적이거나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자기 민족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고 있다. 물론 일본의 극우 세력도 일본에 대한, 일본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자기들 주장의 근간에 두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친일 극우 세력들은 이와는 좀 다르다. 친일 행각을 하던 일제 시대 때부터 이들이 관심을 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영달과 입신 양명, 기득권의 수호였다. 민족과 국가는 그들에게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정권과 세상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바꾸어 가며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친일 극우 세력은 그 어떠한 역사적, 민족적 정통성도 가질 수 없는 개인 이기주의 집단에 불과하다.

 

= 향후 친일파 처리 문제

 

 친일파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지도층으로 군림하게 되면서 그 동안 이들에 대한 역사적 단죄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1세대 친일파들은 온갖 부귀 영화를 누리다가 죽고, 이제는 그 후손들이 권력을 이어 받아 대를 이어 영화를 누리고 있다. 해방 이후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친일파 본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인적 청산은 이미 어려워진 지 오래다. 하지만 친일 1세대가 죽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가 새겨 두어야 할 것은 친일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기억이다. 그 동안 우리의 기억들은 친일 지배 세력들에 의해 많이 희석되어 왔다. 일제 시대 친일파들의 행각은 해방 이후 다시 강자에게 붙어 지배층으로 변신한 그들의 권력에 의해 사라지고, 또 반공과 경제 성장의 이념 아래 잊혀져 갔다. 친일 독재자는 경제 성장의 영웅으로 우상화 되었으며, 친일파 자신들은 우리에게 훌륭한 학자나 기업가, 문인 혹은 나라 경제 발전의 공신쯤으로 기억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우리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는 제일 먼저 올바른 과거를 알고 기억해야 한다. 친일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그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또 후대에 전수해야 한다. 기억한 다음에는 그 과거에서 배워야 한다. 과거를 잊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친일파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확실히 알았다면 다시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후세를 교육하고, 아직까지도 사회 곳곳에서 다른 이름을 걸친 채 행세하고 있는 친일의 망령들을 없애야 한다. ‘친일의 잔재를 확실히 없애 지금이라도 해방 이후 이루지 못한 민족의 역사적 정통성을 획득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이라면 최근 몇 년 사이에 친일문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일제 강점 하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등도 제정이 되어 당시의 진상을 밝히고 사료를 남기기 위한 작업도 진행이 되었고, 한동안 논란이 되던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 땅 찾기 소송도 국회의 특별법 제정에 따라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너무나 멀리 돌아온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우리가 그 진상을 확실히 알고 기억할 수 있도록 정부는 더욱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 미래 한일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민감한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일본과 관련된 문제이다. 식민지 시절을 직접 겪은 세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러한 시절을 직접 겪지 않은 전후 세대도 일본 하면 왠지 모를 저항감을 갖는다. 일본과의 스포츠 경기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겨야 하고, 일본에 밀리는 것은 다른 것보다도 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이는 식민 시대를 직접 겪었던 세대들에게는 의식적으로, 전후 세대들에게는 그런 윗 세대들에게 배우면서 무의식 중에 체화된 의식 작용이다. 하지만 이런 무의식적인 저항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반일이 아니라 일본이 고쳐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이웃의 관계인 한국과 일본이다. 그렇다면 적이 아닌 친구가 되어 발전적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확실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근래 들어 일본의 주된 경향은 강력한 우경화와 군사 대국화이다. 요 몇 년간 총리를 필두로 한 일본 정치인들은 연일 극우 발언과 잘못된 역사 의식을 쏟아 놓고 있다. 종전 기념일이면 총리는 2차 대전의 전범들을 모신 신사에 참배를 하러 가고, 자신들의 뜻대로 후대를 세뇌(교육)시키기 위해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해 가며 교과서를 개정하고 진실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전쟁 이후 수십 년간 지속 되어온 평화 헌법은 은근슬쩍 개정에 들어가더니 지금은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병까지 했다. 일본에게 지배를 당하고 유린 당했던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의 나라들이 이러한 일본의 군사 대국화, 우경화 경향을 극구 경계하면서 교과서 왜곡 등의 역사 왜곡을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일본의 극우파들에게는 그런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일본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진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면 먼저 스스로의 잘못을 사죄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교과서를 왜곡하고, 거짓말을 한다고 스스로가 저지른 전쟁이 가려지겠는가? 일본 극우파들은 진정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이 아시아의 군사 지배자가 되고 싶기라도 하다는 것인가?

 

일본은 전후 독일이 행한 사죄와 나치 전범 처리 과정을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종전 후 지금까지 독일은 나치 문제라면 먼저 나서서 철저히 사죄하고,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나치와 관련된 상징물들조차 법으로 금지될 정도로 독일은 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완벽하리 만치 대해 왔다. 그리고 독일의 이러한 사죄와 문제 해결 자세는 전쟁의 상대국이었던 다른 유럽의 나라들과 진정한 우방의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되었다. 만약 독일이 지금의 일본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을 부정하고, 나치 전범자들을 올바로 처벌하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들과 지금처럼 발전적인 관계를 맺고 나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더 배워야 할 것은 독일이 그렇게 나치 전범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하고, 스스로의 역사를 청산할 수 있었던 것은 나치 협력자에 대한 적극적인 처벌을 단행한 프랑스의 자세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사실 전쟁 후 연합국의 군정이 끝난 후에 나치 전범 처벌에 대한 독일 내 여론은 이제 그만하면 돼지 않았느냐가 우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치의 잔재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프랑스를 보면서 독일은 배울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프랑스의 자세가 독일의 의지에 도움을 줬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알 수 있다. 일본이 스스로 사죄하고 역사 청산을 위해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들은 처벌 받지 않고 활개치고 있는데 일본만의 사과와 청산을 요구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결국 두 나라가 미래의 파트너가 되고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양쪽 모두 역사적 청산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올바른 청산이 끝난 후에야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의 우방, 또 세계 속의 우방으로 서로 자리 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서적

<<박정희와 친일파의 유령들>>, 한상범, 삼인, 2006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청산>>, 주섭일, 사회와 연대, 2004

<<인물로 본 친일파 역사>>, 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사, 1998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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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학생 2007.10.27 20:0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정말 좋은 글 읽고갑니다.
    친일청산이 수행평가의 주제라서 관련 글을 찾아다니다 오게됬는데,
    수행평가 해결보다 더 값진 것을 얻고 간 것 같군요.^^

  2. 대학생 2010.05.20 02:4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3. 칠리 2011.03.13 22: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http://cafe.daum.net/stopcjd/9HoC/446 여기에 글감으로 좀 가져다 썼습니다..

  4. 서녘별 2017.02.15 16:4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간단하면서도 명확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5. 슈퍼산도 2017.02.26 17:4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시국이 불안정하고 답답한 마음에 역사인식을 새로이 다지기 위해 검색하다가 좋은글 읽고갑니다. 가슴 시원하게 해주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