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라이딩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괴뢰메에서의 짧은 휴식을 끝내고 앙카라를 향해 출발한 시간은 오전 10시. 페이스를 높이지 않고 천천히 달려 첫 번째 호텔이 있는 도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였다. 라이딩 거리도 80km 정도로 길지 않았다. 조금 고민하던 우리는 70km 정도 떨어져 있는 다음 도시에 숙소를 잡기로 했다. 오늘은 컨디션도 좋았으니까 그 정도는 무리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 도시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시. 이제는 라이딩 거리도 150km가 넘었고, 시간도 늦었다.

 그런데 지도 상에 표기 되어 있던 크기와 달리 도시의 규모가 작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이 곳에 있는 호텔은 단 하나. 할 수 없이 오늘은 거기서 자야만 했다. 그런데 물어 물어 찾아간 호텔의 주인 아저씨가 예상보다 비싼 가격을 불렀다. 깎아 주지도 않는다. 두 사람에 40이라고? 내가 보기엔 그것의 반만 받아도 충분한 호텔 규모인데.

 일행과 밖으로 나와 고민을 하고 있자니, 아까 길을 알려 주었던 사람들이 다가왔다.

 "호텔 찾았네. 왜 나와 있어?"
 "응. 생각보다 너무 비싼데요. 주인이 두 사람에 40(forty)을 달래요."
 "14(fourteen)라고? 그럼 정상 가격인데. 한 사람에 7(seven)씩."
 "응? 40(forty)이 아니라 14(fourteen)라고요?"

 이런, 일행과 나 모두 속에서 울컥한다. 호텔 주인은 도대체 몇 배를 더 부른 거야. 마침 뒤늦게 나와 얘기를 듣던 주인이 조금 멋쩍었던지 20으로 값을 내린다. 그 이하는 못 받겠단다.

 "제길, 웃기고 있네. 아저씨나 자."

 잔뜩 화가 난 우리는 결국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20~30km 정도 더 가면 국도변에 호텔이 하나 있단다. 시간은 이미 열 두시가 다 되었다. 별 수 없지. 저 호텔에서 잘 수는 없으니까. 근처 슈퍼에서 요기를 하고 다시 페달을 굴리기 시작했다.

 야심한 밤. 일행이 저 멀리 앞서 가고 나니, 들리는 건 내 숨소리와 멀리서 들려 오는 벌레 소리뿐이다. 앞서 가는 일행의 후미등이 가물가물해져 갔다. 차도 다니지 않는다. 완벽한 적막. 왼쪽으로는 누군가 불을 놓았는지 달빛 아래 불꽃이 너울대고 있었다. 잠시 페달을 멈추고 불꽃을 보았다. 왜지? 화전도 아니고 이런 곳에 불을 놓는 이유는. 작게 시작된 불꽃은 곧 크게 넘실대며 넓은 들판을 삼킬 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감상에 젖어 있던 나는 다시 페달을 굴려 앞으로 나아갔다. 결국 다음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한 시가 넘어서였다. 국도변 휴게소에 함께 있던 작은 호텔. 라이딩 거리는 180km가 넘었다. 이제는 더 재고 할 것도 없었다. 호텔에 짐을 푼 우리는 곧 잠에 빠져 들었다.

 여담이지만 우리는 다음 날 아침 11시에 출발해서 오후 2시에 만난 첫 번째 호텔에 바로 짐을 풀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었다. 호텔을 만난 순간 서로 돌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으니까. 역시 새벽 라이딩의 여파는 컸다......

짙게 깔린 먹구름 아래의 이스탄불

이스탄불

짙게 깔린 먹구름 아래의 이스탄불

 동-서양의 가교. 한 도시 안에서 아시아와 유럽이 공존하는 곳. 성당이자 이슬람 사원인 아야 소피야와 그랜드 바자가 있는 곳. 차도르를 두른 부인과 미니 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 그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많은 수식어를 갖고 있는 곳, 이스탄불. 한국을 떠난 지 5개월 14일째, 드디어 이스탄불에 들어 왔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때는 마침 우기가 시작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이스탄불에 머무르는 8일 동안 맑은 날보다는 흐린 날이 훨씬 더 많았다.

아야 소피아 앞

아야 소피아 앞. 우산을 들고 서 있던 아저씨

밤 풍경

비에 젖은 이스탄불의 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이스탄불에 매혹 당해 버렸다. 비가 내리는 이 곳에서 나를 사로 잡은 건 유명한 아야 소피아도, 그랜드 바자도, 보스포러스 해협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비 내리는 이스탄불의 정경이었다.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사원의 모습들. 비에 젖어 반짝거리는 길 위의 돌들. 색색의 우산의 든 채 거리를 걸어 가는 사람들. 짙게 깔린 먹구름이 드리운 마르마라 해. 이 모든 것들이 내게 이스탄불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미 그것만으로 충분한 아름다움을 발한 채.

 4일째 되는 날은 잠시 해가 비쳐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순환하는 유람선을 탔다. 하지만 이미 흐린 날의 이스탄불에 푹 빠져 버린 내게 맑은 날의 이스탄불은 그리 와 닿질 않았다. 햇살이 비치는 보스포러스 해협이 아름답다 해도 이미 내 마음 속엔 적당히 흐린 날의 이스탄불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블루 모스크

아야 소피아에서 바라 본 블루 모스크

 물론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 그랜드 바자와 보스포러스 해협 등도 이스탄불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곳이고 누군가는 단지 그곳을 보는 것만으로 이곳에 온 보람을 느낄 만큼 아름다운 곳들이다. 그저 이미 흐린 이스탄불에 사로 잡혀 버린 나에게 그만큼 와 닿지 않았을 뿐.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한국 사람들도 많이 오는 곳이기에 곳곳에서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고, 또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도 몇 군데 있다. 그런 곳을 찾아가면 여행 정보 등도 얻을 수 있고 오랜만에 우리 말로 실컷 떠들며 회포를 풀 수도 있다. 단, 한국인이라고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는 문제가 발생한 한국인 여행객으로 가장해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을 등쳐 먹는 사례들이 가끔씩 보고 되고 있으니 조심하자.

수산물 시장

골든 혼 옆에 있는 수산물 시장

아가미 꽃

생선의 신선도를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인지, 마치 꽃처럼 아가미를 뒤집어 놨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존 - 아야 소피아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야 소피아는 이스탄불에서 그랜드 바자와 함께 제일 유명한 곳일 것이다. 기원 후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들에 의해 세워진 성 소피아 성당은 그 후 약 10C간 성당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 왔다. 그러다 15C 무렵,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이스탄불 - 당시는 콘스탄티노플. 점령 이후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 이 점령 당하면서 성 소피아 성당도 그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투르크 인들은 이 성당을 파괴하지 않았고 - 바로 이 투르크인들의 아량 덕분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멋진 건축물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 단지 몇 가지를 더하여 자신들의 회교 사원으로 사용했으며 근세까지도 아야 소피아는 중요한 회교 사원 중 하나였다.

아야 소피아 내부

아야 소피아 내부

 그렇게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의 기억들이 희미해져 가고, 이곳이 성당이었던지도 잊혀져 갈 즈음 우연히 드러난 회벽 안쪽에서 발견된 기독교 모자이크 벽화들이 이곳의 옛 역사를 현세에 되살려 주었다. 그리고 터키 정부는 이곳을 한 종교의 전유물로 두지 않고자 회교 사원도 성당도 아닌 박물관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참으로 멋진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내부에서는 회벽에 뒤덮인 옛 기독교 모자이크 벽화들을 복원하기 위한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며 이 곳을 보기 위해 일년 내내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다.

모자이크 벽화

벗겨진 회벽 사이로 드러난 모자이크 벽화는 굉장히 화려해서 당시 이 곳의 영광을 엿볼 수 있다

신성한 종교 의식 - 수피 댄스

 이스탄불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중의 또 하나는 수피 댄스이다. 이제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식당의 무대에서 저녁 공연으로 열릴 정도로 그 신성함과 가치가 격하되었지만 원래는 이슬람의 한 종파인 수피교의 수행자들이 추는 춤이다. 커다란 치마와 모자를 쓴 수행자들이 한 없이 빙글빙글 제자리를 도는 춤인데 짧게는 십분, 길게는 삼심분 가까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춘다. 이때 한 손을 위로, 다른 한 손을 아래로 향하는 것은 하늘, 그리고 땅과의 교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수행자들이 한 없이 돌며 춤을 출 때는 너풀거리는 옷자락이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데 그 아름다운 형태가 수피 댄스를 보고 싶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난 좀 제대로 된 수피 댄스를 감상하고자, 전통 종교 단체의 공연을 따로 예약해서 보았는데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만 빼면 들인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하나, 둘 씩 나오기 시작한 수행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 없이 돌며 교감을 꾀하는 그 모습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수피 댄스 공연

수피 댄스 공연

 이스탄불에서는 상당히 많은 곳에서 수피 댄스 공연을 광고하고 볼 수 있는데, 주점의 무대에나 올라오는 공연보다는 조금 더 제대로 된 공연을 보기를 추천한다. 그 중 하나는 지금은 운행이 중단된 오리엔탈 특급 열차의 종착지였던 중앙 기차역에서 하는 공연이다. 이곳은 카메라 셔터 소리조차 방해가 될 만큼 경건한 분위기에서 제대로 된 수피 댄스를 느껴 볼 수 있다.

수피 댄스 공연

수행자들은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면서 무아지경에 빠져 들고 하늘과의 교감을 꾀한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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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jajan.tistory.com BlogIcon 짜잔형 2007.12.22 10:5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자전거 여행을 하시나봐요... 자유로운 영혼이 부럽습니다~~

    • Favicon of http://downeve.tistory.com BlogIcon 바위풀 2007.12.24 23:2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게 제 희망사항 중 하나예요~
      지금은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