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만나다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이스탄불을 떠나던 날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올 거라던 일기 예보와 달리 잔뜩 구름만 낀 하루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점심 무렵이 되면서부터 장대비가 쏟아진 통에 우리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고, 결국은 예정보다 가까운 실리부리에 숙소를 잡았다. 잔뜩 젖은 짐들을 정리하고 씻은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니던 중에 한 작은 호텔의 입구에 놓여져 있는 자전거를 발견했다. 한눈에 보기에 여행자의 느낌이 나는 자전거.

기타

실리부리에서 만난 일본인 라이더, 기타 노부유키

 그래서 무작정 그 호텔로 들어가 만나게 된 사람이 바로 기타였다. 일본에서 온 기타는 4월경부터 시작해 우리랑 비슷하게 대륙을 가로 질러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늘 혼자 다녔다던 기타는 우리에게 당분간 라이딩을 같이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새로운 인연이 반가웠던 우리 또한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해서 다음 날부터 함께 하게 된 우리들의 인연은 생각지도 못하게 리스본까지 이어졌다.

기타 노부유키 이야기

 류블랴나에서 잠시 헤어지게 되기 전까지 함께 지냈던 약 3주 동안 기타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일본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인 라이딩을 시작한 기타는 파키스탄, 이란을 거쳐 온 우리와 달리 중국에서 중앙 아시아 쪽으로 넘어가 터키로 들어 오는 경로를 따라 왔다. 기타가 계획한 경로는 일단 리스본까지 간 후에 다시 파리로 올라가 일본으로 돌아 가는 것이었다. 기타는 이번 여행을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 했다. 대륙을 가로 지르는 자전거 횡단을 스스로 해낼 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기타는 자동차의 진동 설계와 관련한 엔지니어였는데 망가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비디오 게임과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는 어찌 보면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일본 사람 타입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농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었다는 기타는 또 보기와 달리 굉장히 감수성이 예민한 타입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 영화 중에서 <엽기적인 그녀>를 제일 좋아해서 이 영화만 네, 다섯 번 정도 봤는데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특히 전지현이 산에 올라가 "견우야, 미안해......"를 외치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울게 된단다. 기타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러브 레터>의 "오겡끼 데스까?"를 잘 따라 하는 것처럼 전지현의 저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점심

기타가 가지고 있던 일본 카레로 점심을 해결했다

 또 기타는 원폭 피해를 직접 겪은 일본인으로서 일본이 핵을 보유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만 빼고는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이었다. 야스쿠니 신사나 그 외 아시아 나라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 내 몇몇 정치인들의 문제에 관해서도 기타는 극우 경향을 보여 주었다. 신사에는 다른 조상들도 있기 때문에 참배를 하는 것이며 그것을 다른 나라들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기타와 우리는 같이 지내기 상당히 힘든 사이일 수도 있었는데 우리가 함께 지내는 동안은 전혀 그런 걸 의식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는다고 할 때 사람들을 편견 짓게 하는 여러 고정 관념들을 벗어 버린다면 그때야 말로 참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사람들이 만나 관계를 맺을 때 학교는 어디인지, 지역은 어디인지를 따지며 그에 따른 편견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나 또 특히 일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싫어라고 외치는 것도 바로 그런 고정 관념의 영향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여행 중에 인간 관계를 맺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 같은 나라 사람이든, 다른 나라 사람이든 간에 - 여행 중에는 여러 고정 관념이나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자 대 여행자로서의 만남. 때로는 그 관계가 더 깊어질 수도 있고 또는 잠시 스쳐가는 사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순수한 마음으로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하나의 까닭이다.

앤디패디

라이딩 도중에 만난 영국인 친구 앤디와 패디. 이들은 런던에서 이스탄불까지 5개월째 도보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가리아 입성, 가을을 느끼다

 지형적으로는 이스탄불의 서쪽부터 유럽인지 모르겠지만 불가리아에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유럽에 들어 왔다는 느낌이 났다. 에디르네를 떠나 불가리아로 입국하던 날 아침은 짙은 안개가 껴 있었는데 그 풍경이 내 뇌리 속에 있는 동유럽의 느낌을 더해 주었다. 낮부터는 날씨가 맑아져서 오랜만에 고글도 검은 색 렌즈로 바꾸었는데, 간만에 따뜻한 햇살 아래서 라이딩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하쉬코브

하쉬코브. 노랗게 물든 은행이 가을이 다가 왔음을 알려 주었다

 첫날 머무른 하쉬코브에서는 시내 주변의 수로를 따라 쌓여 가는 낙엽들이 부쩍 다가온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국경 하나 지났을 뿐인데 터키에서는 가을이 왔다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 왔었다. 한국을 떠날 때가 봄의 절정인 5월이었는데 어느 새 이렇게 시간이 지났다. 이후 하쉬코브, 파르디직, 이흐티만을 지나 소피아까지의 시간은 짙어 가는 가을과 함께한 라이딩이었다.

하쉬코브

하쉬코브

  하지만 가을의 정취를 즐기는 것과 함께 걱정도 따라 왔다. 얼마 안 있으면 낙엽도 다 지고 발칸에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 전에 발칸을 빠져 나가야 할텐데 처음 예정보다 일정이 계속 늦춰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이탈리아 북부에 진입했어야 했는데 이제야 동유럽에 들어 왔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눈 내리는 가운데 라이딩을 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까 어서 이 곳을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달려야 했다.

부고

불가리아의 독특한 풍경 하나. 이 곳에서는 부고를 이런 식으로 동네에 알렸다

이흐티만

소피아 들어 가기 전날 묵었던 이흐티만.

이흐티만

도시 전체를 신비한 마력이 감싸고 있는

이흐티만

듯한 묘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과 하겐 크로이츠

 아침 일찍 찾아간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은 아직 찾아온 사람들이 없어 한적했다. 내가 혼자 안으로 들어서자 기념품 가게를 지키고 있던 할머니가 긴 양초 하나를 건네 주며 기도를 하라고 일러 주었다. 비록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성당에 오면 늘 차분해지는 걸 느꼈기 때문에 경건한 마음으로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성당 앞에서는 작은 골동품 시장이 열리고 있었는데 각종 낡은 물건들 - 사실 별로 진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물건들이 태반이었다 - 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었던 건 바로 나치의 상징물인 하겐 크로이츠가 새겨져 있는 각종 기념품들이었다. 배지나 메달부터 시작해서 반지, 펜던트, 라이타, 담배갑 심지어는 가짜 라이카 카메라에 새겨진 나치의 문양까지 하겐 크로이츠와 관련해서 없는 게 없었다.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소피아의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나치의 문양이라면, 더더군다나 유럽에서는 피해야 할 상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버젓이 팔리고 있다니. 호기심이 생긴 나는 머물고 있던 호스텔의 주인 아저씨에게 골동품 시장의 나치 기념품들에 대해 물어 보았다.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물건이 가짜이지만 아주 가끔씩 진짜 나치 시대의 물건이 들어 오기도 한다고 했다. 불가리아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 편에 서 있었는데 그런 연유로 이런 물건들이 흘러 나오는 것이란다. 그는 이 물건들이 다른 유럽 국가 사람들에게 좋은 기념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나치 관련 상징물들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것들이 좋은 기념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긴 논쟁은 원치 않았기에 다른 말을 더 하지는 않았지만 2차 대전 당시의 불가리아를 이야기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살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치가 승리했더라면 불가리아도 승전국이 될 수 있었을 꺼라며 주인 아저씨가 순간적으로 아쉬움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아저씨의 생각을 받아 들일 수는 없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니쇼우키(욱일 승천기 - 일제 시대의 일장기)가 기념품이 될 수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점령 하에 있던 혹은 연합군이었던 다른 유럽 국가 사람들에게 하겐 크로이츠가 어찌 기념품이 될 수가 있겠는가. 물론 독일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전후 자체 청산을 제일 열심히 한 나라이기도 하고, 여전히 나치와 관련한 사항들은 독일에서 굉장히 금기시되는 것들이다. 최근 들어서 네오 나치니 스킨 헤드니 하는 정신 나간 세력들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에서 나치는 여전히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소피아의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은 19C 후반 불가리아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함께 싸웠던 여러 나라의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다. 당시 오스만 제국에 점령 당해 있던 불가리아를 위해 러시아와 동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의 군인들이 함께 싸운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죽어간 군인들을 위해 세워진 성당 앞에서는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나치의 기념품이 팔리고 있다니...... 조금은 슬픈 기분이 들었다.

EU 가입

내가 불가리아에 머물던 때는 불가리의 EU 가입이 63일 남아 있었다. 그들의 오랜 숙원이었기에 다들 조금은 들떠 있었지만, 그 전에 확실한 역사 청산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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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eloyou.com BlogIcon 멜로요우 2008.01.13 02:2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불가리아라..ㅎㅎ
    불가리아의 사진들은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아요 ㅎㅎ
    생각보다는 약간 고풍스러운 느낌이 ㅋ;
    특히나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이 참으로 인상적이네요 ㅎㅎ
    성당의 모습과 주차된 차들의 모습의 대비가 참 묘하게 느껴져요 ^^

  2. Favicon of http://solut2000.tistory.com BlogIcon 우성군 2008.02.02 01:2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불가리아 갔을 때 날씨가 흐렸는데, 도시 분위기와 딱 맞아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