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머물 때이다. 며칠 째 더블룸처럼 사용하던 숙소의 6인실 도미토리에 사람들이 꽉 들어 찼다. 그 중에서는 미국에서 온 로스 - '프렌즈'의 로스와 이름이 같다. - 도 있었다. 한 NGO 단체를 통해 슬로베니아에서 2년간 일하고 이제 미국으로 돌아 간다는  로스는 몇마디 얘기를 나누다가 불쑥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물어 왔다. - 당시가 2006년 가을이었으니까 한창 북핵 문제가 시끄러울 시점이었다. - 그래서 솔직히 난 북핵 문제에 대해 그렇게 크게 걱정을 하지 않으며 내가 알고 있는 대체적인 남한 사람들도 김정일이 실제로 핵을 사용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로스도 김정일이 진짜로 핵을 사용할 것 같지는 않단다. 김정일 자신도 핵을 사용하는 건 곧 자살 행위임을 알고 있을테니까. 단지 로스가 걱정하는 건 북한의 핵이 다른 나라나 다른 집단에게 흘러 들어 갔을 때의 문제였다.

 로스는 미국의 대도시들이나 테러가 일어 났던 유럽의 몇몇 도시들을 말하며 그 같은 걱정을 했다. 그도, 나도 9.11이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가 또 다른 테러를 걱정하는 이유가 거기서 시작 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9.11이 일어나던 날 밤, 난 부산에서 제주도로 향하는 배 안에 있었다. 당연히 TV나 인터넷도 없었고 그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처음 소식을 접한 건, 배에서 내린 뒤 아침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였다. 상에 있던 신문 1면을 본 내 머리 속에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우와, 무슨 영화인데 이렇게 신문 1면에 크게 광고를 하지?"

 그리고 TV를 켰을 때, 그 생각은 곧 눈물로 바뀌었다. 끔찍한 광경.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음. 나랑 일말의 연도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죽어 갔다니 너무나 비참하고 슬펐었다.

 이제 그 후로 6년이 흘렀다. 무슨 사건이든 그렇듯이 9.11 또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하지만 로스는 9.11을 제일 가까이에서 겪은 미국 사람으로서 그 충격은 쉬이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로스와의 대화를 통해 테러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테러를 방지하겠다고 미국이 이곳, 저곳 들쑤시고 다니는 게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테러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건 너무나 자명한 논리다. 왜 모두가 한발짝 물러설 줄 아는 관용을 갖지 못하는 걸까. 극한과 극한의 대립으로 마주하다 보니 자꾸만 부딪치고 폭발이 일어나는게 아닐까 싶다. 헛된 꿈이겠지만 언젠가는 사람들 간의 대립에 의해 누군가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어지면 좋겠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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