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에 들어오다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
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슬로베니아

슬로베니아 시골길 풍경

 자그레브를 떠나 슬로베니아로 들어 오는 길은 골치 아픈 일의 연속이었다. 겨우 30km 남짓한 거리인데도 출발한지 네 시간 가까이 되어서야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를 탈 수 없었기 때문에 국경으로 향하는 국도를 계속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고속도로의 갓길로 국경까지 갔다. 그 와중에 끝까지 지방도를 찾아 봐야 한다는 기타랑 의견 충돌이 있었고, 또 고속도로로 들어 와서도 경찰에게 설명을 하고 오느라 이래저래 시간이 늦어진 것이다. 그렇게 여차여차 해서 국경까지 왔지만 슬로베니아에서의 라이딩도 만만치 않았다. 이곳에서도 계속 지방도를 타고 가야 했는데 가지고 있던 지도와 도로 표지판이 잘 맞질 않아 한참을 헤맨 후에야 제대로 된 길을 찾곤 했다. 그렇게 슬로베니아에서 첫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해서 류블랴나에 들어온 시간은 밤 여덟 시가 다 되어서였다.

식당

국도변 휴게소 식당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류블랴나

드래곤 브리지

류블랴나의 상징, 드래곤 브리지

 이런저런 고생 끝에 류블랴나에 도착한 나는 작은 기대감에 차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광양의 지인 집에 들를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처음 보는 월간지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류블랴나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었다.

 "류블랴나는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도시가 간직한 그만의 아름다움 때문에 얼마 전부터 서유럽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광지로 주목 받기 시작하고 있는 곳이다."
 
 이 중에서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도시의 이름이 간직하고 있는 뜻이었다.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래서 난 전에는 들어 보지도 못했던 이 도시에 대한 작은 환상을 간직한 채로 이 곳에 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집

수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집들의 풍경

 그리고 류블랴나는 그런 나의 기대를 저 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작은 도시라 세 시간 정도면 전체를 다 보기에 충분할 거라고 얘기했지만 천천히 구석구석의 숨겨진 아름다움들을 보고 있자니 그 정도 가지고는 부족했다. 오래된 류블랴나 성에도 올라가 보고, 수로를 따라 걸으며 색색의 집들이 서 있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중심가의 광장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파는 길거리 가게들, 맥도날드가 있는 시내 중심가도 재미 있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이곳 저곳에서 새로운 풍경들이 눈을 사로 잡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류블랴나

류블랴나 시내

농구장

호스텔 옆의 농구장은 온 벽이 그래피티로 가득 차 있었다

 오후 늦게 올라간 류블랴나 성에서는 얕게 깔려 있던 구름 사이로 새어 들어와 온 도시를 비춰 주는 햇살을 만났다. 마치 태양마저도 이 도시가 왜 사랑스러운 곳인지 알려 주려는 것 같았다. 구석구석에 따스한 햇살을 드리우면서 '여기 좀 봐 줘."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류블랴나

따뜻한 햇살이 도시를 비춰 주었다

베네통

거리를 걷다가 발견한 가게. 완전히 베낀 가짜인 줄 알았는데 진짜 베네통에서 나온 이너웨어 브랜드였다

안녕, 기타

 터키에서부터 3주 정도를 함께 했던 기타와 헤어지게 되었다. 우리가 류블랴나에서 하루 더 휴식을 취하는 동안 기타는 먼저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기타는 이곳을 떠난 후에 베네치아를 거쳐 피렌체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랑 경로도 조금 달라졌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기타를 붙잡고 밤에 미리 사 두었던 쵸콜렛 한 봉지를 비상 식량으로 쥐어 주었다. 제법 많은 얘기도 나누고 친해졌었는데 이렇게 헤어지려니 조금 아쉬웠지만 서로의 길이 있었기 때문에 붙잡을 순 없었다. 대신 모두 다 무사히 리스본에 도착해서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떠나는 기타를 배웅했다.

기타

기타가 떠나던 날 아침 함께 사진을 찍었다

조지아 주 아가씨, Chloe + Leah

도미토리

평화로워 보이던 도미토리의 아침 풍경

 호스텔의 도미토리에 커다란 기타를 둘러멘 아가씨 두 명이 들어 왔다. 낮에 시내에서 만났던 길거리 예술가들이었다.

 "안녕. 조지아에서 온 Chloe야."

 옆에 있던 친구가 말을 건넨다.

 "조르지아(그루지야 - 독립국가연합)?"
 "아니, 아니. 조지아 주(state). 미국에서 왔어."

 둘은 미국에서 온 자매였는데 간간이 공연을 하며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쾌활함으로 가득한 이들은 방에 들어 와서도 이리저리 인사를 하며 분주하더니 밤에 호스텔 뒤쪽의클럽에서 공연이 있다며 사람들을 초대했다. 활기차게 휘젓고 다니는 둘이 있으니 방 안의 분위기도 왠지 모르게 즐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날 밤의 공연은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쌉싸름한 맥주 한 잔과 함께 감상한 둘의 음악은 컨츄리 뮤직부터 랩까지 다양했는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실력도 괜찮았다.

Bar Ch.0

공연이 있던 Bar Ch.0

 이들의 다음 목적지는 이탈리아였는데 이곳 저곳 공연할 곳을 찾아 다니며 여행을 하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기타 하나 달랑 매고 떠나는 여행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음악 여행, 혹은 사진 여행처럼 목적이 있는 여행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음악과 함께 하는 여행, 사진이 있는 여행 정도가 적당한 표현일 것 같다. 음악이나 사진,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이들의 쾌활함은 둘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였다. 여행을 하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때로 이들처럼 주변 모두에게 즐거운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과의 만남은 간혹 여행에 지쳐 있던 다른 이들에게 작은 활력소가 되어 주기도 한다.

Chloe+Leah

조지아 주 아가씨, Chloe + Leah

  기타도 떠나고, 일행의 무릎 상태도 좋지 않아 이곳부터 베네치아까지는 혼자만의 라이딩을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살짝 긴장해 있던 나에게 이 음악 자매와의 만남은 한 알의 비타민 같은 것이었다. 약간 경직되어 있던 몸도, 마음도 풀리고 새로운 기운으로 자신을 충전할 수 있었다. 그래, 이제 또 힘을 내서 달려 봐야지. 이곳만 떠나면 드디어 이탈리아, 이제 목적지인 리스본도 눈 앞에 보이고 있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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