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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01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 #18. 미르코 크로캅의 고향, 크로아티아 (4)

미르코 크로캅의 고향, 크로아티아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고속 도로변의 숙소를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국경에 도착했다. K-1 선수 미르코 크로캅의 고향이기도 한 크로아티아는 같은 이유로 기타가 제일 기대하고 있던 곳이기도 했다. 크로캅은 자국에서도 유명 인사인 모양이었는데 길에서 만난 한 꼬마는 자기가 크로캅의 팬이라며 말을 걸어 오고, 자그레브에서 만난 한 경찰은 크로캅이 자신의 무술 교관이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실제로 크로캅은 경찰 출신이었기에 자신의 별칭을 그렇게 정했고, 크로아티아에서는 국민 영웅 정도의 대접을 받는 것 같았다.

기타

기타 노부유키, 크로아티아 입국 기념 킥!

  크로아티아에 들어오면서부터는 경찰들이 고속도로로 라이딩을 하는 것을 금지하여 국도로 라이딩을 해야 했다. 하지만 거리는 좀 더 멀어지고 길 상태는 안 좋아졌을지 몰라도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넉넉한 교외 풍경들과 동네 사람들을 만나는 맛은 더해졌다.
 
 입국 첫날은 국도 라이딩의 여파로 예정보다 거리가 길어져서 거의 40km를 넘게 더 달렸는데 야간 라이딩 중에 굉장히 멋진 풍경을 만났다. 분명히 달이고 어두운 하늘엔 별까지 떠 있었는데 달이 마치 석양처럼, 아니 그보다 더 붉게 물들어 있던 것이다. 그렇게 붉은 달을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사진만 언뜻 보면 마치 지는 해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붉은 달

붉은 달

 둘째 날은 함께 라이딩을 하던 일행의 무릎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서 예정보다 일찍 숙소를 잡았다. 예전에 한 번 다친 적이 있는 무릎이라 했는데 계속된 라이딩 때문에 무릎에 피로가 누적되었던 것이다. 결국 다음 날은 기타와 나만 라이딩을 하고 일행은 차를 타고 이동한 후 자그레브에서 함께 합류하기로 했다.

 기타와 둘이서만 라이딩을 하다 보니 한국에서부터 함께 했던 일행이 얼마나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존재인지를 문득 깨닫게 되었다. 때론 서로 불편한 시간도 있었고 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을 함께 했던 지금까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힘이 되 주고 있던 것이다. 자그레브에 도착하면 다시 기운을 차려 꼭 함께 달려야지라고 생각하며 난 다시 힘차게 페달을 굴렸다.

당구

식사 시간을 이용한 당구 한 판. 지는 사람이 내는 거야?

한적한 일요일 아침의 자그레브

 자그레브에서 첫 산책을 시작한 아침은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연 가게도 적었고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몇몇 사람들과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들 조금을 빼면 인적이 드물었다. 구름이 짙게 낀 하늘은 도시에 고색을 더하려는 것 같았지만 대개가 현대식으로 리노베이션된 건물들은 그다지 옛스러울 것이 없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터벅터벅 걷다가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시내 주변부에 있는 작은 성당이었다. 마침 내가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미사가 시작되었는데 대여섯 명의 현지인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도시의 조용한 분위기에 빠져 있던 나도 잠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차분하게 앉아 있다가 성당 밖으로 나왔다. 오후에는 미리 팜플렛을 봐 두었던 <Nordic Cut>이라는 사진 전시회에 다녀 왔다.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스타일의 사진들을 보여 주는 전시회였는데 세가지 색의 아크릴판으로 한 장의 사진을 삼등분해 보여 주고 있는 사진과 거대한 숲 속에 조명을 비추고 나무들에 여러 다국적 기업들의 상징이 표시되어 있는 사진이 인상 깊었다. 두 명의 소녀가 높은 지붕 위에서 서로를 향해 질주하려 하고 있는 <Game #1>이라는 사진이 있었는데 작가 정보를 보니 곽현진, 한국 사람이다. 소속이 Helsinki School인걸 보니 아마 그쪽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인 듯 했다. 낯선 나라에서 이런 사진전을 본 것도 흥미로웠는데 마침 그 속에 한국인 작가도 있다니 더 재미있었다.

자그레브

자그레브 시내

 야경을 찍으러 시내 중심가를 돌아 다닐 때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떼의 단체 관광객을 만났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기에 별 신경은 쓰지 않고 지나갔는데 조금 더 걷다 보니 국내 최대 규모의 여행사 이름이 적혀 있는 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이런 곳까지 패키지 여행 상품이 있나 보다. 제법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나니 조금은 무섭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정말 여행사를 통해 못 가는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수요가 있는 곳이면 상품을 만들어 팔기 때문에 찾아 보기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다. 선택의 폭이 다양해진다는 점에서 좋기는 했지만 때로는 무작정 발 닿는 범위만 늘리는 것 같아서 걱정 되기도 한다.

자그레브

자그레브

 일행의 무릎 상태가 나아지질 않아서 이곳 자그레브에서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까지 다시 나랑 기타만 라이딩을 하기로 했다. 슬로베니아에서 일행과 합류할 숙소를 정한 후에 잠자리에 든 내 머리 속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곳에서는 다시 몸이 나아져서 함께 달렸으면 좋았을 텐데 계속 몸 상태가 나아지질 않으니까 걱정이 되었다. 기타랑도 류블랴나에서쯤 헤어질 예정이었고 이제는 다시 나랑 일행 둘만 남게 되니까 서로 잘 의지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오래 누적된 무릎의 피로가 쉽사리 풀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난 "며칠 더 쉬면 나아지겠지, 잘 될거야."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내일이면 슬로베니아로 입국한다. 아마 또 새로운 날을 맞고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겠지.

기타

기타. 크로캅을 추억하는 거야?

<어린 왕자> 컬렉션
 
 앙투앙 드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몇 번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점을 발견하고 날 감동시켰다. 중국의 시안에 머무를 때, 문득 이번 여행에서 <어린 왕자> 책을 모으면 괜찮은 수집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각 나라에서 그 나라 말로 된 <어린 왕자> 책을 사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직접 그 나라에서 책을 사는 것이었기에 스스로에게 더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잠깐의 생각으로 시작된 책 모으기는 크로아티아까지 이어졌다.

 자그레브를 떠나는 날 아침, 출발하기 전에 제일 먼저 책방에 다녀 왔다. 책방에는 세 종류의 <어린 왕자> 책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나라들 중에 종류도 제일 많고 책의 디자인도 예뻐서 고르기가 쉽질 않았다. 그 중에서 중간 크기에 하드 커버, 사이사이 칼라 삽화도 잘 들어가 있는 책을 고르고 나니 가격이 90 쿠르나. 오늘 크로아티아를 빠져 나갈 예정이었기에 마침 내게 남아 있던 돈은 89.95 쿠르나였다. 하지만 환전소가 문을 열려면 아직 1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고 또 출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일행을 생각하니 무작정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친절해 보이는 종업원에게 조금 부족한 돈으로 살 수 없겠냐고 물어 보니 흔쾌히 그렇게 하랜다. 내가 돈이 부족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기가 미안하다며 책을 포장해 주는 직원과 원하는 책을 샀다는 기쁜 마음에 자그레브에서의 마지막 날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선물이나 기념품, 더군다나 나 자신을 위한 물건은 거의 사지 않는 편이다. 여행 중에는 충동 구매의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필요 없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왕자> 컬렉션은 지금까지 내 여행 중에 가장 잘 샀던 것들이라고 느끼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 컬렉션이 내 방에서 최상석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 애석하게 이란 편은 우편 운송 중에 사라져 버리고 이제 한국을 포함해 13개 나라판만 있는데 앞으로 전 세계 모든 나라, 모든 언어의 <어린 왕자> 책을 모으는 것이 소박한 한 가지 희망이다. - 여행을 할 때 면세점에서 기념품을 사는 것도 좋지만 <어린 왕자> 책처럼 자신에게 소중한 의미가 될 수 있는 물건을 한 가지 골라서 모아 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를 더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크로아티아 라이딩

One Fine Fall Day. 크로아티아 입국 첫 날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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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ast2.tistory.com BlogIcon east 2008.02.02 06:0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어린왕자 책을 좋아하시는 군요.
    저도 여행하는 내내 읽을거리로 어린왕자를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여행내내 영문판을 외우는것을 목표로 가지고 다녔는데 ^^
    나라별로 어린왕자 컬렉션 13개나 가지고 계시다니 부럽습니다.
    나만의 전리품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게 아쉽기도 하고요.. 여행기 잘보고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downeve.tistory.com BlogIcon 바위풀 2008.02.02 19:0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잘 보고 계신다니 감사합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고 여유가 생기면 모은 책들을
      전시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갖고 싶어요.

  2. Favicon of http://grey-chic.tistory.com BlogIcon 필그레이 2008.02.03 01:1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헉...이런 반가운 연재를 하고 계셨군요.블로그 쉬느라 몰랐어요.좀 둘러보다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