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하다. 그 어떤 것도 확실해 보이는 것은 없다. 명확한 형태는 보이지 않고 희미한 윤곽만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언뜻 본다면 잘못 인화된 사진쯤으로 보일 법도 하겠다.

 민병헌의 <SNOWLAND>를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흐릿함이 작품을 감상할수록 내 마음 속에서 명확해져 간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눈에 보이는 뚜렷함이 아니다. 저 멀리 눈 덮인 언덕 너머로 희뿌옇게 보이는 나무의 끝자락에서, 이것이 무엇인지 알기조차 힘든 사진 속 풍경 저 너머에서 혹은 화면 가득 메운 검은 숲을 배경으로 희뿌옇게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어떤 명징함이 전해진다. 뚜렷한 건 없는데 뚜렷하다. 아니 사실 뚜렷한 것이 없다는 건 단지 시야가 뿌옇다는 이유로 내린 나의 편견일 수도 있다. 민병헌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있는 그대로라는 것, 곧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은 그것이 명백한 것이라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존재는 명백함을 담보로 한다.

SL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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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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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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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OWLAND>를 감상하다 보면 작가의 고집이 느껴진다. 오직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만 천착한 작가의 옹골찬 고집 말이다. 다른 이의 시선과 타협하지 않는, 자신에게만 집중하려는 의지가 이 사진집에는 담겨 있다. 자신에 대한 평론이나 일체의 사진 외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민병헌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보면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러한 고집은 당연한 것 같다.

 민병헌은 사진 전공자가 아니다. 몇몇 사진가에게 사사 받았다고는 하지만 무협지로 보자면 변변한 뿌리가 없는 사파에 속할 것이다. 한국 사진계에서 이러한 그의 배경은 그가 더 자신만의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까닭이 되기도 한다. 평론가 박영택의 표현처럼 민병헌이 돌올 할 수 있었던 힘은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고집과 기존의 것 – 제도권 내의 사진 시류 - 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방향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사진 제도권 밖에서 사진가로서 성장한 것은 이러한 시류에 얽히지 않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SL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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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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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지로 재개발 지구”, “별거 아닌 풍경” 등의 초기 연작에서 민병헌은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이 시기 그의 사진에는 경계와 형태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후 “잡초”를 거쳐 “안개”, “하늘” 등의 연작으로 오면서 형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대신 윤곽이 들어 왔다. 그리고 그 윤곽들은 점점 더 흐릿해져만 갔다. 화면을 가득 메운 하늘 아래 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땅의 윤곽(“하늘” 연작 중)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SNOWLAND>는 이러한 후기 작업들에 더 가깝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여전히 화면은 뿌옇고 명확히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조금씩 제 속살을 드러내는 윤곽만으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뿌연 풍경 속에서 뿌옇지 않은 느낌이 전해져 온다. – 작가가 그런 느낌을 의도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내가 감상할 때는 그렇게 느껴진다. – 명백한 것이 없는데도 명백해진다.

SL111

SL111

 나는 민병헌의 초기 연작들보다 이러한 후기 연작들을 더 좋아한다. 보여 주지 않으면서 혹은 스스로가 보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무언가가 보이는 사진들이다. 그러한 사진들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민병헌의 작업들은 한 마디로 “멋지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떠한 작업들을 이어갈지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사진을 찍는 한국의 한 사진가인 그를 늘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 참고 서적
 <SNOWLAND>, 민병헌, 도서출판 호미, 2007
 <열화당 사진문고 – 민병헌>, 박영택, 열화당, 2005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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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rey-chic.tistory.com BlogIcon 필그레이 2008.06.12 00:5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민병헌님을 기억해두어야겠네요.'제도권밖에서의 사진가'라고 표현하신 점도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그림같기도한 사진들이 참 제겐 충격적이기도 하고 새롭기도 합니다.사진집에 관심은 늘 있었지만 사실 유행따라 맘가는 대로 간이 맞춰져 있는 편한 사진집만 본 게 아닐까하는 자괴감마저 드네요.언제 사진집 꼭 봐야겠습니다.소개 감사드려요.^^

    • Favicon of http://downeve.tistory.com BlogIcon 바위풀 2008.06.13 00:1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부족한 제 글이 민병헌님을 알게 되는데 오히려 해는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필그레이님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어디선가 마주한 듯한 아련함과 에로티시즘

* <현대 예술의 이해> 수업 보고서로 정리했던 자료입니다.

 이번 보고서의 주제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예술가인 신디 셔먼, 그리고 그녀의 작품들 중에서도 제일 유명하고 초창기 시리즈 중 하나인 <Untitled Film Stills>입니다. 저는 우선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기본 지식을 최대한 배제한 채 작품 자체만을 감상하였습니다. (작품 감상 자료 출처는 마지막에 정리하였습니다).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본 후에 든 생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는 이미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마 신디 셔먼 자신이 사진을 연출할 때, 스스로 가지고 있던 기존의 유명한 이미지들을 차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 하지만 셔먼은 특정 사진에 특정 영화나 장면을 생각하고 찍은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뒤편에서 다시 이야기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다수의 사진들에서 묘하게 남성을 자극하는 듯한 에로티시즘이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무표정한 여인들의 표정도 그렇고 클로즈업 된 사진뿐만 아니라 때로는 멀리서 찍은 사진(#63, 1980)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63

#63

 셔먼 스스로가 기존의 다양한 이미지를 차용하려 했기 때문에 처음 작품을 접한 사람에게도 익숙한 풍경이 연상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로티시즘의 경우에 셔먼이 그런 의도를 품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것 또한 이미 남성들에게 익숙한 어떤 이미지에서 오는 느낌일수도 있을 듯 합니다.


시리즈에 대한 셔먼의 변모호성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첫 번째 감상 이후, 셔먼 자신이 시리즈에 대해 말한 내용들과 그녀의 연혁 등에 관해 공부를 해 보았습니다. (참고 자료 마지막에 정리.)

 사실 그녀 자신은 <Untitled Film Stills>의 작업이 계속될 줄은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처음 Hallwalls(Robert Longo, Charlie Clough와 셔먼이 같이 모여 살던 집이자 작업 공간)의 그룹 전시에 시리즈의 시초가 되는 여섯 점의 작품을 처음 내 놓았을 때, 그녀는 작품의 방향이나 주제에 대한 특별한 자각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즐기고 있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시점이었죠. 그리고 그 여섯 점에서 그녀는 한 캐릭터로 서로 다른 모습을 연기하였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지는 않았습니다. - 하지만 이후 셔먼은 시리즈를 계속하기로 결정하면서 좀 더 많은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셔먼이 <Untitled Film Stills>를 작업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바로 모호성(ambiguity)입니다. 그녀가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고 작품 번호조차 최소한의 식별 목적으로만 이용한 것은 바로 그러한 것들이 작품의 모호성을 해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에 Metro Pictures의 전시를 위해 작품에 번호를 붙일 당시에는 번호가 연도에 따라 붙여졌지만 나중에는 그러한 규칙마저 없애고 오직 순수한 식별 목적으로만 번호를 붙였습니다. – 시리즈의 작품 번호는 대략 #65 정도까지, 그 후 다른 시리즈의 작업 기간을 지나 #81 ~ #85가 추가 되었습니다. 잃어 버렸던 네거티브 원본에서 시리즈에 마지막으로 추가한 작품(70번째 작품) #62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것들을 통해서 그녀는 사람들이 최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은 채 작품을 바라보게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62

#62, 오랫동안 잃어 버련던 필름을 찾아 시리즈에 추가하였다.

 셔먼이 이런 식의선입견을 갖지 않을 수 있는모호성을 획득하려 했다는 증거로 보이는 다른 하나는 그녀가 사진에서 많은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의 스틸 컷들을 보면서 공부를 하던 그녀는 많은 영화의 스틸 컷이나 공개적으로 배포된 사진들이 강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때로는 영화가 정말 웃기거나 행복한 것이 아닌데도 배포된 사진 속의 캐릭터는 웃고 있기도 했습니다. – 제가 생각하기에 스틸 컷 자체가 강한 감정을 내포함으로써 그것을 보는 사람들 또한 은연 중에 그 감정에 끌려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무의식 중에 그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선입견을 주입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하다, 슬프다 등의 감정을.그러나 그녀가 이러한 사진들보다 좋아했던 것은 최대한 무표정, 무감정에 가까운 느낌의 사진들이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주로 유럽 쪽의 영화에서 간간이 찾을 수 있던 그런 스틸 컷들은 때로는 모호하면서도 신비스러웠습니다.

 셔먼은 자신의 작품에서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철저히 계획된 연출만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그럼으로써 선입견이 없는 모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녀 스스로가 보기에 자신의 작품 중에 가장 강렬한 감정이 표현된 작품은 일명 “울고 있는 소녀(crying girl)(#27, 1979)이라 불리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조차도 이미 눈물을 다 흘린 후에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 있지 않는 듯한 분위기와 주인공의 공허한(blank) 표정으로 감정 표현을 절제하였습니다.

#27

#27, crying girl

 그러나 그녀가 이러한 모호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으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들을 작품의 주제로 사용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에게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들이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이미 기존의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이 작품을 보는데 개입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녀 스스로가 말했듯이 한 작품을 만들 때 특정 영화나 이미지를 염두에 두면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Untitled Film Still> 시리즈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모두 그녀 자신의 아이디어였습니다. – 이 부분은 일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인데, <Untitled Film Stills> 시리즈는 영화의 한 장면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그럴 법한 장면을 연출한 것뿐입니다. 사람들이 ‘Untitled Film’이라는 이름과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때문에 이건 어느 영화의 장면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그녀는 어째서 사람들이 어디선가 보았을법한 이미지를 작품에 사용한 것일까요? 그런 이미지 때문에 그녀가 원하는 모호성이 깨질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셔먼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이미지에 대한 어떤 관념선입견 같은 것조차 모호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도구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들이 어디선가 본 듯 하면서도 알 듯, 말 듯한 그런 느낌이 또 다른 모호성을 그녀의 작품에 생겨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녀는 모든 것이 모호성으로 귀결되도록 하려 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셔먼이 작품에서 일부러 에로티시즘을 의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작품 속에서 연기 했던 여러 배우들 - #13 by Brigitte Bardot, #16 by Jeanne Moreau 등 그녀는 자신의 작품 속에 특정 배우의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배우 자체의 복제(copy)라기보다는 그런 배우의 유형(type)을 복제했다는 말이 더 정확합니다.과 당시 미국의 전형적인 오피스 걸들의 이미지는 남성 관객들에게 그런 느낌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녀가 그러한 남성들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이러한 관객들의 느낌조차 어떤 모호함 속에서 얻을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요?

#13

#13

#16

#16

<Untitled Film Stills>는 자화상이다?

 셔먼의 이 시리즈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 시리즈의 모든 작품들이 그녀의 자화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모든 작품들 속의 인물을 자신이 직접 분장하고 연기 하였습니다. – 분장에 대한 그녀의 재능은 어렸을 때부터 특출 났다고 했는데, 비록 하루 만에 그만 두기는 했지만 Makeup 샵에 취직하기도 했었습니다.하지만 이 시리즈를 단지 자화상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분장한 자신의 모습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리즈는 자화상(Self-portrait)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인물 사진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것은 역시 사진 속의 인물은 셔먼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연기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자화상이면서도 자화상이 아닌 작품, 이것조차도 셔먼 자신에게는 모호성과 연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들의 경우에는 사진 속의 인물이 셔먼이라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않고 보는 이상 그냥 다양한 인물 사진이겠지만, 그녀 자신에게는 모두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화상이면서 자화상이 아니라는 모호함이 그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은 셔먼이 이야기 했던 모호성에 관해 지나친 확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최대한의 모든 방법그녀는 작품을 전시회에 전시하거나 책에 실을 때도 그 순서가 연속성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을 동원해서 작품이 모호성을 갖기를 원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견 이해가 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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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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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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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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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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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Film Stills>는 포스트모더니즘인가?

 일반적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을 아방가르드의 재생이라고 간주할 때, 미적 자율성(독창성)의 부정이라는 측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셔먼의 이 시리즈는 확실히 포스트 모더니즘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조건들 중 하나는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의 차용, 작품 속의 인물들도 이미 사람들의 선입견 속에 존재하는 전형적인 유형(stereotype)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자신만의 완벽한 독창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 그렇지만 뒤샹의 “샘”이 처음 발표 됐을 때의 시대와 비교해 현 시대는 그러한 복제조차 새로운 독창성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포스트 모던 시대 예술가의 천재성”에 관한 자료를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작품들도 실은 그 전에 다른 사람들이 시도한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물론 그녀가 기존의 이미지를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그녀 머리 속의 아이디어 중에 기존에 이미 있는 이미지들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 아이디어 자체가 이미 기존의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회 전복적이고 급진적이었던 아방가르드와 달리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 급진성이 줄어 들었습니다.

 때로 셔먼의 작품들을 가지고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의 이론에 꿰어 맞추며 칭찬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녀 스스로는 자신은 페미니즘 이론을 알지도 못하며 단지 기존의 영화 스타일들을 모방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어떤 급진성을 띄고 했다기 보다는 그저 즐기면서 자신의 작업을 진행하였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캐릭터를 다양한 모습과 분위기로 연출한 것뿐이었습니다. 만약 그녀가 작품 속에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의도를 넣으려 했다면 그것은 곧 작품의 모호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 시리즈는 깊이보다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표피를 표현했다는 점, 소수에게만 이해 되는 작품보다는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통해 대중성을 취득했다는 점에서도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어떤 작품이 포스트 모더니즘인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정의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단지 저는 <Untitled Film Stills> 시리즈가 사람들에게 기존과 다른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고, 몇몇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한 경향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자료

Cindy Sherman, <The Complete Untitled Film Stills>, Museum of Modern Art
Cindy Sherman, Amada Cruz , <Cindy Sherman : Retrospective>, Thames & Hudson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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