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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19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 #17. 발칸에 내리는 눈
발칸에 내리는 눈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세르비아

세르비아 입국 3km 전. 나라 이름은 바뀌었는데 표지판은 아직 바뀌질 않았다

 세르비아에 들어 온 둘째 날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넷째 날부터는 조금씩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제 막 11월에 들어섰을 뿐인데 발칸 반도의 겨울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랐다. 눈을 맞으면서 하는 라이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이 살짝 얼어서 미끄러웠기 때문에 잘못 속도를 내다가는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양말 두 켤레, 바지 두 벌, 장갑 역시 두 켤레, 여기에 상의는 네 벌이나 껴 입었는데도 전혀 따뜻하질 않았다. 발칸 반도에서의 추위는 어느 정도 각오했지만 이 정도로 추울 줄은 몰랐다. 거기에 눈까지 내리니 라이딩의 어려움은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세르비아

세르비아 국경을 코 앞에 두고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라이딩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어서 빨리 발칸 반도를 빠져 나간 뒤 이탈리아를 지나 따뜻한 남 프랑스로 가자는 것뿐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라이딩을 하다가는 서유럽에 들어 가기도 전에 몸이 다 축날 것 같았으니까.

디미트로그라브

25kg. 저를 사 주세요~. 디미트로그라브

다락방

다락방 숙소에서. 디미트로그라브

 니쉬로 들어가던 날에는 하루 종일 내린 진눈깨비로 클릿 슈즈가 다 젖어 버려서 신발을 고어 텍스로 갈아 신어야만 했다. 그런데 바닥이 미끄러운 고어 신발이 자꾸 클릿 위에서 미끄러지는 통에 라이딩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도 장갑이 다 젖어 버려서 계속 시려 왔다. 여기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라이딩 도중에 일행들과 길을 엇갈리게 타는 바람에 다섯 시간이 넘게 쉬지도 않고 혼자 달려서 겨우 니쉬에 도착했다. 만약 이날 밤에 도시로 들어오던 일행들과 우연히 다시 마주치지 못했더라면 밤새 여러 숙소를 돌아 다니며 일행들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사냥꾼

점심을 먹던 식당에서 만난 사냥꾼 부부. 전리품을 들고 한 컷

베오그라드에 들어 오다

 2006년 11월 5일,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옛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였고 5월에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수도였던 곳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몬테네그로가 투표를 통해 독립하면서 베오그라드는 이제 세르비아의 수도가 되어 있었다.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복잡한 발칸 반도의 정세만큼이나 나라 상황도 복잡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베오그라드에 들어온 것이 소피아를 떠난 지 정확히 5일만이었으니까 그 동안의 일정에 비교하면 굉장히 빨리 들어 왔다. 동유럽은 나라의 크기들이 작아서 한 나라를 통과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가리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모두 통과하는데 한 달 정도면 넉넉한 일정이니까 한 나라를 평균 일주일 정도면 가로 지를 수 있었다.

베오그라드

베오그라드

 베오그라드는 남동 유럽에선 네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이지만 시내 중심가에 가도 대도시라는 느낌보다는 한적한 중소도시에 온 느낌이 났다. 그리고 그런 점이 오히려 이 도시의 매력인 것 같았다. 정신 없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매력을 확실히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레메그단 요새

낙엽으로 가득한 칼레메그단 요새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의 합류 지점에 있는 칼레메그단 요새는 이제 공원이 되어 있었는데 오래된 성벽의 잔해들과 군데군데 놓여 있는 대포들만이 이곳이 옛 요새였음을 알려 주었다. 요새는 며칠 간 내린 부슬비로 땅이 촉촉히 젖어 흙 내음이 가득 느껴졌는데, 그 때문에 난 굉장히 기분이 좋아졌다. 강원도 인제에서 살 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것이 바로 비에 젖은 흙 내음이었다. 부슬비가 내리고 난 후에 적당히 젖은 흙과 풀 내음이 섞여 느껴지던 그 느낌은 힘들었던 당시 생활의 커다란 활력소였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인데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고된 라이딩과 추운 날씨 덕에 차츰 지쳐 가던 내게 오랜만에 맡는 흙 내음은 정말 큰 힘이 되는 것이었다.

 베오그라드는 요새와 대성당을 포함한 몇몇 관광 명소들뿐만 아니라 국립 박물관을 필두로 하여 훌륭한 박물관들이 다수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국립 박물관, 국회 의사당을 포함해서 여러 종교 사원들, 호텔 건물들까지 아르누보, 네오 클래식, 낭만주의 등 여러 사상과 기조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건축물들은 베오그라드의 풍경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곳에서 또 하나 유명한 것은 바로 나이트 라이프이다. 인근의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등에서 주말 손님들이 몰려들 정도로 베오그라드의 바와 클럽들은 인기가 좋다. 종류도 학생들이나 젊은 층이 몰려 드는 클럽부터 전통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바까지 다양하고 가격도 싸다.

베오그라듯

시내를 걸어 다니다가 만난 그림. Will you marry me?

중앙 기차역

중앙 기차역에서. 베오그라드는 유럽의 다른 도시들로 떠나는 열차편이 잘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나토 공습의 잔해들 - 분쟁의 기억

 베오그라드를 떠나던 날 아침에 길가에 잠시 자전거를 세운 기타가 내게 물었다. "다운, 여기 주변을 둘러 봐.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주변을 둘러 보니 오래 되어서 무너진 것인지 폐허처럼 보이는 건물 몇 채가 서 있었다. "여기가 바로 1999년 옛 유고 연방 시절에 나토와 미군이 공습을 가했던 곳이야. 아마 저 건물들이 당시 공습을 받았던 건물일거야." 그렇구나. 그래서 이렇게 흉물스런 잔해들이 남아 있는 것이구나. 한적하고 아늑한 시내의 분위기에 취해 있던 나는 이곳에 아직까지 저런 건물들이 남아 있는 줄은 상상하지 못했었다.

 99년이면 이제 10년밖에 지나지 않은 기억들이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잊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이곳은 분쟁의 역사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세르비아와 발칸 반도 내 주변 여러 나라들의 분쟁은 많이 안정되었다 해도 여전히 진행형이었고, 그 완전한 끝을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발칸의 분쟁은 인종, 종교, 민족, 정치 등의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도 발칸 반도가 나아가야 할 길은 막막하기만 한 것 같다. 현재 발칸의 평화는 사실상 평화 유지군에 의해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몬테네그로가 독립을 하였으니 다른 나라의 요구도 더 거세지게 될 테고, 보스니아, 코소보 등의 상황도 더 불안해질지 모른다. 사실상 언제 어느 때 다시 내전이나 전쟁이 발발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 지구 상에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전쟁이 없던 시간은 단 32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수백,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사람들이 함께 평화롭게 살았던 시간이 그만큼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여러 분쟁과 전쟁의 흔적들을 - 비록 밖에서만이지만 - 보아 왔다. 그럴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은 도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가 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만, 아니면 그 누군가가 없어져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왜 꼭 전쟁을 하고 내전을 일으켜 피를 보아야 하는 것일까? 사실상 그 모든 것은 단지 한 끝만큼의 생각의 차이에 불과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한 끝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서로 죽고 죽여야만 한다는 사실은 역시 날 서글프게 한다. 과연 내가 죽기 전에 이 지구 상에 모든 갈등과 분쟁이 없는 날이 존재할 수 있을까?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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