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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24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 #13. 바키 할아버지와 양치기 청년 케난
터키에 들어 오다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터키 입국

터키 입국 기념. 저 멀리 트럭이 보이는 곳이 국경이다

 오루미예를 출발해 터키와 이란의 국경인 세로 검문소를 지나 터키에 들어 왔다. 사실 이란에서 라마단 - 이슬람력으로 아홉째 달은 아침 해가 뜬 후부터 저녁 해가 지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이슬람의 금식/금욕 기간 - 이 시작하기 전에 터키에 들어 오려고 며칠간 조금 더 피치를 올려 달려 왔다. 터키도 이슬람 국가이지만 정교 분리가 정식 정책인 국가이니 라마단 기간이라도 이란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란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시골 지역들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라마단이라도 여행자들은 예외가 되긴 하지만 실제적으로 문을 열고 음식을 파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터키 입국 후 첫날의 목적지는 국경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유세코바였다. 그런데 국경을 넘으면서 생각보다 오르막길이 많아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이후에도 포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길들이라 계속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후 세 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볼 일도 보고 싶고 슈퍼에 들러서 먹을 것도 좀 살 요량으로 길 옆에 있던 마을 안쪽으로 무작정 들어 갔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가도 가게 같은 건 보이질 않고 그냥 집들뿐이다. 호텔이라고는 당연히 없는 곳이고.

 어찌해야 할까 생각하는데 마침 마을 안쪽으로 승용차 한 대가 들어 간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시선을 교환한 우리는 운전자에게 하룻밤만 재워 줄 수 있냐고 손짓, 발짓을 해 가며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운전자가 오케이를 했다.

바키 할아버지네 집

바키 할아버지네 집.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 손녀까지 모두 한 집에 살고 있다

 알고 보니 그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이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손녀, 손자들까지 온 가족이 한 집에 함께 살고 있었다. 집 안의 어른인 바키 할아버지는 말도 제대로 안 통하고 행색도 이상하게 생긴 외국인들 두 녀석이 와서 재워 달라고 하는데도 선뜻 반겼다. 따로 방을 내주고 식사도 챙겨 주고, 또 차까지 주면서 극진한 손님 대접이다. 밤에는 쌀쌀할지 모르니 두꺼운 이불을 덮으라며 챙겨 주기까지 했다. 비록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조금 서먹서먹하긴 했지만 잘 대해 주려는 마음만은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바키 할아버지의 가족 사진

아침 식사

할아버지와 함께 한 아침 식사. 요거트, 난, 차이

 다음 날 아침, 이것 저것 대접 받은 것들이 고마워서 떠나기 전에 가족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러자 온 가족들이 들떠서 사진 찍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통에 서먹할 틈도 없다. 아이들은 어른들 손에 이끌려 열심히 꽃 단장을 하고 딸들도 예쁜 옷을 챙겨 입느라 바빴다. 러닝 차림으로 아침을 함께 했던 바키 할아버지도 어느새 말끔히 차려 입었다. 게다가 가족들뿐만이 아니었다. 밖에 나가니 할아버지의 동네 친구들 몇 분까지 사진을 찍기 위해 와 있었다.

가족 사진

할아버지네 가족과 동네 아저씨들까지 다 같이 모였다

가족 사진

할아버지와 친구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함께

 모든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사진을 찍으려 하니 프레임 안에 꽉 차는 것이 정말 대가족이다. 그것도 아들들은 다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가족들끼리 한 컷, 할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과 또 한 컷, 또 아이들과 할아버지들만 한 컷. 가족들 독사진도 찍어 주었다. 모두들 너무 즐거워하면서 사진을 찍으니 받은 만큼은 못해도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딸

인자한 표정의 할머니와 딸

할머니

조금 닮은 것 같다

손녀 딸

부끄러워 하면서도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귀여운 손녀딸

쿠르드족 양치기 청년 케난

 바키 할아버지네 집을 떠나 또 열심히 달렸지만 오늘도 목적지는 멀어만 보인다. 오후 5시가 다 되었는데 아직까지 목적지까지는 20km 정도가 남은 상황이었다. 어제의 성공에 고무되어 있던 우리는 또 민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주변을 둘러 보니 저 멀리 들판에 양떼를 몰고 가는 청년이 보인다. 좋아. '헤이~. 여기~. 우리 하루만 재워줄 수 있겠니?'

케난

케난. 내 자전거 헬멧을 쓰고 기념 사진을 찍고 싶어해서 사진을 찍어 줬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친구가 바로 양치기 청년인 케난이었다. 재워 달라는 우리의 말에 별 고민도 없이 선뜻 승낙한다. 케난이 사는 곳은 터키 동남부의 작은 마을 '오메로와'라는 곳이었다. 딱 보기에도 도시 문명과는 거리가 먼 시골 국도변의 작은 마을이었다. 우리가 케난을 따라 자전거를 끌고 그의 집으로 가는 동안 동네 꼬마 녀석들이 신기한 구경 거리가 생겼다는 듯 우리를 졸졸 따라 왔다. 녀석들 눈에는 커다란 자전거와 짐 꾸러미를 끌고 들어오는 외국인 녀석들이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다. 케난과 마을 어른들의 호통 몇 번에 쫓겨 나긴 했지만 그 동안에도 우리로부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오는 외국인이 아닐까 싶었다.

동네 청년들

우리를 보기 위해 모인 동네 청년들과 함께. 마침 정전이 되어 가스등을 켜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궁금했던 건 동네 꼬마 녀석들만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케난의 집에는 온 동네 청년들이 우리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완전히 동네 사랑방이 된 것이다. 다 같이 모여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비로소 그들이 쿠르드족임을 알았다. 알고 보니 이 마을은 쿠르드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케난네 집은 케난과 누나,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가 한 집에 살고 있었다. 케난의 어머니와 누나는 낯선 이방인들이 불쑥 찾아 갔는데도 거리끼지 않고 우리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케난네 집은 한눈에 보기에도 어려운 살림이었는데 우리 때문에 모여든 동네 청년들에게까지 식사 대접을 하느라 오히려 우리가 미안해졌다. 하지만 또 힘들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우리에게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려는 케난과 식구들의 마음은 정말 너무 고마웠다.

오메로와 마을의 동네 사진사

 다음 날 아침에도 우리는 여전히 마을의 최대 관심거리였는데, 난 아침 일찍부터 마을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준다는 명목하에 끌려 다니며 온 동네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이 집에 들어 가서 가족 사진을 찍어 주고, 또 저 집으로 옮겨서 가족 사진을 찍어 주었다. 집 공사를 하고 있던 마을 이맘 부부의 사진도 찍어 주고, 포경 수술을 하고 침대에 누워 있던 꼬맹이 녀석들의 기념 사진까지 난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다. 그날 아침 난 완전히 오메로와 마을의 동네 사진사였다.

동네의 이맘 부부

마을의 이맘 부부

그네

그네를 타던 아버지와 딸

엄마와 딸

엄마와 딸. 정말 많이 닮았다

포경 수술

포경 수술을 하고 침대에 누워 있던 두꼬마 녀석. 녀석들은 꼼짝도 않고 가만히 누워 앞에 있는 TV만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곳을 여행해 봤지만 이 곳 사람들처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처음이었다. 동부의 쿠르드족들뿐만 아니라 터키 전역에서 그랬다. 길 옆에서 땅을 파고 있던 공사장 인부도 사진을 찍어 달라 조르고, 가게에서 옷을 팔고 있던 점원도 갑자기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터키 사람들의 특성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사람들이 렌즈를 의식하지 않아 수월한 면도 있었고, 또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어 좋았다.

트럭 만물상

마을에는 만물상 트럭이 가끔씩 들어 왔다

아이들

트럭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동네 아이들

쿠르드족과 PKK

 얼마 전 터키 정부가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을 토벌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쿠르드족 문제가 또 한동안 이슈로 떠올랐었다. 흔히 쿠르드족 문제 하면 제일 먼저 사람들의 뇌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PKK(쿠르드 노동자당)이다.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벌이고 있는 단체로서 특히 터키 동부 지역에서  터키군에 대항해 오랜 투쟁을 벌여 오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바키 할아버지와 케난네 가족은 언론에서 보여 주는 쿠르드족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만난 것은 그저 우리와 똑같이 정 많고, 친절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방송에서 보여 주는 총을 들고 투쟁을 외치는 쿠르드족의 모습은 이들의 일부일 뿐 결코 전부가 될 순 없는 것이다.

 물론 바키 할아버지와 케난 모두 스스로 터키 사람이라 말하면서도 또 쿠르드족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단지 그들은 피를 보는 투쟁보다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들에게서, 또 그들이 모여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언론에 나오는 쿠르드족의 모습을 찾는 건 친절한 쿠르드족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바키 할아버지, 그리고 케난. 비록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서 많은 얘기 나누지 못했지만 잘 해주고 싶어하는 두 사람의 마음만은 정말 잘 받았어요. 오랜 여행에 지쳐 있던 내게 두 사람의 호의는 정말 큰 힘이 되었답니다. 내가 언젠가 꼭 다시 찾아 갈께요. 그때까지 두 사람 모두 건강해요.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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