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강도였던 거야?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이란에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용 카드나 현금 카드 등을 사용할 수가 없고 오직 현금만을 환전해 쓸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란 입국 전에 미리 한 사람에 몇 백 달러씩을 준비했다. 예상대로라면 넉넉히 이란을 빠져 나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체류 기간이 계획보다 길어지고, 지방 숙소들의 물가가 생각보다 비싸면서 문제가 생겼다.

 당장 하루치의 숙소비를 쓰고 나니 물 한 통 사 마실 돈마저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하루하고 반나절은 더 걸려야 테헤란에 들어 가는데 이대로는 잠자리는커녕 밥조차 굶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테헤란까지만 들어 가면 알고 지내는 교민분이 계셔서 그 분을 통해 한국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내일 아침 도시를 빠져 나간 후에 테헤란까지 히치를 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아침 40km 정도를 달려 도시의 외곽으로 빠져 나와 히치를 시도했다. 몇 대의 차가 그냥 지나간 후에 화물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우리는 잽싸게 기사에게 달려가 테헤란, 테헤란을 외치며 자전거와 짐을 가리켰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여권을 보여 달라, 저 앞에 가면 경찰서가 있다고만 계속 이야기했다. 아마 우릴 태워 주는 게 문제가 되진 않을지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우린 여권에 있는 이란 비자를 확인 시켜 주면서 "아저씨, 폴리스 노 프라블럼. 비자, 비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계속 고민하던 아저씨는 마침내 우리 보고 짐을 싣고 차에 올라 타란다. 아저씨 맘이 변하기 전에 빨리 타야지 하고 잽싸게 짐을 실은 후 조수석에 앉았다. 차가 출발한 후, 기사 아저씨가 조수석 앞에 있던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자신의 목에 들이 대는 시늉을 하면서 뭐라, 뭐라 얘기하더니 칼을 자기 쪽으로 치운다.

 "와, 참 친절한 아저씨네. 아무 차나 얻어 탔다간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얘기구나."

 신경 써 주는 아저씨가 고마웠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달렸을까, 차가 도로 옆에 있는 경찰서 앞에 멈춰 섰다. 우리는 비자도 여권도 문제가 없었기에 별 문제가 없겠지 생각하고 마음 편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가 경찰과 얘기를 좀 나누더니 우리 보고 내리란다. 경찰들은 이미 화물칸에서 우리 짐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뭐야, 무슨 문제지?" 라고 생각하며 경찰과 얘기를 나눠 보려고 해도 도대체 말이 통하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짐을 다 내린 채 경찰들에게 붙들려 있고 트럭은 다시 출발했다. 하지만 경찰들하고 계속 얘기해도 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아, 테헤란의 교민 분께 전화를 해 통역을 부탁했다. 그 내막을 알고 보니 사실은 경찰들이 우리를 붙든 게 아니었다. 우릴 태워 줬던 트럭 운전수가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불안해서 계속 태워줄 수 없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아까 운전수 아저씨가 목에 칼을 들이 대면서 했던 얘기는 결국 본인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이었다. 우리가 강도 짓을 할 지도 모른다고. 거 참, 고마운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보고 강도라고 한 것이었다니.  참 씁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내 평생 어디 가서 또 강도 취급을 당해 보겠나......

테헤란의 사히드 형

 곡절 끝에 테헤란에 도착했다. 테헤란에는 나와 같이 다니는 일행이 한국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이란인 친구 사히드 형이 있었다. 사히드 형이 한국에 일을 하러 왔을 때 알게 된 친구였는데 우린 형의 초대로 그 집에 가서 하루를 머무르게 되었다. 테헤란에서도 유명한 부촌에 위치한 형의 집은 3층짜리 건물에 수영장까지 딸려 있는 집이었다. 형의 말에 따르면 동네에서는 제일 작은 집이었는데, 그 동네에는 대문부터 으리으리한 궁궐 같이 생긴 유명한 이란 축구 선수의 집도 있었다.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선수였다.

사히드 형.

사히드 형네 집에서. 사히드 형과 나와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촌 동생

  우리 나라처럼 이란도 대가족 문화가 익숙한지 사히드 형 집은 형과 큰 형 내외가 함께 살고 있었고, 사촌이니 조카니 외삼촌이니 하는 사람들이 늘 들락날락 해서 집안이 북적북적했다. 우리가 머무를 때만이 아니라 항상 가족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것 같았다. 이쪽은 조카, 이쪽은 사촌, 또 저쪽은 마도로스인 외삼촌 등등. 여기 저기 인사하면서 조금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또 함께 둘러 앉아 게임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조금씩 친해졌다.

사히드

사히드 형의 큰 형인 알리 형의 딸. 정말 너무 귀여웠다

  마침 우리가 사히드 형 집에 머무를 때 마침 한국과 이란의 축구 국가 대표 경기 시합이 있었다. 다들 즐겁게 보자는 생각으로 TV 앞에 모여 앉았는데 왠지 모를 그 긴장감이란 어쩔 수 없었다. 서로 자기편 플레이에 크게 내색하지 못하고, 어색한 분위기. 다행히도 경기는 막판에 한국이 골을 넣으면서 무승부로 끝났다. 경기가 무사히 끝나고 나자 모두 괜스레 멋쩍어진 우리는 서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칸도반, 이란의 카파도키아

 타브리즈에서의 출발을 하루 미루고, 칸도반에 다녀 왔다. 이란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칸도반은 그 독특한 지형으로 이란의 카파도키아 - 터키 중부 지역. 각종 기암 괴석들이 자리한 독특한 지형으로, 특히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 라고 불리는 곳이다.

칸도반

칸도반 전경

칸도반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동화 속에서 나올 법한 동굴 집들. 멀리서 보면 마치 개미굴 같아 보이기도 한다는 이 곳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직도 동굴 집에서 실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높다란 돌 벽에 문과 창을 내고, 집 밖으로는 각종 전기줄과 전선이 널려 있다. 관광객들을 모아 집 안내를 하던 한 주민은 이 곳의 집들은 천연 냉난방이 잘 되어 여름에는 더 시원하고, 겨울에는 포근하다고 했다.

칸도반 풍경칸도반 풍경
칸도반 풍경

칸도반 골목골목

칸도반 풍경

빨래가 널려 있는 풍경

  외국인 여행자들뿐만 아니라 이란 내국인들에게도 명소인 이 곳은 비수기임에도 제법 많은 여행객들이 보였다. 몇몇 주민들은 관광객들에게 집 내부를 구경 시켜 주고 돈을 받고 또 차나 숙소를 제공하면서 생계를 벌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은 이 관광객 무리가 여간 귀찮은 모양이었다. 특히나 외국인 관광객들은 아무데나 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려 하고, 자꾸 기웃기웃하고 다니니까 신경이 쓰이는 건가 보다.

동굴 집 내부

동굴 집 내부

동굴 집 내부

카페트가 깔려 있는 건 다른 집들과 똑같다

소쿠리

소쿠리가 걸린 풍경은 우리네 시골과 비슷하다

당나귀

경사가 심한 칸도반에서 나귀는 중요한 운송 수단이다

  이 지역이 다른 지역과 다른 또 하나는 바로 여인들의 차도르 복장이었다. 이란의 다른 지역에서는 검은 색의 차도르를 제외하고는 다른 색을 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칸도반에서는 노인이건 젊은 여인이건 할 것 없이 모두 다양한 무늬가 있는 비교적 화려한 차도르를 둘렀다.

차도르

여인의 화사한 차도르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칸도반은 타브리즈에서 하루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지내면서 그 곳의 정취를 느껴 보고 싶은 사람들은 방을 빌릴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으니 원한다면 며칠을 묵을 수도 있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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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루미예의 야바위꾼

 터키로 넘어 가기 전의 마지막 국경 도시인 이란의 오루미예. 아직 남아 있는 이란 돈을 다 쓸 겸 해서 근처의 전화국에서 오랜만에 한국과 통화를 했다. 전화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 오던 중이다. 길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갑자기 주섬주섬 자리를 깔기 시작한다. 아저씨가 자리를 깔고 꺼내든 것은 세 장의 카드. 야바위 판이다.

 한국에서도 한 번도 못 봤는데, 머나먼 이국 땅에서 야바위라니. 거 참 운이 좋은 건지 어쩐 건지 모르겠다. 게임 규칙은 간단했다. 세 장의 카드 중에 마킹이 되어 있는 카드는 단 한 장. 야바위꾼이 열심히 카드를 섞은 후에 각자 카드에 돈을 걸면 된다. 제일 앞 줄에 쪼그리고 앉아 몇 판을 보고 있자니 나도 맞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음, 생각보다 쉬운 것 같은데? 지금까지 머리 속으로 맞춘 것도 얼추 맞은 것 같고.
  옳지 이번 판은 이게 확실하다.)
  아저씨, 여기 이 카드에 1장"
 "이 봐. 1장은 안 돼. 최소 5장!"
 "(어라? 조금 전까지 다른 사람들은 1장, 2장 잘만 걸던데. 음, 블러핑인가. 좋아, 아저씨의 허풍이렸다.)
  좋아! 여기 5장! 맞추면 10장이다!"
 "헤헤, 그럼 확인해 볼까?"

 자, 드디어 개봉이다. 일단 내가 걸었던 카드 옆 장은 꽝이고. 헉, 내가 건 것도 꽝이다. 실실 쪼개며 내 돈을 챙겨 가는 야바위꾼. 주변의 구경꾼들도 내가 당한 게 우스운지 슬며시 웃고들 있다. 제길, 아저씨가 5장을 외친 건 순전히 내 돈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아.......

 돈을 잃은 후에 괜히 머쓱해진 나는 가만히 앉아 사진을 찍으며 조용히 구경만 했다. 머리 속으로 계속 생각하니 처음 시작부터 돈을 걸던 한 아저씨는 왠지 바람잡이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계속 보고 있는 나를 의식한 야바위꾼이 처음 몇 판 쉽게 카드를 섞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깝다. 이란 돈은 이제 필요도 없었는데 도대체 무슨 욕심이 생겼던 건지.

 아무튼 도박 같은 건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이렇게 당하고 나니 알겠다. 역시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는 거야. 앞으로는 절대 이런 거 하지 말아야지. 특히 길거리의 야바위판은 더더욱!

야바위꾼

오루미예의 야바위꾼. 돈이 오가고

카드를 섞다

카드 섞기 시작

자, 돈 놓고 돈 먹기

자, 돈 놓고 돈 먹기. 지나가는 애도 다 맞추는 바로 그 게임. 수진이는 반찬값, 철수는 담배값, 개들은 사료값. 자 천원이요, 천원. 자, 돈 놓고 돈 먹기. 날이면 날마다 오는게 아닙니다. 왕을 찍으세요,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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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에 당하다

 케르만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가 다 되어서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며 근처를 둘러 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호텔 로비에서 지역 정보를 뒤지고 있을 때였다. 옆에 있던 이란인이 혹시 관광할 생각이면 자신이 일일 가이드를 해주겠다며 다가 왔다. 알고 보니 외국인들의 일일 가이드를 하는 사람이었다. 이곳, 저곳을 추천하며 정보를 주는 그 가이드에게 난 중요한 걸 물었다.

 "아저씨 차에 에어컨 있어요?"
 "에어컨? 내 차 벤츠야, 메르세데스-벤츠. 밖에 저 차 보이지?"

 어두워서 명확하진 않지만 차 앞에 희미하게 벤츠의 표식이 보인다.

 "오케이, 그럼 좋아요. 내일 몇 시에 볼까요?

 가이드 비용을 정하고, 내일 둘러볼 곳들에 대해서 더 얘기를 나눈 후에 방으로 돌아 갔다.
 
 다음 날 아침. 가이드 아저씨는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카메라와 간단한 짐을 챙겨 들고 아저씨를 따라 나섰다. 드디어 가이드 아저씨의 차. 참 낡았지만 벤츠는 벤츠다. 아저씨 말로는 70년대 산이란다.

 그런데...차에 에어컨이 없다.

 "아저씨, 왜 에어컨이 없어요?"
 "응? 내가 어제 내 차 벤츠라 그랬잖아. 트렁크의 아이스 박스에 시원한 물 준비해 왔어. 여기 물도 두 통 얼려 왔고."

 그렇다. 어제 가이드 아저씨는 분명히 에어컨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벤츠라 했을 뿐...... 당했다. 설마 에어컨이 없는 벤츠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사막의 지하 수로

 아저씨한테 당했다는게 조금은 억울했지만 별 수 없었다. 사실 아저씨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니까. - 쳇, 그래도 대체 에어컨 없는 벤츠는 뭐냐구.;; - 기왕 가이드를 받기로 한 거 구경이나 잘 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이드 아저씨가 추천했던 케르만의 조로아스터교 돔과 마한의 정원 등은 이런 작은 도시들에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던 아름다운 곳들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감동했던 건 바로 사막의 지하 수로였다. 샤흐다드 사막의 기암 괴석을 보러 가기 위해 사막 입구의 검문소에서 신고를 하고 난 후였다. - 아무래도 사막 지대를 통과하는 길이다 보니 실종 되면 자료로 쓰기 위한 것 같았다. - 검문소를 통과해 한참을 달리던 아저씨가 갑자기 폐허 몇 채 밖에 보이지 않는 벌판에 차를 세웠다.

 "아저씨, 여기는 갑자기 왜 서요?"
 "일단 따라와 봐. 좋은 것 보여 줄께."

 가이드 아저씨를 따라 가니 아무 것도 없는 맨 땅에 갑자기 지하로 들어 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 정체는 바로 사막의 지하 수로로 통하는 길이었다. 가이드 아저씨 말에 따르면 자기 같이 나이 든 사람들 말고는 잘 알지 못하는 장소라고 했다. 300년 이상이 되었다는 지하 수로는 저 멀리의 도시까지 흘러 들어 갔다. 설명을 들으면서 수로를 바라 보고 있자니 내가 지금 위대한 것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 생명을 태동하게 한 힘이 바로 이 수로였다. 우리가 보고 있는 도시의 삶과 생명이 사막의 작은 지하 수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샤흐다드 근교에는 아직까지도 이 수로를 중심으로 물을 얻고 살아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몇 백년을 흘러 온 수로는 앞으로도 또 몇 백년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생명을 잉태하며 살아갈 터였다.

 우연히 보게 된 지하 수로는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제일 보고 싶어했던 사막의 기암 괴석보다도 더.

 좋아, 아저씨. 이걸로 에어콘 건은 잊어 준다. 멋진 가이드였어~

입구.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 멀리서 보면 그냥 평평한 땅처럼 보였다.

수로

이 수로를 따라 도시까지 물이 흘러 간다

수로

몇 백년을 흘러 왔다는 이 물줄기는 앞으로 또 얼마의 시간을 흐르게 될까

구멍

땅 위에 난 구멍에서 새어 들어 오는 빛이 지하의 물길을 밝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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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11.03 11:1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와... 멋지네요... 이야기도 재미있고.. 좋은 블로거님을 한분 또 발견한 듯 합니다.. ^^
    자주 들리겠습니다... ^^

  2. Favicon of http://gletter.net BlogIcon Gletter 2007.11.26 09:2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사진들이 예술입니다. 여행을 좋아하시나 보군요~
    다 보진 못했지만, 글도 너무 좋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이란 여행 TIP : ITTIC - Iran Touring & Tourism Inns Corporation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전 날 밤 늦게까지 계속된 결혼식의 여파로 결국 우리는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야즈드를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여세는 다음 날까지 이어져 다음 목적지였던 나인엔 예상보다 하루가 더 걸려서 도착했다. 나인에서의 숙소는 또 ITTIC INN(http://www.ittic.com : 홈페이지의 Distribution map 메뉴에서 ITTIC가 위치한 도시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란의 지방 여행 중에 우리에게 유일하게 힘이 되어 주는 곳이 바로 이 ITTIC였다. 다른 숙소가 하나도 없는 중소 규모의 도시라도 ITTIC 호텔만은 있는 경우가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균 미화 30 달러에 달하는 숙박비가 아깝지 않게 어느 도시의 지점을 가더라도 늘 일정 수준 이상의 숙소 시설은 보장해 주었다.

 그 중에서도 나인의 ITTIC는 특급에 가까웠다. 방 한채가 2층의 침실과 1층의 거실로 따로 나누어진 구조여서 넓기도 했고, 마당에는 작은 분수대를 주변으로 물담배를 피며 쉴 수 있는 평상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가격도 다른 도시의 지점들과 비교해 1~2 달러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ITTIC

2층의 침실

ITTIC

침실에서 바라 본 거실

  물론 이란에서 하룻밤에 미화 30달러의 숙박비라면 꽤 비싼 축에 속한다. 하지만 테헤란, 이스파한, 야즈드 등의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면 여행객을 위한 숙박 시설이 미비하기 때문에 ITTIC는 이란의 지방 도시들을 여행하는 경우에 큰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나인의 ITTIC가 더 좋았던 이유는 바로 야즈드에서 함께 있던 파울로 아저씨와 레자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주일 간 야즈드에 머물면서 알게 된 파울로 아저씨는 아마추어 사진가이자 이란 여행만 이미 네 번째라는 지이파였다. 거기에 이탈리아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이란인 축구광 레자가 가이드로 동행해서 함께 다니고 있었다. 함께 결혼식도 가고 호텔에서 얘기도 많이 하고 지냈던 터라 헤어질 때 조금 섭섭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반가웠다.

파울로 아저씨

파울로 아저씨, 레자와 다시 만났다. "아저씨,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어요?" "응? 우린 택시 타고 두 시간." "...전 이틀 걸렸어요."

고대 페르시아의 유적, 이스파한 - 이맘 호메이니 광장

광장 전경

알리 카푸 궁전에서 바라 본 이맘 호메이니 광장의 전경

  페르시아는 아직까지도 그 이름에서 영광과 번영이 느껴지는 고대 제국이다. 이란의 중심부에 있는 이스파한은 고대 페르시아의 옛 수도로서 "이스파한을 보는 것이 세상의 절반을 보는 것이다"라는 고대의 속담을 탄생시킨 바로 그 도시이다. 그리고 이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유적들과 건축물들은 이스파한을 이란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맘 모스크

햇살을 받고 있는 이맘 모스크의 돔

  그 중에서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이맘 호메이니 광장은 이스파한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한 곳이다. 현재의 광장은 옛 궁전과 모스크가 에워싸고 있고 그 뒤쪽으로는 이스파한에서 가장 큰 시장인 카이셰리에 바자가 있다. 광장의 남쪽에 맣닺아 있는 이맘 모스크는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는 모스크의 돔과 타일 장식으로 보는 이들을 매혹 시키기에 충분하다. - 내가 갔을 때는 아쉽게도 내부 곳곳에서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모스크 전체를 한 눈에 감상할 수는 없었다. - 광장 왼편의 알리 카푸 궁전은 내부의 목조 자재들이 많이 낡아 명목만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목조 벽에 남아 있는 옛 여인의 그림과 여러 기하학적 문양들은 이곳의 옛 아름다움을 짐작케 한다. 알리 카푸 궁전의 테라스에서는 광장의 전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데, 그곳에서는 이곳이 규모만으로 유명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알리 카푸

알리 카푸 궁전의 기하학적 문양들

알리 카푸

오랜 세월로 인해 색이 바랬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여인의 그림

  이맘 모스크의 맞은 편, 광장 뒤쪽으로 길게 늘어선 카이셰리에 바자에는 늦은 시간까지도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한 시장에서도 특히 눈에 제일 많이 띄는 것은 바로 물담배 기구와 낙타뼈 장식품들이었다. 차이와 물 담배는 이란 사람들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인데 이곳에서 제일 성업 중인 곳도 바로 물담배를 파는 가게였다. 이란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야외로 놀러갈 때도 꼭 물담배 기구와 담배를 태울 불씨를 챙기는 것은 잊지 않는다. 정밀한 수공예 장식품인 낙타뼈 장식품들은 낙타뼈로 작은 상자를 만든 후에 그 위에 정교하게 그림들을 채색했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 작은 상자에 저런 그림을 그려 넣었을까 궁금해지는데, 그림의 정밀한 정도와 크기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비싼 건 우리 돈으로 십 만원이 넘기도 한다.

카이세리예

카이세리예 바자.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로 북적댄다

낙타뼈

이란의 특산품

낙타뼈

낙타뼈 상자들

  이맘 광장이 이곳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장소라는 것은 이곳이 늘 사람들로 북적댄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일반적인 활동 시간인 낮부터 밤뿐만 아니라 하루가 시작하는 새벽부터 사람들로 차기 시작하는데 새벽에는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광장을 메웠다. 그러니 광장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면 새벽과 낮, 그리고 밤 모두 광장에 가 볼 것을 권한다.

물담배 가게

시장 한 켠의 물담배 가게. 차이와 물담배는 이란 사람들에게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시오세 폴과 카쥬 브리지

 이스파한에서 이맘 광장과 함께 가 보아야 할 곳은 시오세 폴과 카쥬 브리지이다. 생명을 주는 강이라는 의미의 자옌데 강을 가로 지르는 두 다리는 모두 페르시아 시대에 지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자태뿐만 아니라 이 곳 사람들의 휴식처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33을 의미하는 시오세의 말 뜻처럼 33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시오세 폴 다리는 복층 구조로 2층은 사람들의 통행로로 쓰이고 1층은 수로로 쓰였다. 이 다리 밑에는 이 곳 사람들의 명소인 물담배 가게가 있는데 늘 사람들로 북적거려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자리를 잡고 앉으면 시원하게 흘러가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사과 향 물담배를 태우고, 설탕을 듬뿍 넣은 차이를 마시는 그 기분은 일품이다.

시오세 폴

시오세 폴의 야경. 다리 밑의 가게는 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시오세 폴에서 강변을 따라 걸어 내려가다 보면 카쥬 브리지를 만날 수 있다. 카쥬 브리지는 화려한 시오세 폴에 비한다면 조금은 투박한 느낌이 들지만 또 그 남성적인 투박함이 매력적인 다리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단지 강의 수량 조절을 위한 댐 기능을 위해 건설된 다리이지만 지금은 댐의 기능은 수행하지 않고 단지 보행자들의 다리 역할만 하고 있다. 시오세 폴과 카쥬 브리지는 모두 사람만 건널 수 있는 다리이기 때문에 차한테 방해 받지 않고 조용히 강을 감상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자옌데 강

카쥬 브리지에 바라 본 자옌데 강. 하늘엔 초승달이 떠 있다

이스파한 Tip : 시오세 폴의 불량배들을 조심하라

 시오세 폴은 동네 불량배들이 몰려 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상대방이 단순한 호의나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비를 걸려는 목적인지는 자연스레 파악이 된다. 그런데 시오세 폴에 몰려 드는 불량배들은 태반이 후자의 목적을 띈 녀석들이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신체적인 해꼬지를 한다던가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런 녀석들과 사소한 시비가 붙었다는 여행객들을 만나는 건 이스파한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아시아 계통 여행객들이 그런 경우를 많이 당했는데 구별이 더 쉬워서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만났던 한 여행객은 시오세 폴 밑을 거닐다가 다리 위에 있던 녀석들이 던진 침 뭍은 담배 꽁초를 몸에 맞기도 했었다. 녀석들은 아주 공공연히 여행객들, 그 중에서도 눈에 잘 띄는 사람들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시오세 폴의 불량배 녀석들 얘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란의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번은 테헤란의 관광지에 갔을 때였다. 등을 돌리고 서 있던 우리 일행에게 갑자기 작은 돌 하나가 날아 왔다. 범인은 멀찌감치 서 있던 한 무리의 학생들. 누가 던졌다는 걸 우리도 뻔히 알지만 상대방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잡아 떼는데야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등을 돌리면 곧 다시 작은 돌들이 날아 왔다. 물론 가장 잘(??) 대처하는 방법은 그냥 무시하고 자리를 피하는 것 뿐이었다. 당시 같이 계셨던 교민분은 예전엔 이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 분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불량배들이 많이 돌아 다니는 까닭은 이란의 높은 실업률과도 무관치 않았다. 사람들이 할 일이 없다 보니 빈둥 거리면서 돌아 다니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경제 제재 이후 이란 경제는 거의 무너져 버렸다. 게다가 산유국이라지만 정제 시설이 부족해 국내에서 필요한 휘발유의 40% 이상을 수입해다 쓰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얼마 전에는 이란 정부에서 한 사람의 석유 배당량을 정하고 값을 올리겠다고 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악순환은 국제 사회의 제재가 풀리지 않는 이상 해결 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란 대통령은 핵 문제로 국제 사회에서 계속 마찰을 빚고 있고, 그래서 갈등의 실마리는 현재로선 요원한 실정이다.

 때로 나이 든 이란 사람들 중에는 예전에 자신들이 혁명을 지지했던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단다. 종교 혁명을 통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호메이니의 종교 혁명 이전엔 비록 정신적으로 조금 부족했을지 몰라도 경제,사회적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았기 때문이다.

자메 모스크

자메 모스크 앞에서 만난 아저씨. 무슨 좋은 말을 해 주는 것인지 부인들이 몰려 들어 질문을 해댔다

기도

이슬람의 기도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아무 곳에나 자리를 펴고 기도를 시작한다. 때로는 이렇게 차도르를 뒤집어 쓴 부인이 기도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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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혜연 2011.06.05 15:1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란은 여자들이 검정색차도르나 히잡을 두르는것 말고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예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수단 챠드 니제르 말리등의 이슬람권여성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외출이 자유로운 나라니 대단한거죠!

이란에 들어 오다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을 떠난 지 넉 달 만에 드디어 이란에 들어 왔다. 사실 처음에 이란에 들어 오기 전에는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었다. 내가 언론에서 보아온 건 강경 반미 시위대가 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뿐이었으니까 이란이라는 나라는 그저 '과격한 반미주의자 무슬림'들의 나라 정도로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독실한 이슬람 국가이니 어디 함부로 카메라를 놀렸다가는 손목이라도 잘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걱정은 이란에 들어온 후 친절한 사람들과 잘 정돈된 깨끗한 거리를 마주하면서 차츰 사라져 갔다. 또 개혁과 보수가 공존하는 이란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이곳 역시 그저 우리랑 똑같은 나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여권이 강력한 곳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 주듯이 거리 곳곳에 차도르를 쓴 여성들이 활보하고 있었고 운전을 하고 있는 여성들까지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옆의 파키스탄만 해도 운전을 하는 여성은 매우 드문드문 볼 수 있는 풍경이었으니까 비교가 되는 모습이었다.

 사실 내가 이란에 들어 와서 무엇보다도 제일 놀랐던 건 바로 코카 콜라와 펩시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란에서 미국 제품을, 그것도 미국 문화의 상징적 아이콘이랄 수 있는 콜라를 본다는 건 전혀 상상도 못했었다. 그런데 아주 버젓이, 곳곳에서 팔리고 있었다.

석양

이슬람의 상징과도 같은 모스크 저 멀리 뒤편으로 해가 지고 있다.

이란에서의 라이딩

낙타 조심

제주도에서는 노루 조심, 중국에서는 야크 조심, 그리고 이란에서는 낙타를 조심해야 한다.

 이란에 들어온 지 열흘 정도가 지나 야즈드에 도착했다. 원래의 계획이라면 야즈드에서 30km 정도 전인 메리즈에서 하루를 묵고 올 예정이었으나, 숙소가 없어서 결국은 야즈드까지 들어 왔다. 이란은 길이 잘 닦여 있는 건 좋았지만 웬만한 규모의 도시가 아니면 숙소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하루 이동 구간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몇 십 km를 달려야 물이라도 사 마실 수 있는 가게가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실정이어서 라이딩 하면서 쉴 곳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파키스탄에서는 가까운 거리에 하나씩 주유소가 있었고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건 기본이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이란은 주유소가 별 장사가 안 되는 품목이라 그런지 아주 띄엄띄엄 있을 뿐이었다. 거기다 오직 주유소만 있는 경우가 많아서 뭘 사 먹을 곳도 없었다. 하기는 기름 1리터에 우리 돈 80원 정도 밖에 안 하니 그다지 남는 장사는 아니겠다.

올드 시티를 거닐다

카펫

이란산 카펫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야즈드의 실크로드 호텔 벽에 걸려 있던 카펫. 무희? 여신? 왠지 모를 처연함이 느껴지던 그림.

 질 좋은 비단의 생산지로도 알려져 있는 야즈드에서 내가 제일 끌렸던 것은 오래된 흙벽으로 미로처럼 이루어진 야즈드의 구시가(올드 시티)였다. 한 낮의 강렬한 태양을 피해 미로 같은 그 길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정원이 나오기도 하고 다시 미로를 헤매이다가 보면 이름 모를 모스크 앞에 이르기도 했다. 양 옆으로 높이 쌓인 흙벽을 따라 좁은 골목길을 혼자 거닐다 보면 때론 이 곳에 나만 홀로 존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문득 이러다가 이곳에서 영영 헤매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 때쯤이면 넓은 곳을 찾아 나갔다. 그런 후에 자메 모스크의 첨탑을 찾으면 됐는데 어디서나 보이는 높은 미나렛이 이 구시가 방랑자들의 등대 역할을 해 주었다.

올드 시티올드 시티

고요함 속에서 골목의 벽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태양이 남긴 자국을 따라 구시가를 걷는 일은 야즈드에서 할 수 있는 제일 매력적인 일 중 하나임에 틀림 없다.

올드 시티
전경

해 질 무렵의 야즈드 전경.

 야즈드는 구시가 말고도 많은 역사 유적들과 문화재가 남아 있는데 12C에 지어진 자메 모스크와 함께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의 본산으로서 5C부터 계속 불꽃을 지켜 오고 있다는 조로아스터교의 불의 사원과 시 외곽의 침묵의 탑이 유명하다. 그리고 한 여름의 태양이 강렬한 야즈드의 기후적 특성에 맞춰 예전부터 바람탑이라는 독특한 건축 양식이 발달했는데 이는 더운 날에 건물 내부를 시원하고 해주고 자연 통풍이 이루어지게 한 구조물로서 구시가를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야경

자메 모스크의 야경.

이란의 결혼식 풍경

 야즈드에 머물던 마지막 날 밤, 내가 머물고 있던 실크로드 호텔의 외국인 손님들 모두가 한 동네 사람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원래 신랑이 호텔 직원들과 친분이 있었는데 호텔 직원들을 초대하면서 손님들도 함께 초대한 것이다. 기쁜 일이니 함께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외국인 손님들을 결혼식에 초대함으로써 은근히 자신의 세를 과시하려는 의도였다.

 뭐, 아무려면 어떠랴. 결혼식 초대를 받은 것에 조금 들뜬 우리들은 카메라를 챙기고, 나름 옷을 챙겨 입고 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밤 9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호텔 직원들과 우리를 데려갈 미니 버스 한 대가 왔고 족히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일행들은 앉을 자리가 부족해 통로까지 가득 메운 후에야 식장으로 출발했다. 버스 안은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크로아티아, 캐나다, 네덜란드,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국적은 다양했지만 모두 즐거운 파티에 간다는 마음으로 들떠 시끌벅적했다.

결혼식장

남자 하객들의 결혼식장. 모두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드디어 밤 10시 식장에 도착.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약간 기운 빠지게 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바로 남자 손님들과 여자 손님들이 서로 다른 식장으로 안내된 것이었다. 우린 결혼식장에 가면 이란의 아가씨들도 만나볼 수 있겠구나 했었는데 너무 기쁜(??) 마음에 이곳이 특별한 남녀 유별 국가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 손님들과 분리된 남자 손님들의 식장으로 안내된 우리들은 한 줄로 서서 신랑과 볼 키스 인사를 주고 받고 식장으로 들어섰다.

우리들

그 넓은 식장에서 샌달에 면바지, 티셔츠를 걸친 사람들은 우리들뿐이었다.;;;

  사실 식장이라기보다는 넓은 식당 같은 곳이었는데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그 후 새벽부터 다시 파티를 벌인다고 했다. 하객들이 모두 신랑과 일일이 인사를 마치고 첫 식사가 나온 시각은 밤 열 한시. 결혼식에 온다고 저녁을 안 먹은 일행들이 태반이었던 우리는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했다. 이미 이때는 기다리는데 모두 지쳐 있어서 기운들이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 신부 얼굴도 보지 못했다. 도대체 신부는 언제 볼 수 있는 거냐고......

파티장 이동

파티장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시끌벅적.

 식사를 마치고 식장을 나온 시간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오랜 기다림에 지쳐 있던 우리는 이제 곧 가든 파티장으로 이동한다는 말에 모두들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가든 파티에서는 남녀 하객들이 함께 어울려 논다고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이란의 젊은 아가씨들을 볼 수 있겠구나 했던 것이다. 다시 미니 버스를 타고 파티장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한시. 우리가 도착한 때는 곧 신랑, 신부 입장이 시작할 찰나였다.

 왠 향을 피운 할머니가 들어 오시자 신랑과 신부가 그 가루를 조금씩 집어서 서로의 머리 위에 조금씩 뿌려주는 것으로 입장이 시작 되었다.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라는 그 향 의식은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되는 것이었는데 할머니는 무대 중앙의 신랑, 신부 옆 쪽에 쭈그리고 앉아 계속 향을 피우고 있었다.

신랑, 신부

신랑, 신부의 모습

향 할머니

계속 향을 피우던 할머니. 무섭게 생겼다.

 난 가든 파티라기에 넓은 정원에 삼삼오오 모여 잔을 부딪히면서 이야기를 하는 풍경을 상상했는데 실은 잘 정렬된 의자에 하객들이 앉고 중앙의 무대에서 사람들이 밴드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며 즐기는 것이었다. 신랑과 신랑 친구들이 함께 춤을 추고 또 결혼식이라고 한껏 차려 입은 꼬마 손님들도 무대 한 구석을 차지하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젊은 여자 손님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 건 볼 수 없었는데 딱 한 명 아가씨가 나와서 춤을 추다가 무슨 제지가 있었던 것인지 곧 자리로 돌아갔다.

 이러한 춤사위는 새벽 세시가 넘어서도록 계속 되었고 다음 날 체크 아웃을 해야 할 일행들이 대부분이었던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 왔다. 파티는 우리가 식장을 떠날 때까지도 계속되었는데 호텔 직원의 말에 따르면 보통은 밤새 파티가 계속된다고 했다. 조금 피곤해서 마지막까지 파티를 즐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란의 결혼식 문화와 풍경을 접할 수 있었던 건 좋은 경험이었다. (다음에는 아가씨들이 미니 스커트를 입고 있다는 그 여자 식장 안을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호텔의 여자 손님들 말에 의하면 차도르 안에는 입은 옷들은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데 우리가 이란에서 그런 걸 볼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모르겠다.)

결혼식장 풍경.

신랑과 친구들이 춤을 추고 있다.

결혼식장 풍경.

한껏 차려 입은 아이들도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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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혜연 2009.06.23 22:1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사우디나 예멘, 오만, 아프간등같은 보수적인나라에서는 아얘 여자들의 모습을 아얘 찍지도 못하게 하더군요? 그런나라에서도 결혼식이나 파티때만큼은 한껏 멋을내며 짙은화장에 화려한드레스를 입고 한답니다! 저기 이란아이들이 춤추는 모습 제가봐도 귀여워요~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선, 마주치다

이란, 칸도반.

덧. 여인의 뒷모습을 담으려던 그 순간, 갑자기 돌아본 여인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엉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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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 2006.12.18 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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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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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테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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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소피아


쵸콜렛 광고

파키스탄, 라호르


  이번 여행 중에 찍었던 쵸콜렛 광고 사진들. 이런 사진을 모으는 것도 재미있을거란 생각이 문득 들어서 파키스탄에서부터 시작한건데 막상 그 뒤에 간 나라들에서부터는 광고를 찾기가 힘들어서 많이 찍지를 못했다. 좀 더 거리의 분위기가 느껴지게 찍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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