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에 올리는 본 편과 관계 없이 간간이 생각나는 거리들을 적어 봅니다. 제목 그대로 외전입니다.

별
별
별

중국의 별(??)들과 함께. 아저씨들은 전부 자기들 카메라를 보고 있다

 늦은 저녁 무렵, 타쉬쿠르간에 도착해 숙소를 잡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고급 음식점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군복을 입은 한 떼의 무리들이 서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들의 어깨마다 전부 별들이 번쩍번쩍한다. 별 하나부터 네개까지 다양하게. 그나마 별 하나 짜리는 밥이 안돼는지 부동 자세로 서 있는다.
 
 오호, 이게 왠 스타들의 모임인가, 중국에서도 별이 높은 건가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그 자리를 지나쳐 왔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타쉬쿠르간의 무너진 성채를 보러 갔을 때 다시 몇 명의 별 무리들을 만났다. 오늘도 역시 별 하나짜리는 카메라를 들고 따라 다니면서 찍어 주기에 여념이 없었고, 세개, 네개 정도 되는 아저씨들은 뒷짐 지고 찬찬히 구경 중이셨다.

 중국에서 장성을 만난 것도 인연인데 기념 사진이나 한 번 찍자고 해볼까 생각하면서 다가갔더니 아주 흔쾌히 오케이다. 어제 우리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던 것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하긴, 워낙 작은 마을이다 보니 외국인에다 이상한 자전거를 탄 우리들이 눈에 띄었을리 밖에 없겠지.

 여튼 그러저러해서 스타들과 어깨 동무까지 해 가면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위에 사진들을 보면 아저씨들의 어깨에 번쩍번쩍하는 은별들이 보일 것이다. (혹시 중국에선 은별 위에 금별이 또 있는 건 아니겠지? 무슨 포트리스도 아니고...;;)

 뭐, 살아 가는데 있어서 이런 증명 사진 하나 정도 있으면 도움 안되려나? 중국 가서 나쁜 짓 할땐 유용하게 써 먹힐지도 모른다. "내가 이 장군하고 좀 친한데 말이지..."

 p.s. : 혹시 저 아저씨들, 코스튬 플레이 동호회 엠티 오고 이런 거였으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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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owneve.tistory.com BlogIcon 바위풀 2007.08.14 17:0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알고 보니, 중국의 은별은 우리나라의 영관급 장교란다.

    역시...스타는 쉽게 만날 수 있는게 아니겠지...;;

아얼진 산맥을 넘다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오전 8시, 칭하이 성의 마지막 도시 후아투고를 출발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아얼진 산맥 밑의 작은 마을. 이제 며칠 뒤면 아얼진을 넘어 신장으로 들어간다. 헌데 무언가 이상했다. 처음 출발부터 거의 100km 가까이 달린 비포장 산길. 지나가는 차라고는 한 시간에 한, 두 대가 될까 말까이고, 아무리 가도 사람이 살만한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시간은 이미 오후 네시. 일행 한 명의 허리가 좋지 않아 계속되는 라이딩도 쉽질 않았고, 마실 물도 제대로 준비를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대로는 캠핑조차 힘들었다. 길을 잘못 든 것일까. 이 길이 처음 시작될 때 맞은 편에서 오던 트럭 기사가 우리를 말린 생각이 났다.

 "자네들, 이쪽 길로 가면 안돼."
 "에이, 괜찮아요, 아저씨. 우리 길이 험한 건 상관 안 해요."

 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건만, 그 아저씨는 단지 길이 험해서 우리를 말린 것은 아니었던가 보다. 지도에 따른다면 이미 마을이 나왔어야 했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우리는 조금씩 초조해졌다. 이대로는 큰일이었다. 앞으로 가도 마을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무작정 갈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와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근처에 물을 구할만한 개울 같은 것조차 보이질 않는다. 이때 커다란 화물 트럭 한대가 저 멀리서 달려왔다.

 "다운아, 지금 저 차 무조건 잡아라. 놓치면 큰 일이다."

 시멘트 포대를 가득 실은 채 달려오던 트럭을 멈춰 세우고, 도움을 청했다.

 "아저씨, 우리 좀 태워 주세요. 이 앞에 마을까지만 데려다 주세요."
 "이 앞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아얼진을 넘어 뤄창까지 가야 해."

황무지

이런 곳을 100km가 넘게 달렸는데 아무 것도 나오질 않았다. 마실 물을 구할 개울조차 보이질 않던 황무지

 지도가 잘못된 것인지, 길을 잘못 든 것인지 모르겠다. 지도 상으로라면 분명히 몇 개의 마을이 사이사이에 있어야 하는데. 어찌됐든 지금은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주변은 황무지 밖에 보이질 않았다. 여기를 그냥 계속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조금은 아찔하다. 털털거리는 화물칸에 몸을 싣고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무슨 검문소 같은 곳에 트럭이 멈춰 섰다. 검문소 직원의 말에 따르면 산 정상 부근에 작은 산사태 같은 것이 나서 길이 험하니 밤에는 위험하다고,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넘어 가란다. 참, 여러 가지로 꼬인다. 결국 우리는 검문소 아래에 있던 작은 오두막 한 채에서 밥을 얻어 먹고 텐트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신장, 또 하나의 중국

타클라마칸

신장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

 곡절 끝에 아얼진을 넘어 드디어 신장의 첫 도시인 뤄창에 들어왔다. 뤄창은 신장 내부로 깊숙이 들어간 곳도 아니고 단지 산맥 하나 넘어왔을 뿐인데, 이전까지의 중국과는 많은 것이 달랐다. 일단은 칭하이성에서 고도도 2,000m 넘게 내려 왔고, 또 사막의 자락에 위치한 도시라 그런지 기후가 확연히 차이가 났다. 내리쬐는 태양의 세기가 이제 정말 사막에 가까이 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김새도 달랐는데 신장의 주 민족인 중앙아시아 쪽 계통의 위구르인들은 검붉은 피부나 한족에 비해 장대한 체격 등 한 눈에 보기에도 한족과는 달랐다. 종교도 이슬람이라 차도르를 한 여인들이나 무슬림 모자를 쓴 남자들이 길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일상적인 거리의 풍경도 한족들이 사는 곳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쓰는 말도 베이징 표준어인 만다린과는 많은 차이가 났기 때문에 이제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새로운 단어를 배워야 했다.
 
 그것뿐인가. 심지어 이들은 자신들의 시간도 따로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모든 지역에서 베이징 표준시 하나만을 쓰고 있는데, 실제로 서쪽 끝 신장으로 오면 경도 상으로 거의 두, 세시간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그래서 신장 사람들은 베이징 시간과 함께 신장 시간이라 하여 표준시와 두 시간이 차이가 나는 자신들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호텔의 로비에는 베이징 시간과 신장 시간으로 맞춘 두 개의 시계가 걸려 있고, 가게에서 시간을 얘기할 때에는 신장 시간인지 베이징 시간인지 다시 한번 물어봐야만 했다.

소녀들

라이딩 도중 시골길에서 만난 소녀들. 무슬림의 복장인 차도르를 두르고 있다

  말, 사람들의 생김새, 일상의 풍경 등 이 모든 것이 다르니 이건 마치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한 나라 안에 있는 것인데 신장은 마치 중국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중국 같은 곳이었다.

실크 공장

허톈 근처의 실크 공장에서 카펫을 짜던 할아버지

 정식 명칭이 신장 위구르(웨이우얼) 자치구인 신장성은 '돌아올 수 없는 사막'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 사막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예전부터 투르크인(위구르인들은 이들의 후예이다)의 지역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중국으로 편입되면서 중국의 한 자치구가 되었다. 신장성의 지역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중심으로 해서 크게 사막의 남로와 북로 쪽으로 나누어지는데, 신장성의 유명한 관광지들과 유적지들은 내가 지나간 남로가 아닌 북로 쪽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고, 북로를 따라 많은 오아시스 도시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이자 중국의 3대 석굴 중 하나로 꼽히는 둔황 석굴과 베제클리크 석굴 등이 있고, 서유기 손오공의 화염산이 있는 투르판,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 나라에서 직항 항로까지 개통된 우루무치까지 많은 관광 명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남로 쪽에는 카슈가르 근처의 옥 생산지인 허톈이나 수제 칼이 유명한 옝기사르 등이 있다. 한 때 신장에도 위구르인들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던 단체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자취를 거의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졌고, 요즘은 사실 중국의 한 지방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사막의 모래 바람을 만나다

 
퀴라에서 허텐으로의 라이딩 도중에 사막의 모래 바람을 만났다. 아주 강한 맞바람은 아니었기에 속도를 내는데 큰 어려움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불과 1~2m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모래 바람 속에서의 라이딩은 지독한 적막과 두려움을 내게 안겨 주었다. 마스크를 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입 안은 모래로 서걱거렸고, 귓속이고, 코 속이고 모래가 차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게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정신적인 압박은 몸이 더욱 더 빨리 지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개인적으로 7개월여의 라이딩 중에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바로 이때였던 것 같다.

모래 바람

앞이 보이지 않는 모래 바람 속에서의 라이딩은 지독한 두려움과 적막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모래 바람 속에서 계속 페달을 밟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래 바람 속에서의 라이딩이 사람 사는 것하고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길 위에서 모래 바람을 만났을 때 가장 좋은 대처법은 계속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바람이 언제 멈출지 모르는데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온 길을 되돌아 갈 수도 없다. 모래 바람 속을 헤쳐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모래 바람을 빠져 나갈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 사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살다 보면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상처를 가슴에 입고 후회하기도 하고, 두 무릎을 꿇고 와락 주저 앉고 싶은 상황도 만난다. 그럴 때면 정말 한 치 앞이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온 것을 되돌릴 수도 없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삶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엔 다시 기운을 내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이것이 사람 사는 것이다.

카슈가르, 위구르인들의 도시

민속 박물관

카슈가르 민속 박물관. 위구르인 전통 가옥의 내부를 꾸며 놓았다

 중앙아시아 위구르인들의 정신적, 문화적 중심지를 자임하고 있는 카슈가르(중국명 카스)는 신장성의 서쪽 끝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까지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는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고, 세계에서 제일 큰 일요 시장(바자르)이 서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일요 시장이 서는 날이면 카슈가르의 인구가 몇 배로 늘어난다고 할 정도로 사람과 돈이 몰려 오던 곳이 바로 이 카슈가르의 바자르다. 하지만 위구르인들의 정신과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던 일요 시장은 중국 정부의 현대화 정책으로 인해서 이제는 숨 막히는 시멘트 건물에 자리 잡아 그 맥을 유지하면서 예전의 멋을 많이 잃어가고 있고, 도시 자체도 밀려 들어온 한족들로 인해 자신들만의 고유색을 점차 잃어 가고 있다. 그나마 도시 중심에 자리한 카슈가르 민속 박물관과 가끔씩 열리는 작은 민속 문화 행사 등이 이들의 정체성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것들이다.

낙타 사파리

카슈가르 근교에서는 낙타 사파리를 즐길 수 있다

낙타

자세히 보면 낙타의 눈은 꽤 순하게 생겼는데 가까이 가면 때때로 기침을 해서 사람을 놀래킨다


 그밖에 카슈가르는 파키스탄으로 넘어 가기 전 여행자들의 마지막 집결지로서 실크로드 여행을 하는 많은 여행객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쿤제랍 패스를 지나 파키스탄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으며 중국 쪽 국경 도시인 타쉬쿠르간을 거쳐 파키스탄의 국경 도시인 소스트로 넘어가게 된다. 단 이때 중국 쪽에서 파키스탄 쪽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꼭 먼저 파키스탄 비자를 받아 놓아야 한다. 사실 파키스탄 비자는 입국 후에 경찰서에서 받아도 되는데, 중국 쪽 국경에서 파키스탄 비자가 없으면 통과시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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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에 올리는 본 편과 관계 없이 간간이 생각나는 거리들을 적어 봅니다. 제목 그대로 외전입니다.

 차차의 숙소에서 한국의 월드컵 경기를 관전하며 휴식을 취한 후에, 울란까지 라이딩을 했다. 울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울란에서 둬링하 쪽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며칠 간 같이 라이딩을 하던 중국인 아주머니가 호텔 직원과 이야기를 해 보더니 둬링하 쪽으로 가는 길은 외국인 통제 구역이라 우리가 지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안되냐고 했더니 그쪽 구간은 차를 탔어도 외국인은 통과할 수가 없단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를 하던 우리는 일단 버스에 타는 걸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아주머니가 같이 있었으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중국인처럼 행세하며 버스에 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짐도 거의 다 실었을 무렵 경찰이 다가왔다.

 "당신들 외국인이지? 이쪽으론 못 가니까 돌아가."

 경찰한테 걸린 우리는 버스에 실었던 짐을 다 내렸다. 왜 못가게 하는거야라고 물어 봐도 뾰족한 대답은 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달리 통과할 다른 방법도 없었기에 결국 우리는 전날 왔던 차차까지 돌아가서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꺼얼무에서 다차이단을 통과해 후아투고로 향하는 길. 이 곳은 외국인 통제 구역은 아니었지만 다차이단 지역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통행 허가증이 필요했고, 허가증을 받기 위해 주말을 꼬박 보내며 관청이 문을 여는 월요일까지 꺼얼무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나오는 통행 허가증도 무기한 허가증이 아닌 며칠 동안만 체류할 수 있는 증서였다.

 외국인 통제 구역이라니 도대체 뭐가 있는 것일까? 일설에 의하면 이 지역이 중요 군사 작전 지역이라서 그렇다 했다. 좀 더 신빙성 있게 들리는 또 다른 설은 칭하이 성이 예전에 중국의 핵실험 장소였는데 지금 통제되고 있는 지역들이 바로 그 지역들이라는 것이었다. 그 안의 마을들에 가면 핵실험 이후 방사능에 누출되어 기형이 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중국 정부가 그런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중국 사람에게 직접 들었다는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설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간 중국 정부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그럴 법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이제 중국으로의 여행이 자유로우니까 가끔씩 착각하지만 중국은 엄연한 사회주의 국가이고 언론에 대해 굉장히 엄격한 통제를 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외국 언론들이 일과 관련해 중국에 입국하려면 더 많은 심사를 받고 때로는 거부당하는 경우도 제법 있단다. 예전에 사스가 퍼졌을 때, 사스 발병 사실을 외국 언론에 알렸던 중국의 한 의사는 나중에 기밀 누설로 처벌을 받기도 했었다.

 실제로 그곳에 뭐가 있는지는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밝혀지지 않겠지만, 중국이 뭔가 뒤가 구린 것을 숨겨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혹시 미국은 알고 있으려나. 아니면 멀더는 알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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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에 올리는 본 편과 관계 없이 간간이 생각나는 거리들을 적어 봅니다. 제목 그대로 외전입니다.

 중국에서는 우리가 늘 마시는 물처럼 사람들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뜨거운 차이다. 추운 겨울이든 무더운 한여름이든 이들에게 차는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다. 식사 때에도 물 대신 늘 마시는 것이 바로 차인데 이들의 음식이 워낙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뜨거운 차를 마셔서 그 기름기를 소화시키는데 좀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하여간 그래서 식사 때 같이 차를 마셔주는 건 중국 생활을 좀 하다 보면 습관도 되고 맛도 들린다. 하지만 무턱대고 뜨거운 차가 좋을까? 하루는 그늘 한점 없는 땡볕에서 라이딩을 하다가 몇시간만에 나온 주유소를 발견해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이 주유소 사장님 아주머니, 역시 우리가 신기한 모양이다. 이리저리 쳐다보고, 말도 걸어 본다. 그러다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었던 것인지 주방으로 들어가는 직원 한 명을 부른다.

 "얘야, 여기 뭐 좀 가져와라."

 오, 뭐 시원한 거라도 주려는 것일까? 라는 우리의 기대를 깨고 직원이 가져온 것은 보온병... 아주머니 친히 따라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웃는 얼굴로...마시란다. 뭐야, 아주머니 새디스트야??? 나 지금 땀 뻘뻘 흘리고 있는 거 안 보여? 저 밖에 작열하는 태양이 보이지 않는거야?

 "다운아, 한 명 정도는 호의를 받아줘야지."

 그렇다. 나, 여기서 막내였다. 요즘 어디 가서 막내 먹기도 힘든데, 여기선 막내다. 아, 형님들. 뜨거운 차를 홀짝홀짝 마셔대는 나를 보며 역시 어린 것이라 뭐든 잘 먹는단다. 나, 주는 대로 다 먹는다.

 뭐, 이런 것 정도야 한 번 정도 마셔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 와서 가장 적응이 되지 않는 건 따로 있었다. 중국에 오래 있던 한국 사람들도 영 적응하기 힘들다는 바로 그 것. 그건 바로...미지근한 맥주다. 이 사람들, 뜨거운 차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맥주도 차지 않은 것이 좋은가 보다. 맥주가 무슨 사케냐.

 여하튼 뜨거운 차를 마시던 습성 때문인지 맥주도 차지 않게 마시는 걸 당연히 생각하는 이들이라 왠만한 도시의 왠만큼 큰 식당에 가도 "여기 맥주 좀 주세요." 하면 왠지 모를 미지근한 맥주가 나온다. 도대체 맥주를 냉장고에 넣어 놓기는 하는건가.

 하여 중국 라이딩 두달 동안 우리가 제일 먼저 익힌 말은 바로 이거였다.

 "여기요. 삥, 삥전더, 삥더 삐주 주세요."
 "삐~~~~~~~~~~~이잉전더 삐주요."

 저렇게 삐이잉을 강조해도 이들이 가져오는 건 대개가 우리의 마음에는 차지 않는다.

 "아니, 이게 안 시원해?"

 의아해 하는 직원들을 뒤로 하고, 결국엔 식당에서 타협을 한다. 일단 지금 가져온 그나마 시원한 거는 여기 두고, 저기 몇병을 냉동실에 좀 넣어 놔요. 우리가 이거 마실동안 좀 시원해지게. 크.

 도대체 중국 사람들은 미지근한 맥주는 무슨 맛으로 먹는 걸까? 무슨 온도가 높아서 김 빠진 사이다를 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면 탄산 음료는 시원한게 냉장고에 잘 넣어 놓고 파는데, 어찌 맥주만 그리 미적지근하게 파는 것인지. 이해할 순 없지만, 어쨌든 다음부터 중국에 오면 시원한 맥주를 주문하는 말 하나만은 확실하게 익혔다. 삥~~~~~~~전더로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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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일, 대륙 횡단의 출발지 텐진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어제는 새벽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2006년 5월 2일, 오늘은 바로 그 동안 준비해 왔던 여행의 출발일이다. 처음에는 스스로도 과연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망설였지만 결국 난 지금 텐진으로 가는 배 앞에 서 있다. 넉넉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자전거와 체력 훈련을 하고 두꺼운 책과 자료들을 읽으며 공부를 해왔던 시간들을 지나 드디어 출발이다. 배웅 나온 가족과 친구들을 뒤로 하고 배에 올랐다. 정오에 출발 예정이던 배는 도크를 빠져 나가는데만 세시간이 넘게 걸린 끝에 드디어 뱃고동을 울리며 망망대해로 나선다.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꼬박 하루가 걸려서야 도착한 텐진은 도착부터 시련을 안겨 주었다. 함께 간 일행 자전거의 주요 부품이 운송 중에 분실된 것이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던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 헤메고 있는데 다행히 주변에 계시던 한국분들이 바쁘신 와중에도 이것저것 도움을 주셨다. 무역업을 하며 텐진에 상주하시는 분들이 수하물을 찾으러 항에 왔다가 통역도 해 주시고, 여기저기 연락도 해 주신 것이다. 덕택에 무사히 한국에 추가 부품을 주문하고, 텐진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 하고 보내는 중국에서의 첫 밤.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첫 날부터 액땜이라도 한 걸까. 왠지 앞으로 갈 길이 결코 만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견하는 듯 했다.

고문화 거리

텐진의 고문화 거리

 텐진은 베이징, 상하이, 충칭과 함께 중국의 4대 직할시 중 하나로 중국 공업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관광 도시는 아니지만 난까이 대학과 텐진 대학, 그리고 고문화 거리와 골동품 시장 등은 이 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잘 가는 곳들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텐진 대학과 난까이 대학은 넓은 교정을 연못과 분수 등으로 잘 꾸며 놓아 연인이나 가족 단위의 소풍객도 많이 찾아오는 이곳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다. 고문화 거리는 이젠 관광객들을 유혹하기 위한 싸구려 상품들이 잠식해 버린 곳이지만, 외국인들, 특히나 서양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아직은 흥미를 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중국 어디를 가든 노천 시장이나 기념품 가게 등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마오쩌둥 관련 상품이다. 젊은 시절부터 장년까지의 마오쩌둥 사진이 인쇄된 상부터 시작해서 자기로 만든 작은 두상, 그리고 마오쩌둥의 얼굴이 새겨진 가방이나 지갑도 있다. 일부에서는 잔인한 학살자로 그를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마오쩌둥은 많은 중국인들에게 우러름의 대상인 듯 하다.

마오쩌둥 상품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마오쩌둥

마오쩌둥

관련 상품들.

골동품 시장

골동품 시장에선 핸드폰이 계산기 대신 흥정의 수단이다. "아저씨, 이 정도면 싼 거야."


하계 올릭픽의 개최지, 베이징

 부품 때문에 예정에 없던 며칠 간의 텐진 체류를 마친 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베이징을 향해 출발했다. 첫 날 이동거리 158.3km에 순수 라이딩 시간 9시간 17분. 잘 포장되어 있고 완만한 도로는 장거리 라이딩을 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었지만, 첫 정식 라이딩인데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짐의 무게 때문에 쉽진 않았다. 게다가 베이징 외곽에 도착한 후에도 중심가까지는 거의 30km나 더 들어가야 했기에 우리 일행은 밤 열한시가 다 되어서야 베이징 역 앞의 한 호스텔에 자릴 잡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숙소에 짐을 푼 후에 간단히 씻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겨 버렸다. 그때까지 저녁을 먹지 못한 우리는 역 근처에 있는 24시간 분식점을 찾아 늦은 끼니를 때웠다.

베이징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D-823

 베이징의 호스텔은 예상 밖으로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2008년 하계올림픽의 개최지인 베이징은 도시 전체가 올릭핌 준비로 분주했는데 도시의 입구부터 시작해 거리 곳곳에는 올림픽기가 나부끼고 있었고, 시내 곳곳은 도로 확장, 조경 등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천안문 광장 바로 옆에는 커다란 올림픽 카운트다운 시계를 세워 놓고 사람들에게 올림픽을 홍보하는 일도 열심이었다. 아마 숙소의 정비도 이런 올림픽 준비의 일환일 것이다.  또 베이징 시내의 곳곳엔 무슨 용도의 건물들을 짓는 것인지 우리나라 고층 빌딩 두, 세 채는 너끈히 들어갈법한 대형 빌딩들의 공사가 많이 눈에 띄었다. 그 공사들을 보면서 중국이라는 나라는 올 때마다 참으로 내게 두려움을 갖게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99년 이후 세 번째로 온 중국이지만, 이곳은 다시 올 때마다 도대체 그 발전 속도를 종잡을 수가 없어서 때론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BRICs, 그 중에서도 넓은 땅덩어리와 인구로 더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이다. 미래에는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초강대국이 될 거라는 견해도 많다. 그리고 몇 년 새에 직접 마주한 중국의 발전 속도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출퇴근 시간의 자전거 행렬.

출퇴근 시간의 베이징에서 자전거의 행렬은 아직까지도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한때 자전거 통행의 천국이었던 베이징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늘어난 자동차로 인해 자전거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한다.

 베이징에 도착한 다음 날엔 배를 타고 오는 중에 휘어진 자전거 바퀴의 림을 수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호스텔의 직원에게 부탁해 “수리”라고 한자로 적은 쪽지 한 장을 들고서다. 천안문 쪽으로 방향을 잡은 후, 천천히 걸으며 자전거 가게를 찾기 시작했지만 자전거 가게는 눈에 띄질 않았다. 그렇게 한 손에는 종이 쪽지, 다른 한 손에는 자전거의 림을 들고 한 시간 정도를 헤맸을 무렵, 옆을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말을 건냈다. 내가 자전거 바퀴를 들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그랬던 모양이다. 손에 든 쪽지를 내미니, 골목 안쪽 구석을 가리킨다. 할아버지가 가리킨 곳으로 가니 나온 것은 골목 외진 곳에 작은 의자와 공구 상자 하나 놓고 자전거를 수리하고 있는 수리상이었다. 비록 의자 하나에 공구 상자 하나가 다였지만 사람들은 연신 그에게 와서 자전거를 수리해 갔다. 나도 사람들 틈에 끼어 림과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와 바퀴를 본 그는 한눈에 상태를 파악하고 휘어진 림을 교정해 준다.

후하이 호수의 석양.

베이징 북쪽에 있는 후하이 호수의 석양. 호수 주변에는 분위기 좋은 고급 바들이 자리하고 있다.

 무사히 수리를 마친 후 슬슬 거리를 배회하던 나는, 어스름이 질 무렵 후미진 골목 구석의 꼬치 가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환기가 안돼 꼬치 굽는 연기가 자욱하고, 테이블은 조금 더러울지언정 혼자만의 만찬을 즐기기엔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외국인인 내가 신기했던지 어려 보이는 직원들은 내 옆에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넌 어디서 왔니?"
"신장에서 왔어."

 온 가족이 신장에서 넘어온 이 17살의 위구르족 아이는 가족들의 생계를 이 꼬치 가게로 이어가고 있었다. 형제들은 서빙을 하고 부모님들이 꼬치를 굽는다. 한창 얘기를 나누며 세 병째의 맥주를 비우고 있을 때 가게 밖 골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가게 밖으로 나가보니 왠 아주머니와 아저씨 하나가 싸움이 붙었다. 그들은 서로 언성을 높이더니 주먹 다짐을 시작했고 끝내는 골목 구석에 쌓여있던 쓰레기 더미 위를 뒹굴었다. 직원들과 함께 싸움 구경을 하며 시간은 흘러갔고, 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조차 잠시 잊은 채 이들 속으로 스며 들었다.

골목 구석의 꼬치 가게에서.

골목 구석의 꼬치 가게에서. 어린 위구르족 점원들.

 베이징에 머무르는 일주일 동안 난 베이징 구석구석을 걸어 다녔다. 처음 왔을 때는 전세 버스에 실려 관광지만 돌아다닌 터라 이번이 두 번째임에도 왠지 낯선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내 발로 직접 이 도시를 걸어 다니니 이제야 이 곳을 조금은 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내 몸으로 직접 보고 느낀 후에야 이 곳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곳이 되었고 나를 조금씩 받아들여 주었다. 낯선 곳을 걸으면서 얻는 또 하나의 기쁨은 바로 일상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일상을 일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 여행자의 보람이라 하지 않았던가. 길을 걸으면서 마주하게 되는 이들의 많은 일상들이 내겐 또 하나의 즐거움이자 여행의 작은 선물이었다.

인력거 후퉁 투어.

인력거를 타고 후퉁 투어를 하는 관광객들.

 판에 박힌 현대식 건물들과 요란한 네온 사인 간판들이 있는 풍경은 많은 아시아권 나라들의 번화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모습이 된지 오래다. 오랜 식민 강점의 역사는 많은 나라들에게 자신들만의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는 법을 지워 버렸다. 베이징의 번화가도 마찬가지인데 맥도날드 매장부터 시작해서 버거킹, KFC에 밤이 되면 켜지는 현란한 네온 사인들은 한국의 번화가와 다를 바가 없다.

 만약 여러분이 제대로 된 베이징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혼잡스런 번화가에서 벗어나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자. 후퉁이라 불리는 베이징의 뒷골목들은 그네들 예전의 삶을 그대로 간직한 곳들로 모두 똑같은 현대의 삶이 아닌 이들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또 걔 중 몇 곳은 최근에는 새로운 관광 코스로 개발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천안문 야경.

천안문 야경. 거대한 마오쩌둥의 그림이 걸려 있다.


만리장성.

만리장성은 대륙의 자긍심이었다.

 베이징 혹은 중국 하면 제일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도 천안문과 자금성, 그리고 만리장성일 것이다. 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일약 유명해진 천안문 광장은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의 광장으로 베이징 시내의 한 중심에 자리하고 있고 매일 아침과 저녁에는 국기 게양식을 보려는 사람들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광장의 주변은 인민대회의장과 박물관이 둘러 싸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천안문을 거쳐 들어갈 수 있는 자금성이 자리하고 있다. '금지된 성'이라는 뜻이 인상적인 자금성은 첫 번째로 그 규모에 놀라게 되고 두 번째로 인파에 놀라게 된다. 엄청난 크기의 자금성은 그 크기만큼이나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대강 거닐면서 둘러본다 해도 족히 세 시간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중국 최고의 권력자였던 마오쩌둥은 “장성에 오르지 않은 자, 대장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성은 중국인들에게는 곧 대륙의 자긍심이었다. 이 만리장성에 대해 사람들이 제일 많이 잘못 알고 있는 거짓말 중 하나가 바로 "인공위성에서도 보이는 지구 상의 유일한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오래 전에 어떤 학자가 방송에서 만리장성의 크기를 과장해서 설명하려다가 쓴 말인데 그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통용되게 되었다. 사실 인공 위성에서 보이는 지구상의 건축물은 없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만리장성은 보는 이를 무릎 꿇리기에 충분한 위용을 가지고 있다. 세월의 쇠락으로 많이 무너지긴 했어도 여전한 그 웅장함을 바라보며 장성이 끝도 없이 이어졌을 그때를 떠올리다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올 것이다.

자금성

휴일 오후의 자금성. 저 멀리 보이는 천안문부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자금성 2

황제의 거처였던 자금성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높은 담으로 둘러 싸여 있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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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mCat 2007.06.24 01:0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오 흥미로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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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 2006.12.18 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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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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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테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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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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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라호르


  이번 여행 중에 찍었던 쵸콜렛 광고 사진들. 이런 사진을 모으는 것도 재미있을거란 생각이 문득 들어서 파키스탄에서부터 시작한건데 막상 그 뒤에 간 나라들에서부터는 광고를 찾기가 힘들어서 많이 찍지를 못했다. 좀 더 거리의 분위기가 느껴지게 찍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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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의 소녀들

신장의 소녀들



   중국의 서쪽, 타클라마칸 사막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신장 지역은 인종도 문화도 같은 중국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다른 문화권이다. 심지어는 사용하는 시간조차도 신장 시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신장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듯한 소녀들의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소녀들은 날 눈치챘던지 계속 날 보며 재잘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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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신장,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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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람 하이웨이, 중국

카라코람 하이웨이, 중국



   중국 신장 지역의 카슈가르부터 시작해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까지 이어지는 카라코람 하이웨이. 십년이 넘는 공사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는 험난한 공사였다. 카라쿨 호수로 향하던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 낙타 세 마리가 나타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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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akey.tistory.com BlogIcon Lakey 2006.12.14 17:5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우와아 무슨 그래픽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잘보고갑니다. 너무 멋있네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