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만나다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이스탄불을 떠나던 날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올 거라던 일기 예보와 달리 잔뜩 구름만 낀 하루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점심 무렵이 되면서부터 장대비가 쏟아진 통에 우리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고, 결국은 예정보다 가까운 실리부리에 숙소를 잡았다. 잔뜩 젖은 짐들을 정리하고 씻은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니던 중에 한 작은 호텔의 입구에 놓여져 있는 자전거를 발견했다. 한눈에 보기에 여행자의 느낌이 나는 자전거.

기타

실리부리에서 만난 일본인 라이더, 기타 노부유키

 그래서 무작정 그 호텔로 들어가 만나게 된 사람이 바로 기타였다. 일본에서 온 기타는 4월경부터 시작해 우리랑 비슷하게 대륙을 가로 질러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늘 혼자 다녔다던 기타는 우리에게 당분간 라이딩을 같이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새로운 인연이 반가웠던 우리 또한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해서 다음 날부터 함께 하게 된 우리들의 인연은 생각지도 못하게 리스본까지 이어졌다.

기타 노부유키 이야기

 류블랴나에서 잠시 헤어지게 되기 전까지 함께 지냈던 약 3주 동안 기타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일본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인 라이딩을 시작한 기타는 파키스탄, 이란을 거쳐 온 우리와 달리 중국에서 중앙 아시아 쪽으로 넘어가 터키로 들어 오는 경로를 따라 왔다. 기타가 계획한 경로는 일단 리스본까지 간 후에 다시 파리로 올라가 일본으로 돌아 가는 것이었다. 기타는 이번 여행을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 했다. 대륙을 가로 지르는 자전거 횡단을 스스로 해낼 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기타는 자동차의 진동 설계와 관련한 엔지니어였는데 망가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비디오 게임과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는 어찌 보면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일본 사람 타입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농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었다는 기타는 또 보기와 달리 굉장히 감수성이 예민한 타입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 영화 중에서 <엽기적인 그녀>를 제일 좋아해서 이 영화만 네, 다섯 번 정도 봤는데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특히 전지현이 산에 올라가 "견우야, 미안해......"를 외치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울게 된단다. 기타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러브 레터>의 "오겡끼 데스까?"를 잘 따라 하는 것처럼 전지현의 저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점심

기타가 가지고 있던 일본 카레로 점심을 해결했다

 또 기타는 원폭 피해를 직접 겪은 일본인으로서 일본이 핵을 보유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만 빼고는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이었다. 야스쿠니 신사나 그 외 아시아 나라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 내 몇몇 정치인들의 문제에 관해서도 기타는 극우 경향을 보여 주었다. 신사에는 다른 조상들도 있기 때문에 참배를 하는 것이며 그것을 다른 나라들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기타와 우리는 같이 지내기 상당히 힘든 사이일 수도 있었는데 우리가 함께 지내는 동안은 전혀 그런 걸 의식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는다고 할 때 사람들을 편견 짓게 하는 여러 고정 관념들을 벗어 버린다면 그때야 말로 참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사람들이 만나 관계를 맺을 때 학교는 어디인지, 지역은 어디인지를 따지며 그에 따른 편견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나 또 특히 일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싫어라고 외치는 것도 바로 그런 고정 관념의 영향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여행 중에 인간 관계를 맺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 같은 나라 사람이든, 다른 나라 사람이든 간에 - 여행 중에는 여러 고정 관념이나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자 대 여행자로서의 만남. 때로는 그 관계가 더 깊어질 수도 있고 또는 잠시 스쳐가는 사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순수한 마음으로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하나의 까닭이다.

앤디패디

라이딩 도중에 만난 영국인 친구 앤디와 패디. 이들은 런던에서 이스탄불까지 5개월째 도보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가리아 입성, 가을을 느끼다

 지형적으로는 이스탄불의 서쪽부터 유럽인지 모르겠지만 불가리아에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유럽에 들어 왔다는 느낌이 났다. 에디르네를 떠나 불가리아로 입국하던 날 아침은 짙은 안개가 껴 있었는데 그 풍경이 내 뇌리 속에 있는 동유럽의 느낌을 더해 주었다. 낮부터는 날씨가 맑아져서 오랜만에 고글도 검은 색 렌즈로 바꾸었는데, 간만에 따뜻한 햇살 아래서 라이딩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하쉬코브

하쉬코브. 노랗게 물든 은행이 가을이 다가 왔음을 알려 주었다

 첫날 머무른 하쉬코브에서는 시내 주변의 수로를 따라 쌓여 가는 낙엽들이 부쩍 다가온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국경 하나 지났을 뿐인데 터키에서는 가을이 왔다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 왔었다. 한국을 떠날 때가 봄의 절정인 5월이었는데 어느 새 이렇게 시간이 지났다. 이후 하쉬코브, 파르디직, 이흐티만을 지나 소피아까지의 시간은 짙어 가는 가을과 함께한 라이딩이었다.

하쉬코브

하쉬코브

  하지만 가을의 정취를 즐기는 것과 함께 걱정도 따라 왔다. 얼마 안 있으면 낙엽도 다 지고 발칸에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 전에 발칸을 빠져 나가야 할텐데 처음 예정보다 일정이 계속 늦춰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이탈리아 북부에 진입했어야 했는데 이제야 동유럽에 들어 왔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눈 내리는 가운데 라이딩을 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까 어서 이 곳을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달려야 했다.

부고

불가리아의 독특한 풍경 하나. 이 곳에서는 부고를 이런 식으로 동네에 알렸다

이흐티만

소피아 들어 가기 전날 묵었던 이흐티만.

이흐티만

도시 전체를 신비한 마력이 감싸고 있는

이흐티만

듯한 묘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과 하겐 크로이츠

 아침 일찍 찾아간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은 아직 찾아온 사람들이 없어 한적했다. 내가 혼자 안으로 들어서자 기념품 가게를 지키고 있던 할머니가 긴 양초 하나를 건네 주며 기도를 하라고 일러 주었다. 비록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성당에 오면 늘 차분해지는 걸 느꼈기 때문에 경건한 마음으로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성당 앞에서는 작은 골동품 시장이 열리고 있었는데 각종 낡은 물건들 - 사실 별로 진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물건들이 태반이었다 - 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었던 건 바로 나치의 상징물인 하겐 크로이츠가 새겨져 있는 각종 기념품들이었다. 배지나 메달부터 시작해서 반지, 펜던트, 라이타, 담배갑 심지어는 가짜 라이카 카메라에 새겨진 나치의 문양까지 하겐 크로이츠와 관련해서 없는 게 없었다.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소피아의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나치의 문양이라면, 더더군다나 유럽에서는 피해야 할 상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버젓이 팔리고 있다니. 호기심이 생긴 나는 머물고 있던 호스텔의 주인 아저씨에게 골동품 시장의 나치 기념품들에 대해 물어 보았다.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물건이 가짜이지만 아주 가끔씩 진짜 나치 시대의 물건이 들어 오기도 한다고 했다. 불가리아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 편에 서 있었는데 그런 연유로 이런 물건들이 흘러 나오는 것이란다. 그는 이 물건들이 다른 유럽 국가 사람들에게 좋은 기념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나치 관련 상징물들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것들이 좋은 기념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긴 논쟁은 원치 않았기에 다른 말을 더 하지는 않았지만 2차 대전 당시의 불가리아를 이야기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살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치가 승리했더라면 불가리아도 승전국이 될 수 있었을 꺼라며 주인 아저씨가 순간적으로 아쉬움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아저씨의 생각을 받아 들일 수는 없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니쇼우키(욱일 승천기 - 일제 시대의 일장기)가 기념품이 될 수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점령 하에 있던 혹은 연합군이었던 다른 유럽 국가 사람들에게 하겐 크로이츠가 어찌 기념품이 될 수가 있겠는가. 물론 독일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전후 자체 청산을 제일 열심히 한 나라이기도 하고, 여전히 나치와 관련한 사항들은 독일에서 굉장히 금기시되는 것들이다. 최근 들어서 네오 나치니 스킨 헤드니 하는 정신 나간 세력들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에서 나치는 여전히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소피아의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은 19C 후반 불가리아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함께 싸웠던 여러 나라의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다. 당시 오스만 제국에 점령 당해 있던 불가리아를 위해 러시아와 동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의 군인들이 함께 싸운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죽어간 군인들을 위해 세워진 성당 앞에서는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나치의 기념품이 팔리고 있다니...... 조금은 슬픈 기분이 들었다.

EU 가입

내가 불가리아에 머물던 때는 불가리의 EU 가입이 63일 남아 있었다. 그들의 오랜 숙원이었기에 다들 조금은 들떠 있었지만, 그 전에 확실한 역사 청산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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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eloyou.com BlogIcon 멜로요우 2008.01.13 02:2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불가리아라..ㅎㅎ
    불가리아의 사진들은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아요 ㅎㅎ
    생각보다는 약간 고풍스러운 느낌이 ㅋ;
    특히나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이 참으로 인상적이네요 ㅎㅎ
    성당의 모습과 주차된 차들의 모습의 대비가 참 묘하게 느껴져요 ^^

  2. Favicon of http://solut2000.tistory.com BlogIcon 우성군 2008.02.02 01:2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불가리아 갔을 때 날씨가 흐렸는데, 도시 분위기와 딱 맞아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

라마단의 아침 식사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터키에 들어온 지 일주일 째, 드디어 반에서 라마단의 첫 아침을 맞았다. 전날 밤부터 괜히 긴장해 바를 찾아 다니며 술을 마신 나와 일행은 - 파키스탄 북부 이후로 이란을 통과할 때까지 거의 두 달 반 동안 술을 마시지 못했었다. - 다음날 아침 아홉 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이런, 아침 먹기는 글렀구나. 전날 밤에 호텔 직원이 아침 여덟 시까지만 오면 아침을 주겠다고 했는데 늦어 버린 것이다. 어제 사다 놓은 빵을 뜯으며 창 밖을 보니 이제 음식 가게들도 슬슬 문을 닫는 분위기다.

TamaraLive Band

술에 굶주려 있던(??) 우리는 오랜만에 술집을 순회하며 즐겼다. Bar Tamara와 라이브 공연이 있던 맥주집에서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숙소 로비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일하던 젊은 직원들 몇 명이 우리를 구석의 골방으로 부른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빵에 스프, 차까지 마련된 아침 식사.

 "어라, 뭐야 너희들? 니들은 지금 뭐 먹으면 안되잖아. 라마단인데."
 "응? 괜찮아, 괜찮아. 우리는 절반만 무슬림(half-muslim)이야. 독실한 사람들도 있지만 우린 절반만, 흐흐."

 손가락을 반만 내보이며 반-무슬림이라고 외치는 녀석들. 뭐 우리 나라에서 교회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완벽하게 규율을 지키는 건 아니지 않은가?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덕택에 라마단의 첫 아침은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차로 포식을 할 수 있었다. 녀석들, 반-무슬림이라 고맙다.

케밥

터키하면 떠오르는 건 뭐니뭐니해도 케밥. 말라타에서

넴룻 산의 거석상

 반 호수를 건너 타트반을 지나면서부터는 페이스가 떨어져 버려서 하루 평균 70~80km를 달린 후에 나오는 도시들에 숙소를 잡았다. 그렇게 라이딩 하기를 일주일, 드디어 말라타에 도착한 우리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 넴룻 산으로 향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자 론니 플래닛의 터키판 표지를 장식한 사진을 찍은 곳이 바로 넴룻 산이다.

아이들

넴룻 산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함께 있던 일행이 길 가던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하자,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정상의 양 쪽 - 동과 서- 에 세워져 있는 거석상들은 기원 전에 존재하던 고대 왕국의 왕이 세워 놓은 것이다. 신을 꿈꾸던 안티오코스 왕은 자신이 죽었을 때를 대비해 산 정상에 무덤을 만들고 그 주위에 여러 수호신상들을 세워 두었다. 원래는 몸체와 함께 있던 거대한 좌상이지만 지진이 나면서 몸체에서 머리 부분이 떨어져 지금은 커다란 두상들만 바닥에 서 있는 조금은 기괴한 모습이다. 밤이 되면 혼자 있기는 조금 무서울 정도로.

석양

석양을 받고 있는 두상들. 뒤쪽은 폐허에 가깝다

아침해

아침 해가 떠오르면 두상들도 간밤의 잠에서 깨어난다. 뒤쪽으로 원래의 몸통이 보인다

 석양을 받은 채 어둠 속으로 침잠해 가는 거석상들을 감상한 후, 정상 밑에 있는 숙소에 여장을 풀고 넴룻 산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은 새벽 4시 기상이었다. 이번엔 어제 본 석양의 반대편에서 떠오르는 햇살을 받으며 대기 속으로 떠오르는 상을 감상하는 것이다. - 산의 정상은 걸어서 10분 정도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으니, 산의 양 쪽에서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는 꼴이다.

밤

거대한 석상을 배경으로 어두워진 하늘에 달이 떴다

 말라타에서는 훈자에서 함께 지냈던 한국인 큰 누님을 우연히 다시 만나 반가운 재회를 하고 함께 넴룻 산으로 왔다. 아마 지금쯤이면 이곳에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지만 말라타에 오기 전에 연락을 하지 못한 터라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겠지 하고 있던 터였다. 오랫만에 보니 우리가 더 마르고 탔다며 그래도 건강해 보여 잘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안심하는 누님을 보니 고맙다.

 문득 훈자에서 처음 만났을 때, 누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당시 원래 네 명이던 일행이 두 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는데 여정에서 빠지게 된 두 명은 덩치도 좋고 한눈에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는 체형이었다. 그런데 - 누님의 표현에 따르자면 - 어디 집에서 컴퓨터 오락이나 하고 앉아 있을 것 같은 나머지 둘이서 여정을 계속한다니 걱정이 됐던 모양이었다. 그 말을 처음에 듣고는 어찌나 웃겼던지. 아무튼 그 오락맨 둘이 이렇게 건강히 살아 남아서 머나먼 터키 땅에서 다시 만났으니 이 또한 여행 중에 만나는 작은 연의 기쁨이었다.

 넴룻 산 일정은 보통 하룻밤을 자는 코스로 이루어지는데 말라타에서 차를 타고 정상 밑의 호텔에 여정을 푼 후 해 지는 풍경을 감상하고 다음 날 아침 다시 해 뜨는 모습을 본 후에 말라타로 돌아 오는 일정이다. 말라타 시내의 여행 안내소에서 차와 숙소를 예약할 수 있고, 원한다면 산 정상을 넘어 남쪽 카호타로 내려가는 일정을 택할 수도 있다.

넴룻사람들

새벽부터 넴룻 산에서의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스타워즈의 촬영지, 카파도키아

 터키 중남부 괴뢰메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카파도키아는 오랜 세월 비와 바람 등의 풍화 작용에 의해 형성된 거대한 기암 괴석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그 독특한 풍경 때문에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버섯 머리를 하고 있는 거대한 돌기둥들부터 구멍이 숭숭 뚫린 땅과 곳곳에 숨어 있는 동굴들까지. 이란의 칸도반이 동화 속 난쟁이들의 집처럼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면 카파도키아는 거대함에 압도 당하는 곳이었다.

카파도키아 전경

카파도키아 전경

 이곳은 워낙 세계적인 관광지이기 때문에 투어 코스도 다양하게 많이 있는데 하루 종일 전세 버스를 타고 돌아 다니며 근교의 지하 도시까지 중요 포인트들을 볼 수 있으므로 본인의 취향에 따라 잘 선택해서 관광을 하면 된다. 또 걷기를 좋아하는 여행객들을 위한 하이킹 투어도 있지만 기본적인 체력이 밑받침 되지 않는다면 상당히 힘이 든다. 그리고 괴뢰메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많이 있는데 대부분의 숙소들이 도미토리나 더블룸 형태의 동굴방을 갖추고 있으므로 특이한 경험을 원하는 여행객들은 동굴방에서의 하룻밤을 추천한다.

 카파도키아에 머물던 동안 난 하루를 근처의 재래 시장과 ATV 투어로 보낸 후에 다음 날은 여덟 시간 동안 혼자서 산책을 했다. 어느 곳이라도 걸어 가다 보면 기괴한 풍경들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방향도 목적지도 없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다음 마을 근처에 도착하기도 했는데 그럼 다시 방향을 틀어서 걸었다. 다행히 어제 했던 ATV 투어가 지리를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딱히 길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체력이 좋고 걷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카파도키아는 하이킹 여행을 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굳이 포인트를 찍어 주는 가이드가 있을 필요도 없다. 그냥 걷다 보면 길이 나오기도 하고, 또 사라지기도 하면서 방향을 잡아 가는 것이었으니까.

버섯 돌기둥

독특한 버섯 모양의 돌기둥들

괴뢰메

카파도키아의 중심 도시인 괴뢰메

 저 멀리 보이는 버섯 바위에 가기 위해 방향을 잡고 걷다 보니 야외 박물관을 지나 커다란 UFO 박물관의 표지판이 나타났다. 'UFO 박물관?' 한 눈에 보기에도 싸구려 같아 보이는 간판에는 유명한 로즈웰 외계인의 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아마 <스타워즈>도 찍고 했으니 싸구려 상술로 기획한 박물관이거나 혹은 정말 외계인의 정체를 믿는 집단이 목 좋은 곳(우주와 감응하기 좋은 곳??)이라고 세워 놓은 건지도 모르겠다.

머나 먼 이국의 보름달

 내가 카파도키아에 도착한 때는 마침 한국의 추석이었다. 이제 집을 떠나온 지도 어느덧 5개월을 넘어 가고 있으니 군대에 다녀온 거 빼고는 제일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는 거였다. 괜히 기분이 묘해진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몇 통의 전화를 걸고 마을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밤이 되고 나선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을 보기 위해 숙소 뒤편의 고지대로 올라갔다. 매년 정월과 추석이 되면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건 내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몇 년 전부터는 비는 소원이 늘 똑같아졌는데 이제는 그 소원을 계속 비는 게 왠지 부질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냥 계속 빌고 있다. 스스로 초심을 잃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보름달

먼 이국에서 마주한 보름달. 소원의 효과는 똑같으려나?

 먼 이국 땅에서 바라보는 달도 한국에서 마주하던 달과 차이가 없었다. 밝고, 둥글고, 커다란 보름달.

 "제 소원은 말 안 해도 알죠? 늘 말하던 그거요. 그럼 전 이제 내려가서 잘게요. 다음에 또 봐요."

카파도키아의 명물 - 열기구 투어

 카파도키아의 명물인 열기구 투어는 매일 동틀 녘과 해질 녘에 한 시간 정도씩 운행하는 투어인데,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 중에는 열기구 투어만을 위한 돈을 따로 모아 온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타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돈만 있으면 다시 타고 싶다고 입을 모으는데, 멀리 상공에서 카파도키아 전경을 바라보며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그 모든 것이 다 잊혀질 듯 아름답다 한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가격인데 한 번 탑승을 위한 2006년 9월 당시의 가격이 우리 돈으로 한 사람에 18만원 정도였다.

열기구 투어

카파도키아의 명물 - 열기구

열기구 투어

이른 아침, 열기구가 하나, 둘씩 떠오르고 있다

 열기구 투어를 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안은 열기구가 하늘을 가득 메우는 풍경을 보러 가는 것이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저 멀리 뜨고 지는 열기구들을 바라볼 수 있는데 많을 때는 스무 개 가까이 되는 열기구들이 풍경을 가득 채우니 그 풍경 또한 놓치기 아까운 모습이다.

 또 새로운 인기를 얻고 있는 투어 중 하나는 점점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ATV 투어이다. 한 명의 현지인 가이드가 동행하여 몇몇 중요한 포인트들을 도는 투어인데 편하게 포인트들을 다닐 수 있고, 몇몇 곳은 비교적 익스트림한 라이딩도 할 수 있다. 단, 도로에서 달릴 때에는 생각보다 꽤 빠른 속도를 내게 되므로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ATV

재미있는 여행객들과 ATV 투어를 함께 했다. 우리는 지구를 지킬까?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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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ivershigh.com BlogIcon SUPERCOOL. 2007.12.08 02:1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자전거 여행..참.. 즐거워보이네요

  2. Favicon of http://pjjk.tistory.com BlogIcon skyfish 2007.12.18 04:3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열기구 관광은 처음 봤습니다. 너무 멋져요~ 정말 한번 타 봤음 좋겠내요^^

  3. journey 2012.10.20 09:4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카파도키아...꼭한본가보고싶네여 열기구 사진 담아갑니다^^

터키에 들어 오다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터키 입국

터키 입국 기념. 저 멀리 트럭이 보이는 곳이 국경이다

 오루미예를 출발해 터키와 이란의 국경인 세로 검문소를 지나 터키에 들어 왔다. 사실 이란에서 라마단 - 이슬람력으로 아홉째 달은 아침 해가 뜬 후부터 저녁 해가 지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이슬람의 금식/금욕 기간 - 이 시작하기 전에 터키에 들어 오려고 며칠간 조금 더 피치를 올려 달려 왔다. 터키도 이슬람 국가이지만 정교 분리가 정식 정책인 국가이니 라마단 기간이라도 이란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란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시골 지역들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라마단이라도 여행자들은 예외가 되긴 하지만 실제적으로 문을 열고 음식을 파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터키 입국 후 첫날의 목적지는 국경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유세코바였다. 그런데 국경을 넘으면서 생각보다 오르막길이 많아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이후에도 포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길들이라 계속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후 세 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볼 일도 보고 싶고 슈퍼에 들러서 먹을 것도 좀 살 요량으로 길 옆에 있던 마을 안쪽으로 무작정 들어 갔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가도 가게 같은 건 보이질 않고 그냥 집들뿐이다. 호텔이라고는 당연히 없는 곳이고.

 어찌해야 할까 생각하는데 마침 마을 안쪽으로 승용차 한 대가 들어 간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시선을 교환한 우리는 운전자에게 하룻밤만 재워 줄 수 있냐고 손짓, 발짓을 해 가며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운전자가 오케이를 했다.

바키 할아버지네 집

바키 할아버지네 집.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 손녀까지 모두 한 집에 살고 있다

 알고 보니 그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이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손녀, 손자들까지 온 가족이 한 집에 함께 살고 있었다. 집 안의 어른인 바키 할아버지는 말도 제대로 안 통하고 행색도 이상하게 생긴 외국인들 두 녀석이 와서 재워 달라고 하는데도 선뜻 반겼다. 따로 방을 내주고 식사도 챙겨 주고, 또 차까지 주면서 극진한 손님 대접이다. 밤에는 쌀쌀할지 모르니 두꺼운 이불을 덮으라며 챙겨 주기까지 했다. 비록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조금 서먹서먹하긴 했지만 잘 대해 주려는 마음만은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바키 할아버지의 가족 사진

아침 식사

할아버지와 함께 한 아침 식사. 요거트, 난, 차이

 다음 날 아침, 이것 저것 대접 받은 것들이 고마워서 떠나기 전에 가족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러자 온 가족들이 들떠서 사진 찍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통에 서먹할 틈도 없다. 아이들은 어른들 손에 이끌려 열심히 꽃 단장을 하고 딸들도 예쁜 옷을 챙겨 입느라 바빴다. 러닝 차림으로 아침을 함께 했던 바키 할아버지도 어느새 말끔히 차려 입었다. 게다가 가족들뿐만이 아니었다. 밖에 나가니 할아버지의 동네 친구들 몇 분까지 사진을 찍기 위해 와 있었다.

가족 사진

할아버지네 가족과 동네 아저씨들까지 다 같이 모였다

가족 사진

할아버지와 친구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함께

 모든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사진을 찍으려 하니 프레임 안에 꽉 차는 것이 정말 대가족이다. 그것도 아들들은 다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가족들끼리 한 컷, 할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과 또 한 컷, 또 아이들과 할아버지들만 한 컷. 가족들 독사진도 찍어 주었다. 모두들 너무 즐거워하면서 사진을 찍으니 받은 만큼은 못해도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딸

인자한 표정의 할머니와 딸

할머니

조금 닮은 것 같다

손녀 딸

부끄러워 하면서도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귀여운 손녀딸

쿠르드족 양치기 청년 케난

 바키 할아버지네 집을 떠나 또 열심히 달렸지만 오늘도 목적지는 멀어만 보인다. 오후 5시가 다 되었는데 아직까지 목적지까지는 20km 정도가 남은 상황이었다. 어제의 성공에 고무되어 있던 우리는 또 민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주변을 둘러 보니 저 멀리 들판에 양떼를 몰고 가는 청년이 보인다. 좋아. '헤이~. 여기~. 우리 하루만 재워줄 수 있겠니?'

케난

케난. 내 자전거 헬멧을 쓰고 기념 사진을 찍고 싶어해서 사진을 찍어 줬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친구가 바로 양치기 청년인 케난이었다. 재워 달라는 우리의 말에 별 고민도 없이 선뜻 승낙한다. 케난이 사는 곳은 터키 동남부의 작은 마을 '오메로와'라는 곳이었다. 딱 보기에도 도시 문명과는 거리가 먼 시골 국도변의 작은 마을이었다. 우리가 케난을 따라 자전거를 끌고 그의 집으로 가는 동안 동네 꼬마 녀석들이 신기한 구경 거리가 생겼다는 듯 우리를 졸졸 따라 왔다. 녀석들 눈에는 커다란 자전거와 짐 꾸러미를 끌고 들어오는 외국인 녀석들이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다. 케난과 마을 어른들의 호통 몇 번에 쫓겨 나긴 했지만 그 동안에도 우리로부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오는 외국인이 아닐까 싶었다.

동네 청년들

우리를 보기 위해 모인 동네 청년들과 함께. 마침 정전이 되어 가스등을 켜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궁금했던 건 동네 꼬마 녀석들만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케난의 집에는 온 동네 청년들이 우리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완전히 동네 사랑방이 된 것이다. 다 같이 모여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비로소 그들이 쿠르드족임을 알았다. 알고 보니 이 마을은 쿠르드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케난네 집은 케난과 누나,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가 한 집에 살고 있었다. 케난의 어머니와 누나는 낯선 이방인들이 불쑥 찾아 갔는데도 거리끼지 않고 우리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케난네 집은 한눈에 보기에도 어려운 살림이었는데 우리 때문에 모여든 동네 청년들에게까지 식사 대접을 하느라 오히려 우리가 미안해졌다. 하지만 또 힘들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우리에게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려는 케난과 식구들의 마음은 정말 너무 고마웠다.

오메로와 마을의 동네 사진사

 다음 날 아침에도 우리는 여전히 마을의 최대 관심거리였는데, 난 아침 일찍부터 마을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준다는 명목하에 끌려 다니며 온 동네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이 집에 들어 가서 가족 사진을 찍어 주고, 또 저 집으로 옮겨서 가족 사진을 찍어 주었다. 집 공사를 하고 있던 마을 이맘 부부의 사진도 찍어 주고, 포경 수술을 하고 침대에 누워 있던 꼬맹이 녀석들의 기념 사진까지 난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다. 그날 아침 난 완전히 오메로와 마을의 동네 사진사였다.

동네의 이맘 부부

마을의 이맘 부부

그네

그네를 타던 아버지와 딸

엄마와 딸

엄마와 딸. 정말 많이 닮았다

포경 수술

포경 수술을 하고 침대에 누워 있던 두꼬마 녀석. 녀석들은 꼼짝도 않고 가만히 누워 앞에 있는 TV만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곳을 여행해 봤지만 이 곳 사람들처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처음이었다. 동부의 쿠르드족들뿐만 아니라 터키 전역에서 그랬다. 길 옆에서 땅을 파고 있던 공사장 인부도 사진을 찍어 달라 조르고, 가게에서 옷을 팔고 있던 점원도 갑자기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터키 사람들의 특성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사람들이 렌즈를 의식하지 않아 수월한 면도 있었고, 또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어 좋았다.

트럭 만물상

마을에는 만물상 트럭이 가끔씩 들어 왔다

아이들

트럭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동네 아이들

쿠르드족과 PKK

 얼마 전 터키 정부가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을 토벌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쿠르드족 문제가 또 한동안 이슈로 떠올랐었다. 흔히 쿠르드족 문제 하면 제일 먼저 사람들의 뇌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PKK(쿠르드 노동자당)이다.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벌이고 있는 단체로서 특히 터키 동부 지역에서  터키군에 대항해 오랜 투쟁을 벌여 오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바키 할아버지와 케난네 가족은 언론에서 보여 주는 쿠르드족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만난 것은 그저 우리와 똑같이 정 많고, 친절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방송에서 보여 주는 총을 들고 투쟁을 외치는 쿠르드족의 모습은 이들의 일부일 뿐 결코 전부가 될 순 없는 것이다.

 물론 바키 할아버지와 케난 모두 스스로 터키 사람이라 말하면서도 또 쿠르드족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단지 그들은 피를 보는 투쟁보다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들에게서, 또 그들이 모여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언론에 나오는 쿠르드족의 모습을 찾는 건 친절한 쿠르드족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바키 할아버지, 그리고 케난. 비록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서 많은 얘기 나누지 못했지만 잘 해주고 싶어하는 두 사람의 마음만은 정말 잘 받았어요. 오랜 여행에 지쳐 있던 내게 두 사람의 호의는 정말 큰 힘이 되었답니다. 내가 언젠가 꼭 다시 찾아 갈께요. 그때까지 두 사람 모두 건강해요.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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