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한 때는 이 작가에게 푹 빠져 있던 적이 있었다. 그녀의 신작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바로바로 주문을 하고 한동안 또 그 책에 빠져 살곤 했다. 은사자의 전설이 인상적인 <반짝반짝 빛나는>, 오이와 모자, 그리고 2의 이야기 <호텔 선인장>, 다양한 감성의 단편들로 가득한 <울 준비는 되어 있다> 등등 독특한 시선의 장, 단편들은 완전히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작품들이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빠져 있기를 한동안, 간간이 나오는 신작들만 살펴 보기 시작하다가 오랜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새 작품을 들었다. (사실 신작은 아니고 출간된 지 1년도 넘은 책이지만 이제서야 읽게 된 것이다.) "마미야 형제? 무슨 카메라 형제쯤 되나?"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든 생각이었다. 카메라 브랜드가 사람 이름으로 쓰일리야 없겠지만 내가 아는 마미야는 중형 카메라 브랜드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마미야는 間官이었다. 무엇을 뜻하려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작품은 그간 내가 좋아했던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에 미치지 못 했다. 그녀는 독특한 감성으로 인간 관계를 묘사한다던지 (<반짝반짝 빛나는>, <호텔 선인장>) 아니면 일상을 매우 차분하면서도 공감 가게 풀어 가는 (<낙하하는 저녁>)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녀의 이러한 장기들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별 볼 것 없는, 아니 그보다 못해 어찌 보면 한심하기까지 한 두 형제의 이야기. 책 속의 표현을 빌자면 마미야 형제는 "양치도, 샴푸도 게을리 하는 법이 없고, 심성도 고왔으나 실제로 그들과 면식이 있는 여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볼품 없는, 어찐지 기분 나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너저분한, 도대체 그 나이에 형제 둘이서만 사는 것도 이상하고, 몇 푼 아끼자고 매번 슈퍼마켓 저녁 할인을 기다렸다가 장을 보는, 애당초 범주 밖의, 있을 수 없는,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절대 연애 관계로는 발전할 수 없는'" 남자들이었다. 쿠즈하라 선생이 처음 형제의 집에 초대 받아 왔을 때, 테츠노부(동생)의 뒤에 나타난 아키노부(형)의 얼굴을 보는 순간 "최악이다"라고 생각했던 건 앞의 묘사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에쿠니 가오리는 남들이 판단하는 형제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며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려고 했다. 이 두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지나고 보면 즐거웠다고 느껴지는, 가슴 한 켠을 작게 차지하고 있는 즐거운 추억 같은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던 그 시간에는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돌이켜 보면 분명히 즐거웠던 것이다. 나오미와 쿠즈하라 선생이 형제의 두 번째 초대를 받아들인 것도 형제와의 시간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형제는 한 눈에 사람들을 매료 시키는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있어 보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오오가키와 미요코가 아키노부와 함께 편히 어울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을 것이고 유미가 테츠노부의 학교로 찾아 갔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이는 작가가 독자들에게 (우리가 일반적으로는 보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형제의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며)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삶도 있다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지만 스스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이런 모습도 있다고.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야기가 아마 그쯤에서 끝났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테츠노부의 행동 - (형의 회사 동료의 부인이자 바람 난 남편 문제로 힘들어 하고 있는) 오오가키 사오리를 (혼자서만) 좋아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그 모습은 최악이었다. 도저히 공감하려 해도 공감할 수가 없다. 그건 정말로 덜 큰, 도저히 생각을 어떻게 하고 사는 건지 알 수 없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아키노부는 좀 나았다. 나오미한테 고백하고 차일지언정, 혼자만 상상 속의 연인을 만들지언정 적어도 상대를 힘들게 하지는 않으니까.

 아, 그래도 좋아하는 가오리의 작품이라 좋은 얘기를 해 볼까 했는데 쓰다 보니까 바보 같은 동생 녀석 때문에 화가 나 버렸다. 나, 참...... 어쨌든 여전히 난 가오리의 팬이다. 앞으로 또 그녀의 책이 번역 되어 나오면 언젠가는 사서 읽어볼 테니까.

덧. 이번 책은 신유희씨가 번역을 했다. 그동안 소담에서 번역, 출간된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은 거의 김난주 씨가 번역했고 일부만 신유희씨가 번역을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신유희씨의 번역 횟수가 더 잦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김난주씨의 번역이 더 마음에 드는데 이게 서로 다른 책이라도 뭔가 차이가 느껴진다. 확실히 번역도 문학적 작업의 하나란 생각이 들어서 원작과 제대로 교감을 한 후에야 이루어지는 번역이 더 그 맛을 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신유희씨의 번역에서 비문이라든가 어색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뭔가 미묘한 부분이 부족하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들긴 하지만.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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