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TeamLog Blue2Sky에 쓴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Good

굿' 바이. 2008.

 좋은 영화는 화룡정점, 즉 잘 짜여진 전개 과정을 거쳐 완벽한 클라이맥스로 정점을 찍음으로써 탄생할 수 있다. 또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한 것처럼, 이야기(구슬)들을 잘 꿰어서 좋은 영화(보배)를 탄생 시킬 수도 있다. 일본 영화 <굿' 바이(Good & Bye)>는 바로 후자에 속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30대 주인공의 성장과 자아 찾기,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 얽혀진 운명과 인연 등이 적당히 버무려져 있다. 그래서 딱히 30대의 성장 영화라 하기도 뭐하고, 따뜻한 가족 영화라 정의 내리기도 힘들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무언가가 이 영화에는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아우름을 통해서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를 무리 없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고바야시(주인공)는 그럭저럭한 재능의 첼리스트이기에 음악적으로 대성한 것도 아니며 엎친 데 덥친 격으로 힘들게 들어간 오케스트라는 해체 되고 만다. 그래서 결국 귀향 - 어쩌면 낙향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겠다. - 한 그가 선택한 직업은 여행사인 줄 착각하고 찾아간 에이전트에서의 염습사이다. 사실 주인공은 이 일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일 자체에 대한 귀천 의식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단지 그에게는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랬던 그가 계속 일을 하는 와중에 사장님의 염습에 대한 태도, -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사장은 일종의 통달한 도인의 모습이다. - 염을 마친 후에 사자의 가족들이 보여 주는 모습 등을 보면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일종의 깨달음을 얻어 간다. 영화의 첫 장면(이자 중간의 이음 장면)에서 눈보라 휘날리는 시골길을 운전해 가면서 "고단한 나날들이었다."라고 되뇌이는 주인공의 독백은 바로 지난 시간을 겪으면서 성장한 주인공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실 염습사(전문 납관사)라는 직업이 일본에 실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 뇌리 속에 남아 있는 염의 기억이라면 외할머니가 돌아 가셨을 때, 영등포 구석에 있던 한 병원의 지하실에서 이루어졌던 딱 한 번 뿐이다. 차가운 철제 침대와 축축한 지하실의 공기가 우리를 둘러 싸고 있었고, 염을 하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이상이라는 경의는 보여 주지 않았다. 아마 일본에 실제로 이런 직업이 있다면 그 모습은 마지막에 주인공의 아버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왔던 사람들의 모습 - 염이나 시신 수습을 단지 귀찮고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로 치부해 버리는 - 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다르다. 고바야시(주인공)와 사장이 염을 할 때 경의를 표하는 자세와 그들의 정갈한 태도, 그리고 조심스러운 마음 등이 돌아 가신 분의 마지막을 지켜 주는 일로써의 염의 숭고함을 보여 준다. 그렇기에 관객은 그 일에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으며, 때로는 정점에 달한 염의 과정이 아름답게까지 비춰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주인공의 친구(목욕탕집 할머니의 아들)와 부인(히로스에 료코)이 주인공을 이해하고 쌓여 있던 갈등을 해소하는 밑바탕이 된다. 물론 돌아 가신 친구의 어머니를 주인공이 직접 모신다는 에피소드가 있었기에 화해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전까지 염습이라는 일에 대한 영화의 아름다운 - 혹은 고결한 - 표현이 없었다면 이는 조금 뜬금 없는 화해가 됐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바로 영화의 엔딩이었다. 주인공 평생의 트라우마였던 집 나간 아버지에 대한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엔딩 장면은 아주 시의적절하며 적당했다. 더 과하게 나아가지도 않았고, 덜 나아가지도 않았다. 딱 거기까지였으며 그 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특히 아버지가 남긴 편지가 배 속의 아기에게 전달되는 장면은 참 감동적이다. (더 자세히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테니 여기까지만 하자.)
 
 눈 쌓인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골 마을의 풍광, 그 풍광을 등지고 이뤄지는 주인공의 첼로 연주 장면은 이 영화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요인이다. 더불어 죽은 문어 이야기,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등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는 작은 에피소드들은 큰 구슬들 사이를 이어 주는 작은 구슬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 주었다.

 <굿' 바이(Good & Bye)>는 인터넷의 높은 평점이 아깝지 않은, 올 가을 당신의 가슴이 따뜻해질 것이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하지 않은 2008년의 수작이다. 아마 그리고 앞으로도 오랜 시간동안 2008년 하면 떠오를,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이 될 것이다.

 - 인상 깊었던 대사 : 화장장 일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하는 대사, "죽음은 문이다." 즉, 죽음은 막다를 골목이 아니라 단지 누구나가 열고 통과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라고 할까. 죽을을 끝이 아닌 인생 과정의 하나로 보는 그 표현이 참 좋았다.

 - 인상 깊었던 장면 : 부패한 시신을 수습하는 첫 일을 마치고 돌아 온 고바야시가 날고기를 보고 헛구역질을 하다가 부인을 탐하려 하는 장면. 아마 그가 부인을 탐하려 했던 것은 스스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어서였을 것 같다. 살아 있음에 대한 갈구 같은 것이다. 어쩌면 주인공은 섹스를 통해 그것을 느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덧. 주인공의 부인 역할을 맡았던 료코는 조금씩 얼굴에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녀도 세월의 흐름을 피해갈 수는 없는가 보다.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도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하다. 연기도 좋았다. 너무 이해심이 많다고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으니까 마음에 든다.

 덧 2. 최근에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극장에서 일어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 장면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복잡하게 영화의 장면들이나 엔딩 후의 이야기들을 담지 않고 단지 검은 색 배경에 주인공이 정갈하게 염을 하는 장면만을 담아 놓았다. 여유 있으시면 (이 대사,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김광석이 떠오른다.) 끝까지 남아서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보시기를. 음악도 좋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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