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코람 하이웨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

카라코람 하이웨이. 중국. 어디선가 나타난 낙타 세 마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별칭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카슈가를 떠난 후로부터 만나는 풍경들은 과연 왜 이곳이 그런 이름을 얻었는지를 수긍하게 만드는 것들뿐이었으니까. 황토빛 바위산들 사이로 멀리 보이는 설산들, 깎아 지른 듯한 산세에 회색빛과 황토빛이 어우러진 산들과 그 옆을 흐르는 잿빛 강물, 넓은 대지 위에 구름이 드리우는 그림자까지 모두 환상적인 절경이었다.

카라쿨 호수

무즈타가트가 비치는 카라쿨 호수에서.

 카슈가르를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 무즈타가트가 아름답게 비치기로 유명한 카라쿨 호수에 도착했다. 우리는 호수 끝자락에 자리한 키르기즈스탄들의 천막을 빌려 하룻밤을 지냈는데 이는 손님이 오면 평소 자신들의 살림집인 천막을 내어 주고 자신들은 다른 천막에 가서 잠을 자는 형태였다. 카라쿨에서는 카슈가르를 떠나던 날 만난 스페인의 라이딩 팀과 함께였는데 우리는 각 4명씩의 사람 수를 생각해서 2개의 천막을 모두 빌리기로 했고, 천막 주인 아저씨는 자신들은 근처에 있는 다른 천막에 가서 잘 꺼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밤이 되자 애를 안은 아주머니부터 시작해서 주인 아저씨와 다른 가족들까지 천막으로 슬금슬금 들어오기 시작한다. 흠, 조금 이상한데. 아저씨, 다른 데서 잔다고 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그럴 꺼란다. 그리고 가족들이 다시 나갔는데, 다음날 얘기를 들어보니 바로 옆에 있던 스페인 팀의 천막에서 온 가족들이 다 같이 잤단다. 족히 예닐곱명은 됐었는데... 처음부터 천막은 두 개 밖에 없었고 이들은 애초부터 여기서 같이 잘 생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다른 곳에 또 천막이 있는 줄만 알고 있었던 것이고. 덕분에 고산 증세를 보이던 인원까지 있던 스페인 팀은 밤새 애기들 보채는 소리에 뒤척이면서 잠을 자야 했다.

시멘트 구조물

카슈가르를 떠난 첫 날. 버려진 시멘트 구조물에서 잠을 청했다. 문도, 창문도 없지만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마웠던 곳.


 개인적으로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여행하게 된다면 꼭 자신의 의지로 가고 멈출 수 있는 수단을 택하기를 권한다. 그것이 자전거가 됐든, 차가 됐든, 오토바이가 됐든간에. 쉬지 않고 정해진 노선을 따라가는 대중 교통 수단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수단이면 좋을 것이다.

펠릭스 아저씨

같이 라이딩을 하던 스페인의 펠릭스 아저씨와 정헌이 형.


시속 63km

 카라쿨 호수로 들어가던 날, 계속된 오르막길이 끝나고 시원하게 내리 꽂는 내리막길이 펼쳐졌다. 그렇지만 난 내리막에서 속도를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적당히 브레이크를 잡아 주면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커브길을 꺾으면서 한떼의 사람들이 길 옆에서 노점을 펼쳐 놓고 있는 걸 갑자기 마주치게 되었다. 상당히 휑한 곳에 사람들이 있네라고 생각한 바로 그때였다. 자전거가 균형을 잃은 것이 느껴졌다.

 "큰일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 이미 자전거는 넘어지고 나는 앞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 이것이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는 것이구나. 공중에 떠 있는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휘감았고 동시에 아스팔트 바닥에 쭉 쓸리면서 몇바퀴를 굴렀다.

 한동안은 너무 놀라서 그저 소리만 질러댔다. 어디를 다쳤는지도 모르겠고 일어날 정신조차 없었다. 이때 옆에서 노점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나에게 몰려 와 넘어진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길 한쪽으로 놓고 나를 부축해 주었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살펴 보니 몸이 말이 아니다. 입고 있던 옷은 전부 다 찢어져 있고 찢어진 옷 틈으로는 피가 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당장 카슈가르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한다며 차를 가지고 오려 했지만 난 일행들이 이미 앞에 가고 있어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계속 안된다고 했지만 괜찮다며 잠시 앉아 정신을 더 차린 후에 이번엔 자전거를 살펴 보았다. 천만 다행히도 자전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사람들

넘어진 나를 도와 주고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여전히 걱정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신기한 얼굴로 몰려 들어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에 다시 천천히 페달을 굴렸다. 이날 저녁은 호수 옆의 천막에서 잤기에 마땅한 치료도 하지 않고 그저 호수의 물을 조금 떠 와 상처 부위만 깨끗이 씻어 냈는데, 나중에 자전거의 속도계를 확인해 보니 시속 63km가 찍혀 있었다. 아, 정말 죽을 뻔 했구나.

 이 사고 이후 한동안은 잔뜩 위축되어서 내리막길에서도 늘 시속 25km를 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나중에는 다시 한 40km 대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 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쿤제랍 패스를 넘다

타쉬쿠르간

타쉬쿠르간의 무너진 옛 성터.

 3일째 되는 날 중국 측의 마지막 국경 도시인 타쉬쿠르간에 도착했다. 위구르어로 '바위 요새'라는 뜻의 이 도시는 분위기 있는 옛 성터와 아담한 가로수길이 무척 마음에 드는 곳이었는데 카슈가르에서 출발하는 버스도 이곳에서 하루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국경을 넘었다. 카슈가를 출발한 첫날은 버려진 시멘트 구조물에서 잠을 청했고, 어제는 천막에서 잤으니 우리에게는 며칠만에 제대로 된 숙소에서 씻고 휴식을 취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타쉬쿠르간

타쉬쿠르간 주변의 한적해 보이던 풍경. 이 풍경의 진실은? 저 멀리 보이는 천막에서 굉장히 시끄러운 댄스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는 것.


 타쉬쿠르간에서 파키스탄의 소스트까지는 중국 측의 통제에 의해 오직 차량으로만 통행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쿤제랍 패스를 넘게 되었는데 해발 4,600m가 넘는 지점에 위치한 쿤제랍 패스는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선이자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정점이 되는 곳이다. 버스는 정상에서 한숨을 돌릴 겸 잠시 휴식 시간을 주었는데 쿤제랍 패스의 정상에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건설하면서 숨진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국경을 표시하는 비석과 함께 서 있었다.
 
위령비

"Tribute to the Pioneers..."에게로 시작하는 위령비.

 이 곳 사람들이 세계 8대 불가사의의 하나라고 자칭하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총 공사 기간만 이십 년이 넘고 험한 건설 환경으로 인해 숨진 건설 노동자들만 수백명에 달했는데 정확히는 중국의 카슈가르부터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까지 연결되는 약 1,300km의 도로를 일컫는다. 그 중에서도 쿤제랍 패스는 피의 골짜기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험난한 곳으로 매년 겨울 기간에는 눈 등으로 인한 위험 요소에 의해 통행이 금지되고 5월에서 10월 15일까지만 통행이 가능하며 이 기간에는 국경을 왕래하는 버스가 매일 있다.

 현재의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중요한 연결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겨울에는 사용이 불가능하고 왕복 2차선뿐인 도로로 인해 그 효용성이 높지 않다. 이에 따라 중국과 파키스탄 정부는 2006년부터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확장하기 위한 공사에 착수해 현재의 수용량을 세 배 이상으로 늘리기로 합의하였고, 중간중간에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카리마바드, 고대 훈자 왕국의 수도
 
카라코람 하이웨이.

카라코람 하이웨이. 파키스탄.

 파키스탄 쪽으로 넘어 오면서부터는 길 옆의 풍경들이 중국과는 사뭇 달라졌는데, 중국의 풍경이 넓고 웅장한 느낌이었다면 파키스탄 쪽은 거대한 협곡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달리는 형국이라서 그 풍경이 상당히 거친 느낌이었다. 협곡의 아래로는 산 위의 빙하가 녹아 내린 강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쟂빛 강물과 깎아지른 협곡, 그리고 뒤쪽의 눈 쌓인 봉우리들이 이루는 풍경은 묘하게 마음이 끌리는 풍경이었다.

소스트

소스트에서 보낸 첫날 밤.

 소스트에서 파키스탄의 첫 밤을 보낸 후 도착한 카리마바드에서는 오랜만에 일주일간의 길고도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낮에는 창 밖으로 보이는 설산을 바라 보면서 사랑하는 친구에게 엽서를 쓰거나 차를 마시고, 배가 고프면 숙소 근처에 맛있는 호두 케잌을 팔던 가게로 가서 차와 함께 비치된 사진집들을 감상하면서 배를 채웠다. 그러다가 또 심심해지면 산 위의 발티트 포트까지 올라가서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을을 감상하고, 동네의 가게들에서 가짜 마니스톤을 가지고 흥정을 하거나 여러 전통 제품들을 구경하면서 놀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숙소의 정원에 앉아 달빛에 비치는 설산을 바라 보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여행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일기를 쓰기도 했다.

 유라시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여행자들을 빨아 들이는 3대 블랙홀이라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기억에 의하면 이집트의 어느 도시와 터키의 카파도키아, 그리고 한 곳이 바로 이 훈자 지역이다. 내가 머무를 때도 이미 이곳에서만 석달이 넘게 있었다는 일본인 여행자도 있었는데, 내게도 앞으로 가야할 목적지만 없다면 한동안 눌러 앉아  지내고 싶은 곳이었다.

카리마바드

카리마바드의 숙소에서 바라 보이던 풍경. 저 뒤로 보이는 설산들이 7,000m가 넘는다.


 파키스탄 북동쪽에 위치한 훈자 지역은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곳인데, 카리마바드는 옛 훈자 왕국의 수도로서 이 지역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카리마바드 주변에는 7,000m가 넘는 고봉들이 병풍처럼 이곳을 둘러 싸고 있는데 이곳에서 산 중턱의 베이스 캠프까지 트레킹을 갈 수도 있다. 훈자 지역은 파키스탄 내에서도 특히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 중의 하나인데, 내가 있던 숙소 주인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2001년 9.11 테러 이후로 한동안은 정말 개미 새끼 한 마리 볼 수 없을 정도로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겼다 한다. 그나마 최근 2~3년 새에 조금씩 다시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예전만큼은 못하다고. 그리고 또 훈자 지역에서는 파키스탄 내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술을 살 수가 있는데, 이슬람의 교리에 따라 금주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이곳만은 몇 년 전부터 허용이 되어 중국산 맥주를 가게에서 살 수가 있다.
 
할아버지

훈자에는 한국 여행객들도 많이 오는데, 한국인들이 특히 많이 가는 한 숙소의 주인 할아버지는 자신을 "I'm 할아버지"라고 소개했다.


양귀비 꽃

양귀비 꽃. 이 근처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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