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돌팔매질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파키스탄 내의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그 중에서도 특히 자전거 여행자들에게는 아이들의 돌팔매질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열악한 교육과 생활 환경 속에서 이 곳에서는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었고, 그 아이들이 지나가는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어서 자주 돌팔매질을 당했는데 단순히 아이들의 호기심이나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때로 너무 큰 돌들이 날아 오기도 하고, 내리막길에서는 위험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어서 가볍게 웃어 넘길 수가 없었다. 가끔은 자전거를 세우고 아이들을 쫓아가 혼내 보았지만 그것도 뒤돌아 서는 순간 그만이었고, 아이들 근처에 있던 마을의 어른들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두 손을 들며 미안하다고만 할 뿐 자신들도 어찌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루는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숙소와 함께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식당 밖에 세워진 자전거를 본 동네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우리가 식사를 다 마칠 즈음에는 열 댓 명의 아이들이 몰려 와 있었다. 우리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식당 주인 아저씨가 나가서 쫓아내 봐도 그뿐, 금세 다시 주변에 모여들어 호시탐탐 우리가 나오기만을 노리고 있으니 이때의 아이들은 정말 한 무리의 짐승 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근처의 경찰서에 전화해 에스코트를 요청했는데, 이곳의 경찰들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아마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나니 늘 해보던 일이었나 보다. 다행히 경찰이 오니 아이들은 사라졌고,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의 소굴을 빠져 나와 무사히 다음 도시로 향할 수 있었다.

스페인 팀

카리마바드에서 헤어졌던 스페인 팀을 칠라스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왼쪽부터 아구스틴 아저씨, 펠릭스 아저씨, 아돌프, 영호형.


사고를 당하다

 카리마바드를 출발한 지 4일째, 한창 해가 쨍쨍한 한 낮의 7월 어느 날, 함께 라이딩을 하던 일행과 조금 거리가 멀어져 열심히 쫓아 가고 있을 때였다. 저 앞에서 자전거가 넘어진 채로 잔뜩 화가 난 채, 약간 피가 나는 손을 수건으로 붙들어 매고 있는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길 바로 옆에 세워져 있던 경운기 위에서 일을 하고 있던 왠 녀석이 다가오는 자전거를 향해 삽을 휘두른 모양이다. 일행은 삽은 간신히 피했지만 약간의 내리막길이었기에 어느 정도 속력이 붙어 있었던 터라 자전거가 넘어지고 부상까지 당했다.

 내 일행은 잔뜩 화가 나서 길 옆에 있던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그 녀석을 찾기 위해 돌아 다녔지만, 이미 녀석은 어디론가 숨어 버린 후였고 마을 사람들만 구경 거리가 났나 하며 몰려 들었다. 결국 우리는 경찰에 신고를 할 요량으로 지나가던 봉고 한 대를 멈춰 세우고 잠시 휴대폰을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헌데 영어를 좀 할 줄 알던 봉고차 운전수가 차에서 내려 우리의 사정을 듣더니 경찰에 신고해 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라며 우리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사정을 듣더니 자기도 미안하지만 삽을 휘두른 범인을 찾을 수는 없을 거라며 다시 한번 우리를 말렸다.

 딱히 계속 화를 내고 있어 봐야 뾰족한 수도 없었고, 당장 이 곳에서 머물 곳도 없었기에 우리는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일행이 너무 흥분한 상태인데다 다치기까지 해서 이 앞의 도시까지만 우리를 태워다 달라고 부탁하니 그는 흔쾌히 오케이를 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는 우리가 괜찮다면 자기 집에 와서 하룻밤을 묶어 가도 좋다며 우리를 초대 했는데, 어차피 이 앞 도시의 호텔에서 하루를 묶을 예정이었던 우리는 그의 호의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만세하라의 라시드

 우리를 초대해 준 라시드는 32살로 작은 운송 회사를 운영하고, 변호사 일도 하고 있었는데 한 달 평균 수입이 US 달러로 2~3,000 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파키스탄에서는 꽤 부유한 편에 속하는 것 같았다. 그저 시내 근교의 작은 집이겠거니 생각했던 그의 집도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에 따로 손님방까지 갖춘 저택이었다. 라시드는 우리에게 식사도 대접하고 같이 얘기도 나누면서 우리가 사고를 당한 것이 마치 자기의 탓인 것처럼 미안해 하고 우리가 이해해 달라고 사과를 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도 특히 이쪽 북쪽 지역은 생활 환경도 열악하고 교육 수준도 낮아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적대적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외국인은 적으로 알고 있을 정도라고. 그러니 어찌 보면 우리가 그만한 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만약에 그 마을에서 계속 마을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다면 오히려 더 큰 일이 났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라시드네 집.

라시드네 집.


 밤이 되어서는 정원에 앉아서 간식거리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그가 우리에게 혹시 술을 마시고 싶냐고 물어 보았다.

 "응? 무슬림이 술을 마셔?"

 라시드는 웃으면서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못 마시는 것이지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안 마시는 경우가 전부 다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원한다면 안에 있는 위스키를 가져다 주겠다고 한다. 난 라시드의 이 말을 들으면서 종교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슬람이라는건 도대체 어떤 것일까. 사실 우리 나라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고, 성경의 모든 가르침에 신실한 것은 아니듯이 무슬림들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이란에서 더 생각해 본 문제지만 종교라는 것이 없는 자들에게는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한 구실이 될 수도 있지만, 있는 자들에게는 때로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종교란 건 필요할 때만 자신을 치장해 주는 도구일지도 몰랐다.

라시드네 집.

밤에는 정원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초를 켜 놓은 이유는 정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라시드의 집에서 하루를 묶고 만세하라를 떠나는 날 아침에는 라시드의 가족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핑계(??)로 우리는 그의 부인도 만나볼 수 있었다. 무슬림들이 외부인에게 자신을 부인을 보여 주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는데, 이러한 관습은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지역적 가르침에 의한 것이 크다고 한다. 여튼 가족 사진을 찍어 주면서 만난 그의 부인은 우리가 한다는 여행에 흥미를 갖고 나중에 우리의 여행 사진을 더 볼 수 있는지를 궁금해 했다. 그런 것을 보니 관습에 따라 베일 속에 가린 채 생활이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지만 알고 보면 그저 바깥 세상이 궁금한,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지 싶었다.

라시드네 가족 사진.

라시드네 가족 사진. 라시드, 부인, 하산, 후세인. 큰 딸 마하는 학교에 가서 보이질 않았다.

마하, 하산.

마하와 하산.


 라시드는 하인 가족도 따로 두고 있었는데 - 라시드는 그들을 서번트(servant)라고 지칭했다. -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젊은이 2명, 그리고 어린 여자 아이 한 명까지 모두 여섯 명으로 라시드는 그들에게 한 달에 50달러를 준다고 했다. 라시드의 여덟 살 난 큰 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던 하인 가족의 막내딸인 화드만은 라시드네 아이들과 잘 뛰어 다니면서 놀다가도 주인이나 다른 어른들이 부르면 즉시 달려가서 심부름을 했다. 또 우리가 떠나는 날 아침에 라시드의 딸 마하는 학교에 가서 보이질 않았는데, 화드만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좋질 않았다. 하지만 그뿐 나로선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냥 내게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여섯 가족이 한 달에 50달러를 받으면서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생활해야 하다니.

 아직까지 파키스탄은 빈부 격차와 교육 수준 등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이런 계급의 차이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이슬람의 율법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평등하지만, 이슬람 사회 내에도 힌두교처럼 계급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이슬람국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도 그러한 계급 차별이 존재한다고 한다.) 파키스탄에서는 이름의 성으로도 그 사람의 신분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는데 때로 도시의 고급 식당이나 매장 같은 경우에는 고객의 신분을 보고 입장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파키스탄은 아직 신분적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인 것이다.

화드만

라시드네 집에서 일을 하던 화드만. 라시드의 큰 딸 마하가 학교에 갔을 때, 화드만은 여전히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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