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 되어 가는 유적지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하라파 유적지

파괴 되어 가는 하라파 유적지

 하루를 지내고 출발하기로 했던 사히왈에서 일행의 몸 상태가 좋질 않아 하루를 더 쉬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날은 우리가 머물던 인더스 호텔 주인 아저씨와 그 친구와 함께 인더스 문명의 주요 유적지 중 한 곳이라는 인근의 하라파 유적지에 다녀 왔다. 하지만 인더스 문명의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유적지는 그 보존 상태가 엉망이었는데 유물을 전시해 놓은 유적지 내의 작은 박물관은 거의 시장판 수준의 전시 상태를 보여 주었고, 유적지 내 한 쪽에는 집이 없는 빈민들이 살면서 그 안에서 구걸을 하고 돌아 다니고 있어서 과연 이 곳이 제대로 보존될 수 있을런지 심히 의심스러운 지경이었다. 또 이미 영국 식민지 시절에 당시 사람들이 집을 짓는 데 사용하기 위해 유적지의 벽돌이나 흙 등을 가져 가면서 많이 파괴가 되었단다. 세계 문명 발상지의 하나로 꼽히는 인더스 문명을 알기 위한 중요한 자료인데 이런 식으로 파괴가 되고 있다니 안타까웠다. 얼마 전에는 파키스탄 북쪽 탈레반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에서 무장 세력들이 오래된 석불을 폭파 시키려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기사도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파키스탄의 국력이 문화 유적의 보존과 관련한 문제들을 신경 쓰기에는 많이 부족한가 보다.

도요타

호텔 주인 아저씨의 75년산 도요타 짚차를 타고 유적지에 다녀 왔다. 돌아 오는 길에는 짚차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하는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총알 목걸이

미안 찬누에 들어 오던 날 길에서 만난 경찰 아저씨. 가지고 있던 진짜 총알로 만든 목걸이를 내가 마음에 들어 하자 선물로 주었다.


미안 찬누의 라시드 아저씨

 사히왈에서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한 오후엔 미안 찬누에 도착했다. 미안 찬누에서는 경찰서의 소개로 샬리마르 호텔에 갔는데, 호텔 겸 식당의 주인인 라시드 아저씨는 자전거 여행을 하는 우리를 무척이나 반겨 주었다. 자기가 랜스 암스트롱과 뚜르 드 프랑스의 열렬한 팬이라면서 자신의 호텔에 오는 자전거 여행자들은 머물고 싶을 때까지 마음껏 무료로 머물 수 있다고 하셨다. 주인 아저씨는 방뿐만 아니라 식사까지도 무료로 주려 하셨는데 우리가 그것까지는 차마 미안해서 받지를 못했다. 그래도 작은 지방 도시에서 이런 행운을 만나다니 암스트롱한테 조금은 빚을 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주인 아저씨의 환대를 받고 편한 마음으로 쉬고 있던 것도 잠시뿐, 나는 밤새 계속된 설사로 화장실을 들락 날락 거리면서 온 몸의 진이 다 빠져 버렸다. 페샤와르에서부터 계속 되던 설사를 그냥 단순한 물갈이이겠거니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미안 찬누에서는 물 한 잔만 마셔도 바로 탈이 날 정도로 상태가 악화 되어서 뭐든 먹을 수조차 없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야만 했다.

 그런데 이 지방 도시의 병원이란 것이 너무 열악해서 병원 건물에 들어 서는 순간 내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다시 숙소로 가서 쉬고 싶다는 것이었다. 무더운 날씨에 에어컨은 커녕 천장에 붙어 있는 몇 대의 선풍기조차 전기가 나가서 작동하질 않았고, 병실이라고 하는 것도 그냥 텅 빈 방에 딱딱한 침대 몇 개 가져다 놓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따로 진찰실이랄 것도 없어서 의사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내게 와서 대강 증상 설명을 듣고 링겔을 처방해 주었는데, 링겔을 맞고 잠이 들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라시드 아저씨

미안 찬누 샬리마르 호텔의 라시드 아저씨(왼쪽)와 그 친구분. 내가 아플 때 그토록 많이 챙겨 주었던 아저씨의 친절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몸이 아프면서 주인 아저씨가 더 고마웠던 건 내가 많이 아프니까 친구를 소개해 주어 병원까지 데려다 주고, 또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아저씨는 따로 문병을 와서 상태를 보고 가시기까지 하셨다는 것이다. 게다가 링겔을 다 맞고 숙소로 돌아 갔을 때 아저씨는 집의 부인에게 부탁해 내가 따로 먹을 닭고기 죽을 만들어서 가져다 주었다. 외딴 타지에서 몸이 아파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지쳐 있던 나에게 아저씨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시니 너무나 고마웠다.

삼부 토건의 고선홍 소장님

고선홍 소장님

파키스탄 카네왈 삼부 토건 사무소의 고선홍 소장님.

 두 번째로 만난 고마운 인연은 미안 찬누 근처의 카네왈에서였다. 우리는 내 몸의 상태가 많이 좋질 않아서 미안 찬누에서 물탄으로 가는 차량을 수배하기로 결정을 했다. 처음에는 경찰서에 도움을 청하러 갔으나 그쪽에서는 딱히 시큰둥한 반응 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라시드 아저씨가 근처 카네왈에 한국 건설 회사의 사무소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한국인 직원들도 있고 말이 통하니까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일행을 카네왈의 사무소까지 태워다 주었다.

 그렇게 일행이 막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마침 일을 보기 위해 사무소를 빠져 나가고 있던 고선홍 소장님을 만날 수 있었는데 아마 그때 서로 지나쳤더라면 만나지 못했을테니 그것도 인연인지도 몰랐다. 일행에게 우리의 사정을 들으신 소장님은 흔쾌히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겠다 하시고, 아픈 나를 위해 미안 찬누에서 카네왈의 사무소까지 차로 데려가 주시고 에어컨이 딸린 숙소에 전속 요리사가 만든 한국 음식과 김치까지 대접해 주셨다.

 파키스탄의 사무소에서만 십 년이 훌쩍 넘게 근무 중이신 소장님은 이제 이곳에 완전히 자리를 잡으신 파키스탄 통이었는데 얼마 전에는 한국에 있던 가족들까지 전부 불러 들여 가족들이 모두 같이 살고 있었다. 요리사가 해 준 맛난 한국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신선한 과일까지 얻어 먹어 기운을 차린 우리는 소장님, 사모님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소장님이 네팔에서 근무할 때 만나신 인도인 사모님은 한국에서 오래 사셔서 그런지 말씀하시는 것이 완전 한국 아줌마였는데 소장님의 자녀들 얘기부터 시작해서 살아 오셨던 이야기도 듣고, 또 우리들 여행까지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서로 반가워 많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가족

소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아이들. 사무소 마당 한 켠 그네에서.


 나중에 알고 보니 카네왈의 삼부 토건 사무소는 파키스탄을 여행하는 한국 여행자들에게 제법 알려진 모양이었는데 근처를 지나 가던 여행자들이 도움을 받으면서 입 소문이 퍼졌고, 한번은 선교를 왔던 단체 손님들까지 찾아 와서 묵어 가기도 했던 적이 있었단다.

9.11 이후의 부동산 폭등과 파키스탄의 기독교 차별에 관해

 소장님에게 들은 얘기 중에 파키스탄과 관련해 흥미 있던 것은 9.11 이후 파키스탄의 부동산 시장 폭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9.11 이후 미국으로 들어가기 힘들어진 아랍권의 자본이 같은 이슬람권인 파키스탄 등지로 몰려 들면서 테러 이전 한국의 집 한 채 가격이면 너끈히 구할 수 있던 집 값이 폭등해 이제는 서울의 집 한 채로는 라호르의 괜찮은 집은 구경도 못 할 정도로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는데 테러 직전에 파키스탄에 근무하던 한 한국 업체의 파견 직원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당시 서울에 있던 집을 처분하고 라호르에 집을 한 채 구했단다. 집 값의 차익을 노린 것이라기보다는 파키스탄에 아예 터를 잡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9.11이 터지면서 오른 집 값으로 또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었고 덕택에 그는 이제 몇 채의 집을 가진 부호가 되었단다. 그런 것이 사람 운이라는 것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참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소장님이 데리고 계신 파키스탄인 요리사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라호르의 한국 식당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해서 제법 한국 음식 솜씨가 좋은 그는 이슬람권에서는 만나기 힘든 기독교인이었다. 물론 파키스탄에서 공식적으로 종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진 않지만 기독교인은 아무래도 사회적 소수자이기 때문에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하는 등의 기본적인 사회 생활에 있어서 차별과 제약이 많이 따른다고 한다. 이 곳 사무소의 요리사도 음식 솜씨도 좋고 사람도 성실했지만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직장을 구하지도 못하고 하고 있는 것을 소장님이 사람을 보고 데려와 숙소도 제공하면서 데리고 있는 것이었다.

 혹 이런 사례를 보고 기독교를 홀대하는 이슬람이라고 흥분할 사람들이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례가 비단 이슬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많은 종교들에서 참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바로 이런 점이다.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과 이해의 부족.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의식에서 드러난 문제도 바로 이런 점이었다. 다른 종교를 믿진 않더라도, 배척하지는 않는 정도의 관용만 가져도 지금 여러 문제가 되고 있는 종교적 갈등은 훨씬 줄어 들텐데 지금의 종교인들에겐 그게 너무 없지 않나 싶다.

발루치스탄을 지나다

 카네왈에서 푹 휴식을 취한 후에 사무소의 트럭을 타고 소장님의 소개로 미리 예약해 둔 물탄의 숙소로 왔다. 이제 우리가 지나가야 할 곳은 발루치스탄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제일 걱정이 되던 지역이고 이곳 파키스탄에 들어와서도 제일 많이 조언을 들은 곳이었다. 발루치스탄은 아프가니스탄, 이란과 바로 국경을 접하고 있고 정부에 대항하는 종족 갈등으로 많은 폭동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여 치안이 굉장히 불안한 곳이었다. 혹자는 그곳 근처를 지나가는 기차를 타게 되면 잠깐씩 서는 역이라도 절대 내릴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고, 또 퀘타에서 십년 넘게 근무했다던 경찰은 자신도 경찰이지만 그곳만큼 무법 천지인 곳은 처음 봤다며 겁을 잔뜩 주니 우리는 그 근처인 물탄에만 와서도 이미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결국 우리는 물탄에서 퀘타까지 기차를 이용한 후에 퀘타에서 이란 국경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물탄 마우솔레움

물탄에서 휴식을 취하던 저녁, 시내의 마우솔레움에 다녀왔다.


 물탄에서는 다시 한 번 소장님의 도움으로 기차표를 예매하고 하루의 휴식을 취했다. 그 후 퀘타로 이동한 우리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버스를 타고 무사히 국경에 도착해 이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퀘타에서는 버스표를 구하기 위해 삼륜 택시를 타고 시내를 돌아 다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따다닥 하는 소리가 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작은 폭죽 소리였던 것 같은데 그 때 우리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순간적으로 몸을 숙이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만큼 극도로 긴장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여차 저차 하면서 무사히 발루치스탄을 통과한 지 삼 주 후에 퀘타에서 정부군과 반란군 간의 교전으로 몇 명이 사망하고 도시 전체에 계엄령이 내려져 아무도 들고 날고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난 우리가 정말 위험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짐꾼

물탄 기차역에서. 우리의 짐을 날라 주던 짐꾼.


 한국을 떠나기 전에 어떤 분이 발루치스탄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 길을 가는데 제일 큰 장애물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구나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자연 환경과의 싸움은 사람의 의지로 헤쳐 나갈 수도 있겠지만, 종교, 민족 갈등 등으로 분쟁을 겪고 있는 위험 지역의 장애물은 다름 아닌 바로 사람이었다. 발루치스탄을 지나 오면서 나는 그 말씀이 새삼 맞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 발루치스탄에서 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총을 든 사람이었으니까...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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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loggertip.com BlogIcon Zet 2007.10.04 16:3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멋진 글과 사진들 잘보았습니다. :)

  2. Favicon of https://pustith.tistory.com BlogIcon 맨큐 2007.10.04 23:4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우와~
    멋져요! ^^
    전 몽골여행 이후로는 휴식 컨셉의 여행만 다니고 있습니다. ㅎㅎ

    • Favicon of https://downeve.tistory.com BlogIcon 바위풀 2007.10.05 09:4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흐. 저도 이 여행 이후로는 당분간 익스트림한 여행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몽골 좋네요. 언젠가 가 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