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기행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나한테는 때가 되면 가끔씩 책장에서 꺼내어 쌓인 먼지를 털고 다시 읽기 시작하는 책들이 있다.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할 즈음이면 생각나는 책들도 있고 혹은 따뜻한 봄이 온다는 신호가 올 때 쯤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들도 있다. 아니면 첫 눈이 내릴즈음 해서 떠오르는 책도 좋다. 이렇게 이미 읽었던 책들 중에 맘에 드는 것은 몇 번씩 다시 보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보통 3~4 번, 많으면 5~6 번 이상씩은 읽은 것들이다. 지금 말하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도 내게는 바로 그런 책 중 하나이다. 때가 되면 절로 손이 가서 또 한 번 첫 장을 넘기게 되는 책인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2003년 11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이었다. 당시 어떤 기사에서 여행을 가기 전 추천할 만한 책으로 이 <수도원 기행>이 목록에 올라와 있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그다지 베스트셀러를 찾아서 읽지는 않는 내 취향 때문이기도 했고, 또 딱히 손이 가지 않던 - 마음이 끌리지 않았던 - 작가라 공지영씨의 책은 그 전에는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책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은 공지영씨 책이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어볼 만 하다니 그럼 한 번 읽어 볼까 하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왔다.

 기억에 의하면 아마 책을 산 그날에 다 읽었던 것 같다. 글씨가 작거나 분량이 딱히 많은 편도 아니고, 글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첫 표지를 넘긴 그 순간에 다 읽고 싶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작가도 이야기했지만 이 작품은 수도원을 돌아 다니고 쓴 기행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지영의 사람 기행서>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책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그 속의 수도원들을 보고 느끼는 것도 좋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서 - 아니, 아름답지 못한 곳이라고 할지라도 -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자체가 작가에게는 더 큰 여행이 되었던 듯 싶으니까. 수도원 기행이라고 하지만 주가 되는 건 수도원이 아니다. 작가가 기행을 하면서 수도원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첫 목적지인 아르정탱의 봉쇄 수도원에서 "짧은 인연, 상대방이 잘된들 내게는 아무런 대가가 없는 인연에도 지극히 마음을 쏟아주는, 그래도 당신들에게는 아무런 보탬도 뺄 것도 없어서 결국은 보탬이 되고야 마는 그런" 호의를 베풀어 주는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그녀의 사람 기행은 시작되었다. 그 후 그녀의 기행을 도와 주신 많은 분들과 낮선 곳에 선 그녀를 반겨 주었던 고마운 이들, 그리고 이름 모를 동네 버스의 기사 아저씨조차 그녀에게는 길 위에서 만나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다. 마지막에는 작가 자신까지도 이 사람 기행 속으로 녹아 들어가 스스로를 기행하였다.

 책 속에서 작가는 끊임 없이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 또 현재를 이야기한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그녀가 어떻게 힘들었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대략 짐작할 수는 있다. 그래서 이번 기행은 그런 그녀의 과거를 가지런히 하고 새롭게 깨달아가는 기행이기도 했다. 글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졌고 작가가 스스로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가식의 여과 없이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그리 오래도록 찾아 헤맨 목마른 영혼의 해답"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여행을 통해서 그녀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깨달으며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답에 점점 더 다가갔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녀는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은 듯 했다. 내가 보기에 그 해답은 득도에 가까운 깨달음과 비슷하다.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과거의 우를 생각하며 괴로워했지만, "이제 순종이라는 말의 아름다운 의미를 알 만한 나이가 된" 그녀는 무릎을 꿇고 이야기했다. 아멘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 고민해 왔던 것들이 "그래, 결국 이런 것이었구나. 이래서 날 만드셨구나."라고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언젠가 나도 이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볼 거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여행. 무거운 짐 없이 두 손을 가벼이 하고 떠나서 두손 가득히 얻어 오는 여행. 언젠간 나도 할 수 있을까...

덧.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내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서 종교 용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피정이라던지 영성체 등등. 사전에서도 썩 그럴듯한 답을 찾기 힘들고, 친구들한테 물어 봐도 뭔가 충실한 설명은 되지 못하고. 어디 이런 것에 대해서 좀 이해가 잘 가면서도 쉬운 설명은 없을까.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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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ennyway.net BlogIcon 페니웨이™ 2007.10.12 14:1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공지영씨 작품은 종교적인 색체가 넘 강해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다 좋은데 그 점 땜에 약간 거북살 스럽더군요 ^^;;

  2. Favicon of http://grey-chic.tistory.com/ BlogIcon 필그레이 2007.10.26 22:4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참 인상깊게 읽은 책이예요.저같은 경우는 이쪽 종교에 관심이 많아서리...^^ 요즘 또 공지영 소설 몇권을 손에 쥐고 있답니다.이 책이후 한동안 읽지 않았는데.역시 가을이긴한가봅니다.책 리뷰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