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강도였던 거야?

 이 여행기는 노매드 미디어(http://nomad21.com)에 격주로 연재 되는 것을 옮겨온 글입니다. 노매드에 기사가 올라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노매드의 자체 편집과는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이란에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용 카드나 현금 카드 등을 사용할 수가 없고 오직 현금만을 환전해 쓸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란 입국 전에 미리 한 사람에 몇 백 달러씩을 준비했다. 예상대로라면 넉넉히 이란을 빠져 나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체류 기간이 계획보다 길어지고, 지방 숙소들의 물가가 생각보다 비싸면서 문제가 생겼다.

 당장 하루치의 숙소비를 쓰고 나니 물 한 통 사 마실 돈마저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하루하고 반나절은 더 걸려야 테헤란에 들어 가는데 이대로는 잠자리는커녕 밥조차 굶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테헤란까지만 들어 가면 알고 지내는 교민분이 계셔서 그 분을 통해 한국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내일 아침 도시를 빠져 나간 후에 테헤란까지 히치를 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아침 40km 정도를 달려 도시의 외곽으로 빠져 나와 히치를 시도했다. 몇 대의 차가 그냥 지나간 후에 화물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우리는 잽싸게 기사에게 달려가 테헤란, 테헤란을 외치며 자전거와 짐을 가리켰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여권을 보여 달라, 저 앞에 가면 경찰서가 있다고만 계속 이야기했다. 아마 우릴 태워 주는 게 문제가 되진 않을지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우린 여권에 있는 이란 비자를 확인 시켜 주면서 "아저씨, 폴리스 노 프라블럼. 비자, 비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계속 고민하던 아저씨는 마침내 우리 보고 짐을 싣고 차에 올라 타란다. 아저씨 맘이 변하기 전에 빨리 타야지 하고 잽싸게 짐을 실은 후 조수석에 앉았다. 차가 출발한 후, 기사 아저씨가 조수석 앞에 있던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자신의 목에 들이 대는 시늉을 하면서 뭐라, 뭐라 얘기하더니 칼을 자기 쪽으로 치운다.

 "와, 참 친절한 아저씨네. 아무 차나 얻어 탔다간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얘기구나."

 신경 써 주는 아저씨가 고마웠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달렸을까, 차가 도로 옆에 있는 경찰서 앞에 멈춰 섰다. 우리는 비자도 여권도 문제가 없었기에 별 문제가 없겠지 생각하고 마음 편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가 경찰과 얘기를 좀 나누더니 우리 보고 내리란다. 경찰들은 이미 화물칸에서 우리 짐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뭐야, 무슨 문제지?" 라고 생각하며 경찰과 얘기를 나눠 보려고 해도 도대체 말이 통하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짐을 다 내린 채 경찰들에게 붙들려 있고 트럭은 다시 출발했다. 하지만 경찰들하고 계속 얘기해도 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아, 테헤란의 교민 분께 전화를 해 통역을 부탁했다. 그 내막을 알고 보니 사실은 경찰들이 우리를 붙든 게 아니었다. 우릴 태워 줬던 트럭 운전수가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불안해서 계속 태워줄 수 없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아까 운전수 아저씨가 목에 칼을 들이 대면서 했던 얘기는 결국 본인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이었다. 우리가 강도 짓을 할 지도 모른다고. 거 참, 고마운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보고 강도라고 한 것이었다니.  참 씁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내 평생 어디 가서 또 강도 취급을 당해 보겠나......

테헤란의 사히드 형

 곡절 끝에 테헤란에 도착했다. 테헤란에는 나와 같이 다니는 일행이 한국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이란인 친구 사히드 형이 있었다. 사히드 형이 한국에 일을 하러 왔을 때 알게 된 친구였는데 우린 형의 초대로 그 집에 가서 하루를 머무르게 되었다. 테헤란에서도 유명한 부촌에 위치한 형의 집은 3층짜리 건물에 수영장까지 딸려 있는 집이었다. 형의 말에 따르면 동네에서는 제일 작은 집이었는데, 그 동네에는 대문부터 으리으리한 궁궐 같이 생긴 유명한 이란 축구 선수의 집도 있었다.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선수였다.

사히드 형.

사히드 형네 집에서. 사히드 형과 나와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촌 동생

  우리 나라처럼 이란도 대가족 문화가 익숙한지 사히드 형 집은 형과 큰 형 내외가 함께 살고 있었고, 사촌이니 조카니 외삼촌이니 하는 사람들이 늘 들락날락 해서 집안이 북적북적했다. 우리가 머무를 때만이 아니라 항상 가족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것 같았다. 이쪽은 조카, 이쪽은 사촌, 또 저쪽은 마도로스인 외삼촌 등등. 여기 저기 인사하면서 조금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또 함께 둘러 앉아 게임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조금씩 친해졌다.

사히드

사히드 형의 큰 형인 알리 형의 딸. 정말 너무 귀여웠다

  마침 우리가 사히드 형 집에 머무를 때 마침 한국과 이란의 축구 국가 대표 경기 시합이 있었다. 다들 즐겁게 보자는 생각으로 TV 앞에 모여 앉았는데 왠지 모를 그 긴장감이란 어쩔 수 없었다. 서로 자기편 플레이에 크게 내색하지 못하고, 어색한 분위기. 다행히도 경기는 막판에 한국이 골을 넣으면서 무승부로 끝났다. 경기가 무사히 끝나고 나자 모두 괜스레 멋쩍어진 우리는 서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칸도반, 이란의 카파도키아

 타브리즈에서의 출발을 하루 미루고, 칸도반에 다녀 왔다. 이란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칸도반은 그 독특한 지형으로 이란의 카파도키아 - 터키 중부 지역. 각종 기암 괴석들이 자리한 독특한 지형으로, 특히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 라고 불리는 곳이다.

칸도반

칸도반 전경

칸도반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동화 속에서 나올 법한 동굴 집들. 멀리서 보면 마치 개미굴 같아 보이기도 한다는 이 곳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직도 동굴 집에서 실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높다란 돌 벽에 문과 창을 내고, 집 밖으로는 각종 전기줄과 전선이 널려 있다. 관광객들을 모아 집 안내를 하던 한 주민은 이 곳의 집들은 천연 냉난방이 잘 되어 여름에는 더 시원하고, 겨울에는 포근하다고 했다.

칸도반 풍경칸도반 풍경
칸도반 풍경

칸도반 골목골목

칸도반 풍경

빨래가 널려 있는 풍경

  외국인 여행자들뿐만 아니라 이란 내국인들에게도 명소인 이 곳은 비수기임에도 제법 많은 여행객들이 보였다. 몇몇 주민들은 관광객들에게 집 내부를 구경 시켜 주고 돈을 받고 또 차나 숙소를 제공하면서 생계를 벌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은 이 관광객 무리가 여간 귀찮은 모양이었다. 특히나 외국인 관광객들은 아무데나 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려 하고, 자꾸 기웃기웃하고 다니니까 신경이 쓰이는 건가 보다.

동굴 집 내부

동굴 집 내부

동굴 집 내부

카페트가 깔려 있는 건 다른 집들과 똑같다

소쿠리

소쿠리가 걸린 풍경은 우리네 시골과 비슷하다

당나귀

경사가 심한 칸도반에서 나귀는 중요한 운송 수단이다

  이 지역이 다른 지역과 다른 또 하나는 바로 여인들의 차도르 복장이었다. 이란의 다른 지역에서는 검은 색의 차도르를 제외하고는 다른 색을 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칸도반에서는 노인이건 젊은 여인이건 할 것 없이 모두 다양한 무늬가 있는 비교적 화려한 차도르를 둘렀다.

차도르

여인의 화사한 차도르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칸도반은 타브리즈에서 하루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지내면서 그 곳의 정취를 느껴 보고 싶은 사람들은 방을 빌릴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으니 원한다면 며칠을 묵을 수도 있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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