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의 실크로드 탐사>는 저자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다녀 왔던 고대 실크로드의 여러 지역들에 대한 포토 에세이들이다. 하지만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사람들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실크로드에 대한 여행기나 가이드북이 아니다. 포토 저널리스트로서 저자는 책 속에 "동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민중들의 이야기, 이웃에 대한 기록"을 담고자 했다.

 사람들은 흔히 실크로드 하면 제일 먼저 뜨거운 태양 아래 낙타떼를 몰고 가는 사막의 캐러밴(거상)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크로드는 사막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다. 길이 나 있지 않은 바다에서도 문명이 교류하던 해상 실크로드가 존재했고, 북방의 초원길에도 문명과 사람이 교류하던 실크로드가 있었다.

 저자는 바다에서부터 고대 실크로드의 흔적을 찾아 나간다. 남인도의 케랄라에서 시작해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까지, 그리고 다시 중국에서 저 멀리 이스탄불 땅까지 고대 실크로드의 흔적을 따라간 기록들. 그런데 그 길 위에서 저자가 마주한 것은 고대 문명 소통의 통로로서 수천 년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실크로드가 아니었다. 그 곳에는 우리가 상상하던 고대의 거상들도 없었고 새로운 문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길 위의 사람들의 반기는 원주민들도 없었다.

 오히려 저자가 마주한 것은 갈등과 분쟁이 고착화 된 슬픈 길이었다. 여러 민족과 종교 간의 갈등, 그리고 이러한 갈등들을 불러 일으킨 경제적 갈등까지 현대의 실크로드는 더 이상 문명 소통의 통로가 아니라 문명 충돌의 장이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길 위에는 분쟁으로 인한 눈물과 고통이 있었고, 오해와 반목으로 인한 충돌과 죽음이 있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현대 실크로드가 직면해 있는 현실과 그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알고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게 된다. 더불어 저자의 깊이 있는 글들과 함께 실려 있는 사진들도 주목할만 하다. 사진가로서 저자가 찍은 사진들은 사진과 글이 결합할 때 어떤 식으로 더 "파워풀"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참고로 책을 읽기 전에 고대 실크로드나 여러 지역들의 정세나 현황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다면 이해하기가 좀 더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세부 정세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는게 조금 힘든 부분도 있다.
 
 저자의 참고 서적 목록을 보면 이슬람 문명부터 동남아 개론, 실크로드 개괄에 관한 책 등까지 방대한데 그 중에서 정수일 교수의 <실크로드학>이 전체적인 개괄 지식을 얻기에 가장 추천할만 하다. 학문적으로 조금 깊이 들어가긴 하지만 한 번 다 읽고 나면 머리 속에 전체적인 지도를 그리는 것이 조금 수월해질 것이다.

덧. 이상엽씨는 다큐멘터리 사진 웹진인 이미지프레스의 운영자이자 국내 다큐멘터리 사진계에서 이름 있는 포토 저널리스트이다. 최근 몇 년간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라는 시리즈를 기획하고 공동 작업하여 클래식 카메라에 대한 대중의 열풍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고, 이미지프레스의 비정기 무크지를 발행하여 사진과 저널의 결합 작업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 시키고 작가들의 작품 발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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