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 여성 저널리스트가 548일간 겪은 남자들의 세계를 정리한 책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 세계를 여성이라는 이방인이 아니라 한명의 남성(실은 남장한 여자)으로서 체험하였다. 남자들의 사랑, 우정, 성욕 그리고 자아 찾기. 작가는 이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았다. 이는 남자의 시선도, 여자의 시선도 아닌 제 3의 시선, 즉 남자들 세계에 뛰어든 가짜 남자의 시선이다. 그리고 그 눈은 (볼링 클럽이나 남성들 모임 같이 미국과 우리 나라와의 몇몇 문화적 차이를 제외하면) 내가 남자로 살면서 평소에 발견하거나 눈치채지 못했던, 혹은 알면서도 구체적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해 주었다.

 남자들 사이의 우정에서 그녀가 여성의 시선으로 찾아낸 점은 바로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암묵적 질서이다. 겉으로는 친해 보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확실히 그어져 있는 남자들 사이 인간 관계의 안전 거리이다. 또 그렇게 거리를 지키면서도 그 안에는 서로를 보듬어 주는 따스함이 있다. 저자가 (미국) 남자들 사교 클럽의 대표 모임이라 할 수 있는 볼링 클럽에 들어가서 동화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보자. 처음에는 서로가 다치지 않게 조금씩 격려해 주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내에서 교제가 이루어진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허물 없이 지내게 될수록 이러한 영역은 점점 줄어들지만 여전히 최후의 보루만은 침범하지 않는다.

 얼마 전, 새로 사귀게 된 한 그룹에서 농구 시합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세 시간이 넘게 시합을 하면서 작가가 겪었던 느낌들을 나도 똑같이 겪게 되었다. 아, 이런 시작이었구나. 돌이켜 보면 그동안 내가 새로이 관계 맺었던 그룹에서는 모두 이와 비슷한 과정들을 겪어 왔다. 단지 난 저자처럼 객관적인 시각에서 내가 속한 그룹의 행동 양식을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노라(작가)는 볼링 팀의 일원이기 전에 그 세계를 파헤치러 들어온 저널리스트였기 때문에 좀 더 날카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남자들의 세계는 우정을 벗어난 다른 주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강해 보여야 하지만, 내적으로는 약한 남자들이 일을 통해 성장하기도 하고 상처 받기도 하는 과정은 그들이 일이 아닌 다른 모임에서 관계 맺는 과정과 비슷하다. 저자가 큰 영역들을 구분해 놓았지만 사실 위 주제들은 하나로 따로 떼어질 수 없는, 모두 서로 얽혀 있는 것들이다.

 때로 몇몇 문장이나 생각들은 작은 탄성을 자아내며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아마 남자들 세계로의 잠입 생활이 끝난 후, 다시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해 병원 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저자의 노력이 그런 공감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새로운,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남자들의 세계를 남자들 스스로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은 준다. 그러므로 혹시 자신이 지금 속해 있고 자신의 일상을 지배하는 그 세계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보면 좋을 듯 하다.

덧. 한 가지, 이 책에서 다루는 남자들의 세계는 꽤 폭 넓은 범위에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더 좁은 집단의, 더 친밀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면 남자들의 세계는 또 이 책과는 조금 다른 행동 양식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최후의 보루조차 사라질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 부분은 저자가 최후의 관계까지 가기 전에 자신이 실은 여자임을 밝혔거나 관계를 끊었기 때문에 모를 수도 있었다고 보여진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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