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연애소설>, 2002

 "난 사랑에 빠졌어요. 어쩌면 좋죠? 너무 아파요. 그런데...... 계속 아프고 싶어요"
- 영화 속에 나오는 <일 포스티노>의 대사 中

 어찌 보면 별 느낌 없는 제목에 불치병에 걸린 여자 주인공이라는 흔한 줄거리로 보일 수도 있는 영화 <연애 소설>. 하지만 이 영화는 첫 느낌처럼 그런 식상함에 머물지 않는 영화다. 주인공의 불치병은 영화 전면에 드러나 눈물을 자아내는 소재가 아니며 - 간간이 복선이 보이긴 하지만 지환이(차태현)가 고등학교에 찾아가기 전까진 아프다는 것조차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 게다가 불치병에 걸린 여자 주인공은 하나가 아닌 둘이다.

 남자 주인공 한 명에 여자 주인공 둘이라. 이쯤 되면 또 한 번 나올법한 멜로 영화의 공식은 바로 삼각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연애 소설>은 삼각 관계의 통념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지환이, 수인이(손예진), 경희(故 이은주) 세 사람의 관계는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를 사랑하지 않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아껴 주고 사랑하는 관계이다. "사랑하는 내 친구 지환, 사랑하는 내 친구 경희"에게 불러 주는 수인이의 노래(들국화의 "내가 찾는 아이")는 바로 이들의 그러한 관계 맺음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지환이는 경희를 좋아하게 되었고, 경희 또한 지환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인이 또한 그걸 알고 있지만 그러한 사실이 이들의 관계 맺음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쪽지와 편지를 통해 이야기 하는 지환이와 수인이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 혹은 알고 있는 - 경희에 대한 감정이 서로를 아끼는 세 사람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경희가 조금 힘들어 하긴 했지만 이는 수인이의 죽음에다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도 알지 못했던 경희 자신 때문이었다.

 <연애 소설>에서는 흑백 사진이 주인공들의 관계 맺기와 기억을 되살리는 소재로 중요하게 이용된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 지환의 집으로 날아 온 한 통의 편지. 발신인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은 편지 속에 들어 있던 한 장의 사진은 "나도 뽀뽀하고 싶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귀여운 아이들의 흑백 사진이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서 온 사진 한 장을 보며 어렴풋한 옛 기억을 떠올리는 지환. 그리고 지환이가 오랜만에 선배의 가게를 찾아 갔을 때 Ilford 박스에 담겨 있던 지환이의 사진들 중에 제일 위에 있던 것은 바로 수인이와 경희의 흑백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 한장이 지환이가 다시 경희와 수인이를 찾아 가는 매개체가 된다. 영화는 이후 수인이와 경희가 존재하지 않는 현재와 세 사람이 함께 했던 과거의 시간을 교차 시켜 관객들에게 보여 준다.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 주는 그 시간을 따라 가며 세 사람이 함께 했던 시간은 어떠했는지 수인이와 경희의 이름에 숨겨져 있던 작은 비밀은 무엇이었는지를 하나 하나 알아 가게 된다.
 
 그렇게 흘러 가던 시간이 정점에 달하는 것은 바로 지환이와 경희가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많이 돌아 왔지만, 결국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으로 떨어져 있던 시간의 간극을 메우기 시작한다.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 점이 이 쪽에 있었구나. 항상 헷갈렸었는데..."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장점은 둘의 만남으로 모든 것이 정점에 달했다고 느낀 그 이후의 시간을 차분히 보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만난 지환이와 경희가 함께 보내는 시간들. 그리고 경희가 떠나는 모습까지...... 단순히 둘의 만남으로 해피 엔딩을 맞이하기 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면서도 더 가슴에 남는 결말이다.

 <연애 소설>. 몇 년만에 다시 꺼내 본 영화이지만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언제, 어느 때 보아도 전혀 퇴색 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관객을 맞이해 주는 것. 자고로 잘 만들어진 영화의 힘이란 그런 것이리라.

덧. 이 영화를 얘기하면 남자와 여자 관객 사이 간에 항상 나오는 얘기가 있었다. 바로 두 여자 주인공 중에 누가 더 매력적이었나 하는 것. 여기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경희(이은주)를 택하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수인이(손예진)를 택했다. 이때 여자들이 궁금해 하는 점은 아주 여성스럽고 외모로 보았을 때도 더 낫다고 보여지는, 쉽게 남성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할만한 캐릭터인 수인이가 왜 더 인기가 없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았을 때, 이은주라는 배우는 (물론 아름답기도 하지만) 단순히 외모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어떤 매력이 있었다. - 난 꽤 그녀의 팬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녀의 기일이면 맥주를 홀짝거리며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를 보곤 한다. - 묘한 미소와 그 묘함을 더해 주는 얼굴의 작은 점 하나. <연애 소설>에서의 캐릭터는 약간은 왈가닥이라 남성들의 환상 속 이미지는 아닐지 몰라도 그녀라는 한 배우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그러한 매력까지 숨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 그러한 점 때문에 남자들이 이은주를 택했던 게 아닐까?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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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11.25 20:27 Address Modify/Delete Reply

    ^^ 이 영화 정말 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