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e

아내가 결혼했다, 2008

 아내가 결혼했단다.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가 결혼했단다. 손예진과 김주혁의 행복한 한때를 담은 영화 포스터는 이 영화, 제법 괜찮은 로맨스물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었다는 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았고, 예고편도 보질 않았기에 영화에 대해 내가 짐작할 수 있었던 건 한 장의 포스터가 다였으니까. 심지어 한 친구는 영화 초반에 손예진이 축구를 좋아하는 걸 보고 "아내가 축구랑 결혼한" 스토리인 줄 알았단다.

 하지만 이 영화는 포스터만치 행복한 영화도, 즐거운 영화도 아니었다. 어쩌면 포스터는 눈속임일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내던지는 질문은 꽤나 진지하며 한없이 밝아 보이기만 하는 손예진의 아우라로도 그 질문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았다. 때로는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힘들기도 했었다.

 영화가 내던지는 질문은 누군가가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일처 다부, 일부 다처 같은 문제는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의 질문 해석이라면 이 영화는 단지 내 아내의 바람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영화의 핵심은 결혼이라는 일부 일처의 제도하에서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일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단지 아내가 자유롭게 바람 피우는(??) 것을 보며 별 일 하지 못하는 남편을 보고 남자들이 짜증이 난다거나 혹은 반대로 그동안 남편들의 바람에 억눌려 있던 여자들이 자유 연애(이걸 과연 자유 연애라고 표현해야 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를 앞장서 실천하는 손예진을 보고 신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손예진과 김주혁 둘 다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김주혁을 사랑하고 김주혁과 결혼했으면서도 또 다른 사람도 "함께" 사랑하며 결혼하겠다는 손예진. 그리고 결국엔 아내의 그런 사랑을 "이해" (혹은 체념) 해 주는 남편 김주혁. 뭐랄까, 진짜 한 마디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결국엔 그런 결혼을 감행하고 마는 손예진이 미웠으며 그래도 아랑곳 없이 행복해 보이는 손예진이 미웠다. 오히려 김주혁은 안쓰러웠다. 그런데 영화의 종반으로 갈수록 꼭 손예진을 미워할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김주혁이 (거의 마지막까지) 아내와의 그런 삶을 유지하는 것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자는 영화를 보고 손예진이니까 김주혁이 그 삶을 유지했을 거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김주혁의 마음은 단지 내 아내가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러운 여자이기에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까지도 포기할 수 없다는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새로운 남편과 있으면 자신의 반쪽을 만난 것 같은, 내가 가득 채워지는 것 같다는 손예진.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과의 삶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남편과 그 사람 모두와 함께할 때 행복할 것이라는 이 여자를 무작정 미워할 수 만은 없는 것은 김주혁이 바로 이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주혁의 선택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아내가 남편에게 내어 준 과제(이 부분까지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겠다.)는 끝까지 이 영화가 자기 중심을 지키게 만들었다. 적당한 해피 엔딩이나 어정쩡한 엔딩이 아닌 자신이 내 던진 질문에 대한 일관성을 지켜 냈으니까. 즐겁고 행복한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결코 많이 보지 않았던 2008년의 한국 영화 중에 추천할만한 수작~!

덧. 물론 난 손예진이 될 마음도, 김주혁이 될 마음도 없다. 내게 있어서 사랑이란 단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며 변치 않는 마음이다. 짧지 않은 세월 겪어 온 시간의 경험은 내게 그 사실을 더 확신 시켜 주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물론 그럴 것이다.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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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qeem.tistory.com BlogIcon Qeem 2008.10.31 10:4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흐음...극장에는 저 말고 몇 명의 여자관객분들이 계셨죠..
    그들은 때론 환호를 내지르고 윽박을 지르기도 하면서 미쳤다라고들 말하더라고요..
    그 중에 저 혼자 흐음...하고 웃으니 옆에 친구가 오빠랑 같은 미친인간들이 있긴해...이러더군요...
    하하 하긴 미친다는 기준은 주관적인건가봅니다.

    • Favicon of https://downeve.tistory.com BlogIcon 바위풀 2008.10.31 13:2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확실히 대다수의 남자들이 이 영화를 보고
      분개(??)할 것 같긴 해요.

      결국 자기 주관이라는 거겠죠.

  2. Favicon of https://qeem.tistory.com BlogIcon Qeem 2008.10.31 23:4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분개는 안할걸요?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 단지 주인아라는 인물로 승화된 것이겠죠..
    흠흠...어쨌든 저는 유교적인 관념이 저희를 알게 모르게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걸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역시 자기 주관이라는 거겠죠.

    • Favicon of https://downeve.tistory.com BlogIcon 바위풀 2008.11.02 10:4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음, 저는 주인아가 어떤 로망 속의 인물이라고 느끼지는 못했었는데.
      축구도 좋아하고, 섹스도 잘하고, 귀엽고 이쁜데다가 능력 있는 (게다가 남자를 잘 이해해 주는) 그런 여자가 로망이 되는 건가요?
      남자들의 그런 약점을 노린 것이라면
      이 영화의 원작자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안전막을 설치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제가 사실 이 부분은 소설을 읽어 보질 않아서 확실하게는 말 못하겠네요.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11.02 01:5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영화의 초중반에야 정말 속이 터졌죠. 하지만 저 세명의 행동이나 말이 전부 진실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뒤에는 조금은 응원해주고 싶기도 할 정도로 이해가 되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엔딩은 그 상황에서 최선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Favicon of https://downeve.tistory.com BlogIcon 바위풀 2008.11.02 10:4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예, 저도 엔딩이 마음에 들었어요.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보고 나왔는데
      스페인의 그 분위기에
      손예진씨의 파마 머리는 정말 딱이더군요. :)

  4. Favicon of https://piedra.tistory.com BlogIcon Conforte 2008.11.02 09:1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영화를 안보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기 그렇네요.
    그렇지만 원 이건...

    사람이 제 하고 싶은 데로 살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을 죽여도 다 헐 말이 있데잖아요.
    마누라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는 걸 이해는 할 수 있는데...
    거럼 안되잖아요. 것두 모릅니까?

    결혼 제도는 간음을 막는 가장 좋은 제도입니다.
    결혼 서약 어떻게 하는지 잘 알고 있지요?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는 안 무너집니까?
    애들처럼 왜들 그러십니까!

    난 보수 꼴통은 아닌데(긴가?)
    머리 대고 고민할 걸 고민해야지...
    이건 무조건 욕하고 말려야하는 문제지. 안그래요!

    • Favicon of https://downeve.tistory.com BlogIcon 바위풀 2008.11.02 10:4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저는 그냥 결혼이라는 제도를 떠나서
      누군가가 단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질문만 받아 들였어요.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다면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보호막 이런 것도 아니고
      형식의 하나일 뿐이죠.

  5. conforte 2008.11.04 04:2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사람이란 존재가
    평생 한 사람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이니깐
    보호막이 필요한 거라 생각합니다.

  6. Favicon of https://jjinojjino.tistory.com BlogIcon 들불처럼 2009.04.14 14:4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포스트 잘 봤습니다.
    한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주요한 주제였다는 리뷰 저랑 비슷하게 보신 것 같아 반갑네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연애 소설

<연애소설>, 2002

 "난 사랑에 빠졌어요. 어쩌면 좋죠? 너무 아파요. 그런데...... 계속 아프고 싶어요"
- 영화 속에 나오는 <일 포스티노>의 대사 中

 어찌 보면 별 느낌 없는 제목에 불치병에 걸린 여자 주인공이라는 흔한 줄거리로 보일 수도 있는 영화 <연애 소설>. 하지만 이 영화는 첫 느낌처럼 그런 식상함에 머물지 않는 영화다. 주인공의 불치병은 영화 전면에 드러나 눈물을 자아내는 소재가 아니며 - 간간이 복선이 보이긴 하지만 지환이(차태현)가 고등학교에 찾아가기 전까진 아프다는 것조차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 게다가 불치병에 걸린 여자 주인공은 하나가 아닌 둘이다.

 남자 주인공 한 명에 여자 주인공 둘이라. 이쯤 되면 또 한 번 나올법한 멜로 영화의 공식은 바로 삼각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연애 소설>은 삼각 관계의 통념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지환이, 수인이(손예진), 경희(故 이은주) 세 사람의 관계는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를 사랑하지 않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아껴 주고 사랑하는 관계이다. "사랑하는 내 친구 지환, 사랑하는 내 친구 경희"에게 불러 주는 수인이의 노래(들국화의 "내가 찾는 아이")는 바로 이들의 그러한 관계 맺음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지환이는 경희를 좋아하게 되었고, 경희 또한 지환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인이 또한 그걸 알고 있지만 그러한 사실이 이들의 관계 맺음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쪽지와 편지를 통해 이야기 하는 지환이와 수인이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 혹은 알고 있는 - 경희에 대한 감정이 서로를 아끼는 세 사람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경희가 조금 힘들어 하긴 했지만 이는 수인이의 죽음에다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도 알지 못했던 경희 자신 때문이었다.

 <연애 소설>에서는 흑백 사진이 주인공들의 관계 맺기와 기억을 되살리는 소재로 중요하게 이용된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 지환의 집으로 날아 온 한 통의 편지. 발신인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은 편지 속에 들어 있던 한 장의 사진은 "나도 뽀뽀하고 싶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귀여운 아이들의 흑백 사진이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서 온 사진 한 장을 보며 어렴풋한 옛 기억을 떠올리는 지환. 그리고 지환이가 오랜만에 선배의 가게를 찾아 갔을 때 Ilford 박스에 담겨 있던 지환이의 사진들 중에 제일 위에 있던 것은 바로 수인이와 경희의 흑백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 한장이 지환이가 다시 경희와 수인이를 찾아 가는 매개체가 된다. 영화는 이후 수인이와 경희가 존재하지 않는 현재와 세 사람이 함께 했던 과거의 시간을 교차 시켜 관객들에게 보여 준다.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 주는 그 시간을 따라 가며 세 사람이 함께 했던 시간은 어떠했는지 수인이와 경희의 이름에 숨겨져 있던 작은 비밀은 무엇이었는지를 하나 하나 알아 가게 된다.
 
 그렇게 흘러 가던 시간이 정점에 달하는 것은 바로 지환이와 경희가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많이 돌아 왔지만, 결국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으로 떨어져 있던 시간의 간극을 메우기 시작한다.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 점이 이 쪽에 있었구나. 항상 헷갈렸었는데..."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장점은 둘의 만남으로 모든 것이 정점에 달했다고 느낀 그 이후의 시간을 차분히 보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만난 지환이와 경희가 함께 보내는 시간들. 그리고 경희가 떠나는 모습까지...... 단순히 둘의 만남으로 해피 엔딩을 맞이하기 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면서도 더 가슴에 남는 결말이다.

 <연애 소설>. 몇 년만에 다시 꺼내 본 영화이지만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언제, 어느 때 보아도 전혀 퇴색 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관객을 맞이해 주는 것. 자고로 잘 만들어진 영화의 힘이란 그런 것이리라.

덧. 이 영화를 얘기하면 남자와 여자 관객 사이 간에 항상 나오는 얘기가 있었다. 바로 두 여자 주인공 중에 누가 더 매력적이었나 하는 것. 여기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경희(이은주)를 택하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수인이(손예진)를 택했다. 이때 여자들이 궁금해 하는 점은 아주 여성스럽고 외모로 보았을 때도 더 낫다고 보여지는, 쉽게 남성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할만한 캐릭터인 수인이가 왜 더 인기가 없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았을 때, 이은주라는 배우는 (물론 아름답기도 하지만) 단순히 외모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어떤 매력이 있었다. - 난 꽤 그녀의 팬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녀의 기일이면 맥주를 홀짝거리며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를 보곤 한다. - 묘한 미소와 그 묘함을 더해 주는 얼굴의 작은 점 하나. <연애 소설>에서의 캐릭터는 약간은 왈가닥이라 남성들의 환상 속 이미지는 아닐지 몰라도 그녀라는 한 배우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그러한 매력까지 숨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 그러한 점 때문에 남자들이 이은주를 택했던 게 아닐까?


Posted by 바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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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11.25 20:27 Address Modify/Delete Reply

    ^^ 이 영화 정말 좋아하는데....